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가의 품격과 말
승가의 품격과 말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4.07 11: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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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성명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말의 폭력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떻게 저런 못된 말들만 골라 쓰는지 놀랍기만 하다. 우리에게도 험한 말을 일상으로 쓰던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때려잡자 공산당’이니 ‘초전박살’을 입에 달고 살았다. 솜털 보송한 아이들에게 반공 표어와 포스터를 강요하며 여린 가슴에 증오를 심었다. 시절은 어두웠다. 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민들의 생각과 입을 틀어막았다. 자유와 행복을 옥죄는 북한처럼 당시 우리도 그랬다. 정부는 무서웠고 거스르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증오에 가득 찬 말로 반공을 외쳤지만 겁을 먹은 것은 국민들이었다.

사람들 언어 품격은 사회의 품격
대통령 발언 시국과 무관치 않아

승가, 거칠고 험한 말 일상이 돼
막말스님 종단 상층부 형성 문제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가 드러나는 장소, 즉 집”이라고 말했다. 말에서 사람이나 집단이 처한 조건이 드러난다는 뜻이다. 폭력적인 언어가 난무하는 사회에 품격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이다. 반공포스터와 함께 증오의 말들이 오가던 회색빛 가득하던 그 시절이 결코 행복으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다.

말이 험해지는 것은 사회가 험악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열악하면 그 속에 사는 사람이 거칠어진다. 학자들에 따르면 임진왜란 전에만 해도 우리말에 자음이 쌍으로 붙는 경음이나 탁한 소리가 나는 격음이 드물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고,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말은 거칠어졌다. 한국전쟁은 재앙이었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악다구니가 우리말에 그대로 굳어졌다.

기억하건대 정치권의 말이 아름다웠던 적은 드물었다. 최근에는 정도를 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특히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다. “우리가 쳐부술 원수, 우리 몸을 죽이는 암 덩어리.” 과거 독재시절 언어로 회귀한 느낌이다. 국가권력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하고, 증거를 조작해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모는 지금의 상황이 낯설게만 느껴지지 않는다.

말의 품격이 떨어지기는 승가도 예외가 아니다. 청정을 생명으로 삼고 있는 스님들이 막말과 폭언으로 구설에 오른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재가종무원에 가해지는 막말과 욕설, 여성종무원에 대한 성추행 발언이 수차례 문제가 됐다. 세간의 국회의원격인 종회의원들의 정제되지 못한 말은 승가의 품격을 볼품없게 만들었다. 반말과 욕설, 분을 참지 못해 폭행으로 이어지면서 눈살 찌푸리는 추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스님들의 구설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최근에도 성희롱 발언으로 총무원에서 한 스님이 물러났고, 또다른 고위직 스님도 폭언으로 구설에 오르고 있다.

불자들의 뇌리에 아프게 기억되는 막말이 있다. ‘목따’ 발언이다. 2007년 종단의 한 중진 스님은 방송에서 “설죽이면 되치기 당한다. 확실히 목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수행자의 말이라기엔 너무 험했다. 그럼에도 스님들의 막말이 고쳐지지 않는 것은 이런 스님들이 종단의 상층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는 언어가 가진 한계를 직시하고 함정에 빠지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침묵이 중요하다. 말이 끊어진 자리에서 불교의 진리는 드러난다.

▲ 김형규 부장
“거친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악이 가면 화가 오게 마련이니 폭력의 과보를 몸에 받게 되리라.” 법구경의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입은 날카로운 도끼와 같다”고 말씀하셨다. 말을 살펴 스스로를 찍지 않도록 살피라는 경책이다. 그런데 승가가 험한 말로 혼탁해지고 있다. 날선 도끼날이 날로 늘고 있으니, 불자들의 시름이 깊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40호 / 2014년 4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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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문 2014-04-27 23:28:45
정구업진언을 맨처음 독송하는 천수경의 의도를 알자.
제발 언행에 주의를 기우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