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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도신 스님의 전생 제자

기자명 성재헌

노 비구 몸 받은 홍인, 모진 세파에도 당당

▲ 일러스트=이승윤

황매현(黃梅縣)의 어느 여관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는 한 꼬마거지가 있었다. 그 아이는 한 푼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면서도 그 목소리가 비굴하지 않았고, 공손히 허리를 숙이면서도 맡겨둔 돈 되찾아가는 사람처럼 품새가 당당했다. 그래서인지 여관주인도 여관에 투숙한 손님들도 그를 각다귀라 여기며 내치지 않았다. 도리어 길거리에서 살면서도 언행이 방정한 것을 기특해하며 선뜻 동전을 내주고 귀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렇게 그 꼬마거지는 연못을 유영하는 잉어의 몸짓으로 바글바글한 손님들 틈새를 조용히 헤집고 다녔다.

멀찍이서 그 꼬마를 유심히 지켜보던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선종의 제4대 조사 도신(道信)대사였다. 아니나 다를까, 재주 좋은 그 꼬마거지는 자신을 주시하는 따뜻한 눈빛을 놓치지 않고 곧장 도신 스님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 작은 푼돈으로 큰 복을 지으십시오.”

도신 스님은 팔을 길게 뻗어 아이를 한발 앞으로 끌어당겼다. 골상이 기이하고 눈빛에 총기가 가득했다. 도신스님은 허리를 숙이고 다정하게 물었다.

“그래, 너는 성이 뭐냐?”
“성이 있기는 합니다만 보통 성씨는 아닙니다.”
“보통 성씨가 아니면 무슨 성인데?”
“바로 불성(佛性)입니다.”

눈동자도 흔들리지 않고, 목소리도 떨리지 않았다. 당황하는 기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도무지 어린아이의 몸짓이라 할 수 없었다. 도신 스님은 놀라움을 속으로 감추고 재차 물었다.

“그러면 너는 성이 없다는 말이냐?”
“네.”
“천지만물이 다 불리는 명칭이 있는데, 왜 너는 성도 이름도 없느냐?”
“성품이 공하기 때문입니다.”

포근한 웃음을 담았던 도신 스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정히 숙였던 허리가 뒤로 버쩍 젖혀졌다. 스님은 아이에게 푸짐하게 상을 차려주고, 급히 여관의 주인을 따로 불렀다.

“혹시 저 아이의 부모를 아십니까?”
“알다마다요.”
“저 아이의 부모는 어디 삽니까?”
“제 어미는 주씨(周氏) 집안 막내딸인데,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아 집에서 쫓겨났지요. 아비는 누군지도 모르고요. 지금 마을 어딘가에서 품팔이를 하거나 동냥질을 하고 있을 겁니다.”

연민의 눈빛을 흘리며 주인이 돌아서자 도신 스님은 다시 시자를 찾았다.

“저 아이는 보통아이가 아니다. 저 아이의 용모를 자세히 살펴보니, 부처님의 서른두 가지 대인상(大人相) 가운데 스물다섯 가지를 갖추고 있다. 출가해 이십년쯤 수행하면 분명 불사를 크게 일으키고 중대한 임무를 너끈히 감당할 재목이 될 것이다. 해가 지거든 저 아이를 따라가 그 어미에게 내 말을 전하고 출가시키도록 권유해 보거라.”

그날 저녁, 시자는 꼬마거지의 어머니를 만나 도신 스님의 말씀을 빠짐없이 전하였다. 동네사람들의 온갖 비난과 손가락질에도 아이를 포기하지 않았던 어미였다. 품팔이와 동냥질로 연명하며 남의 집 처마 밑에서 자면서도 서로를 놓지 않던 모자의 끈이었다. 한참동안 물끄러미 아이를 돌아보던 어미가 시자스님에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시자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심정으로 그 어미에게 말하였다.

“도신 스님께서는 불교집안의 큰 용과 같으신 분입니다. 그분의 빼어난 도덕을 흠모해 훌륭한 인재들이 사방에서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지요. 그러니 아이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분명 훌륭한 재목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어미는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표정이 담담했다.

“스님, 제 이야기를 도신 스님께 꼭 전해주십시오. 제가 처녀시절에 시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한 노스님이 걸음을 멈추고는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냐’고 저에게 정중히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쪽 몇 번째가 저희 집이니, 아버지나 오라버니에게 찾아가 부탁해 보시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그 노스님은 싱긋이 웃더니만 제가 허락하면 가보겠다는 겁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요. 그러자 그 노스님은 지팡이를 휘두르며 가시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온 저는 혹시 노스님이 찾아오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헌데 요상하게도 그날 저녁부터 헛구역질이 나더니 배가 불러오는 겁니다.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저도 그런데, 저의 부모님은 또 어떠셨겠습니까. 몹시 화가 난 부모님은 저를 쫓아냈고, 갈 곳이 없는 저는 낮에는 동네에서 길쌈으로 품팔이를 하고 밤에는 남의 집 처마아래에서 잠을 잤지요. 저 아이를 낳은 곳도 스님이 머물고 계신 그 여관 처마아래랍니다. 홀몸으로, 그것도 처녀의 몸으로 저 아이를 감당할 생각을 하니, 끔찍했습니다. 그래서 모질게 마음먹고 바구니에 아이를 담아 한밤중에 몰래 강에다 버렸지요. 인연 있는 좋은 부모 만나 편하게 살라고요. 하지만 어미의 정이 그리 쉽게 끊기는 게 아니더군요. 밤새 땅을 치며 통곡하다가 날이 새자마자 강가로 달려갔지요. 그때, 온몸의 털이 버쩍 서는 일이 있었답니다. 어젯밤에 분명히 거센 물살에 실어 떠내려 보냈는데, 아기를 담은 그 바구니가 자욱한 안개를 뚫고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더군요. 게다가 그 바구니에는 물 한 방울 스며들지 않아 아기의 피부가 뽀송뽀송했지요. 환하게 웃음 짓는 그 아이를 다시 품에 안으면서 알았답니다. 그 아기가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겠냐고 물어봤던 그 노스님이란 걸 말이죠.”

아이의 손을 잡고 여관으로 돌아온 시자는 그 어미의 말을 도신 스님에게 낱낱이 전하였다. 이야기를 전해들은 도신 스님은 가만히 생각에 잠겨 손가락을 꼽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네가 올해 몇 살이냐?”
“일곱입니다.”
“네가 바로 그 노인이었구나.”

도신 스님이 손뼉을 치며 환하게 웃었다. “7년 전, 파두산(破頭山)에 있을 무렵이었지. 그 산중에 이름 없는 노스님 한 분이 계셨어. 그분은 오로지 소나무만 심고 다른 일에는 통 관심이 없었지. 그래서 사람들이 그를 ‘소나무 심는 도인[栽松道者]’이라 불렀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 법을 가르쳐 달라는 거야. 그래서 농담 삼아 말했지. ‘이미 늙으셨는데, 도를 듣는다 한들 널리 펴실 수 있겠습니까. 다시 태어나 찾아온다 해도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탓할 판인데.’ 되짚어보니, 그게 꼭 7년 전 일이구나.”
그 꼬마가 훗날 선종의 제5대 조사 홍인(弘忍) 대사이시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35호 / 2014년 3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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