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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법원 스님의 뚝심

기자명 성재헌

귀성, 물벼락·몽둥이로 발심 일으키다

▲ 일러스트=이승윤

달마의 가르침을 심지법문(心地法門)이라 한다. 뒤죽박죽 엉클어진 세상만사가 몽땅 마음으로 지어진 것일 뿐이며, 그 마음의 실상과 성품을 찬찬히 살펴보면 그 속엔 ‘뒤죽박죽’도 없고 ‘엉클어짐’도 없고 이렇다 저렇다 할 ‘세상’과 ‘만사’조차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선(禪)이다. 이처럼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淸淨心]을 배우고,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이 선종(禪宗)이다.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터득하고,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 “이러이러한 것이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입니다” 하고 지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러이러하다’고 지목하는 것이 곧 망상(妄想)의 틀이고 번뇌(煩惱)의 티이다. 그러니 ‘이러이러하다’고 설명하는 순간, 그것은 곧 맑고 깨끗한 마음이 아닌 것이 된다. 즉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방법이 없고 생각으로 파악할 대상도 없는 것이 마음의 실상이다. 그래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표방하는 선종에서는 선지식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마음자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먼저 선험자를 만나야 한다. 하지만 운 좋게 선험자를 만났다 해도 만난 그가 선지식(善知識)인지 악지식(惡知識)인지 구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치 사람 속은 모른다 했다. 만약 표정 하나 말 한 마디 움직임 하나로 상대의 전인격을 판단한다면 그건 성급한 것이다.

훌륭한 선험자가 확신했다 해도 상대의 경험치를 온전히 따라서 체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언하(言下)에 돈오(頓悟)하는 것이 선종이라지만 사실 그건 가뭄에 콩 나듯 드문 일이다. 세상에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 또한 뜻을 세우기는 쉽지만 뜻을 성취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교재도 있고 실물도 있는 차량 운전면허증도 한 달은 꼬박 애를 써야 딸 수 있는데, 말로 이해할 수도 없고 생각으로 파악할 수 없는 마음의 운전술을 어찌 손쉽게 터득할 수 있겠는가. 그 길은 실로 지난함의 연속이라 하겠다. 그래서 필요한 게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는 뚝심이다.

임제 정맥을 계승한 분 중에 섭현귀성(葉縣歸省)선사가 계셨다. 천하에 퍼진 명성 탓에 그를 찾는 납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작 귀성 스님은 그들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풍문에 들떠 우르르 떼 지어 몰려왔다가 슬쩍 간만 보고 다시 우르르 몰려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바른 가르침을 파악할 바른 견해는 고사하고, 사람을 대하는 신중함과 일을 성취하려는 결연한 의지조차 없는 이들에게 자신의 친절은 새로운 실망만 낳을 뿐이었다. 어느덧 귀성선사는 납자들이 찾아와도 쌀쌀맞게 대하는 엄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매서운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납자들이 또 그를 찾아왔다. 귀성선사는 대문간에 서서 욕을 퍼부으며 당장 돌아가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납자들은 대문간을 어정거리다 귀성선사가 방장으로 들어간 틈을 노려 슬그머니 객실로 들어갔다. 납자들은 따끈한 객실 아랫목에서 꽁꽁 언 발을 녹이면서 귀성선사의 사나운 성정을 화제 삼아 한바탕 웃음꽃을 피웠다. 그때였다. 객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바탕 물벼락이 쏟아졌다.

“성질 참 고약하군.”

찬물에 옷이며 얼굴이 흠뻑 젖은 객승들은 화를 내면서 곧바로 걸망을 챙겼다. 어처구니없는 박대로 다들 떠나간 자리에서 두 사람이 남았다. 법원(法遠)과 의회(義懷)였다. 두 사람은 흐트러진 방석을 정돈하고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다시 객실에 앉았다. 얼마 후, 다시 객실의 문이 벌꺽 열리면서 찬바람이 훅 불어 닥쳤다.

“아직도 떠나지 않는 놈들이 있었네.”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합장했다. “너희 같은 놈들 귀찮다. 가라, 가.”

매서운 눈빛에도 두 사람은 끄떡도 없었다. “이 놈들 몽둥이 맛을 봐야 정신 차리겠구나. 제 발로 떠나기 싫다면 네 너희를 때려서 쫓아내겠다.”

그때, 법원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였다. “스님, 저희 두 사람은 스님께 선을 배우려고 천 리 길을 마다않고 찾아왔습니다. 어찌 물 한 바가지 끼얹었다고 떠나가겠습니까? 설령 때려죽인다 해도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자 귀성 스님이 한바탕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 두 놈은 참선할 만하구나. 방부를 들여라.”
이후 법원은 전좌(典座) 소임을 맡게 되었다. 귀성 스님의 깐깐하고 철두철미한 성품 탓에 그곳 대중들의 생활은 매우 각박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귀성 스님이 우연히 장원(莊園)으로 출타하시게 되었다. 법원 스님은 이때다 싶어 몰래 자물통 열쇠를 훔쳐내어 기름과 국수를 가져다 오미죽(五味粥)을 만들었다. 거칠고 박한 음식에 입맛을 잃었던 대중들은 솥에서 피어로는 향기로운 냄새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온 대중이 승당에 둘러 앉아 맛있게 익은 죽을 돌리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승당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내일 오리라 예정했던 귀성 스님이 들이닥쳤다. 당황한 대중들의 눈빛을 뒤로 하고, 귀성 스님은 아무 말씀 없이 자리에 앉아 국수를 잡수셨다. 그렇게 대중들이 식사를 마친 후였다.

법원이 앞으로 나와 실토하였다.

“제가 기름과 국수를 꺼내 죽을 끓였습니다. 스님께서 벌을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귀성 스님이 냉냉한 목소리로 원주를 불렀다.

“오늘 대중들이 먹은 음식 값이 모두 얼만가?”

그리고는 법원의 의발(衣鉢)을 음식 값으로 쳐서 환수한 다음, 몽둥이 30대를 때린 후 절에서 쫓아내버렸다. 하지만 법원은 떠나지 않고 산 아래 마을에 숙소를 마련한 채 도반을 통해 용서를 빌었다. 여러 차례 용서를 구했지만 귀성 스님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절에서 사는 걸 허락하지 않는다면 대중을 따라 법문만이도 듣게 해달라고 간청했지만 귀성선사는 그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마을을 지나던 귀성 스님이 여관 앞에 혼자 서있는 법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스님은 성큼성큼 다가가 고함을 쳤다.

“여긴 절 사랑방이다. 너 이놈, 여기 머물면서 자릿세는 냈냐?”

그리고 돈을 계산하여 추징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조금도 난색을 표하지 않고 저자에서 탁발하여 그 돈을 갚았다.

그리고 한참 후 귀성 스님이 또 마을에 일이 있어 저자거리를 지나다가 탁발하고 돌아오는 법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본 귀성선사는 환하게 웃으며 시자에게 말했다. “저 놈은 정말로 참선할 마음이 있구나.”

귀성선사는 마침내 법원을 다시 제자로 거두었고, 법원은 오랜 수학 끝에 귀성선사의 법을 이었으니 참으로 뚝심 좋은 대장부(大丈夫)라 하겠다.

성재헌 tjdwogjs@hanmail.net
 

[1236호 / 2014년 3월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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