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와 6·4지방선거
세월호와 6·4지방선거
  • 김형규 기자
  • 승인 2014.05.19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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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꼭 한 달이다. 지난 한 달은 지옥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가슴을 쳤다. 뉴스를 보는 자체가 고통스러워 애써 외면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부모가 되는 순간 한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말처럼 내가 배에 갇힌 아이들의 부모였다. 그럼에도 죽음을 앞둔 아이들이 남겼다는 몇몇 동영상은 차마 열어보지 못했다. 너무 시리고 아파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부패 관료와 무능한 정부는
우리 함께 만든 공동의 업

학연지연 떠나 선량 뽑는게
비극 되풀이 않는 유일한 길

이번 참사는 우리사회의 민낯을 보여줬다. 침몰하는 배에 승객들을 버려두고 줄행랑친 선장과 승무원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생명을 담보로 무리하게 배를 증축하고 운항시킨 청해진해운과 사주들, 돈을 받고 불의를 눈감아준 부패한 관료들, 죽어가는 아이들에 대한 구호는 뒷전이면서 현장에서 의전이나 따지던 고위공직자들, 그들을 임명한 당사자이면서 사과 대신 책임자처벌을 말하는 대통령. 누구의 말처럼 이것이 과연 나라일까 싶다. 해경을 비롯한 관련부처에서 일사분란하게 구조에 나섰다면 배에 갇힌 사람 모두를 구조해 냈을 것이라는 검찰 조사결과에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럴 자격이 있는 걸까. 이제는 냉정히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 세상은 부처님의 말씀처럼 인드라망으로 연결돼 있다. 세월호 참사는 누구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함께 저지른 공업의 결과다. 잘못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그래서 참회와 반성 또한 우리의 몫이다. 자신의 목숨만이 중요했던 선장이나 고위관료들의 무책임하고 탐욕스런 모습은 바로 우리 삶의 일상이었다. 원칙보다는 편법이, 공익(公益)보다는 사익(私益)이 우리의 삶을 지배했다. 돌이켜보면 운이 좋아 선장과 관료들이 있던 그 자리에 우리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의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 또한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가 만들었다. 우리는 선거를 치를 때마다, 고위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청렴성이나 능력은 애써 외면했다. 대신 혈연, 지연, 학연을 따지고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눈을 감고 투표했다. 지금의 참담함은 그런 잘못된 행위들의 결과물이다. 슬픔에 잠긴 희생자 가족들에게 “시체장사” “정치선동꾼” 등등 입에 담지도 못할 막말을 늘어놓으며 망나니처럼 칼날을 휘두르는 함량미달의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도 우리가 만들었다. 피지 못하고 져버린 저 아이들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죄인은 바로 우리들이다.

세상은 지금 세월호의 아픔을 뒤로 한 채 선거운동이 한창이다. 6월4일 전국에서 지방자치의 주역이 될 일꾼 3952명을 뽑는다. “온갖 중생이 지은 행위는 백겁이 지나도 없어지지 아니하여 인연이 결합되는 때에 가서는 응당 과보를 스스로 받아야 하느니라.” ‘광명동자인연경’의 말씀이다.

지혜로운 행위만이 지혜로운 결과를 가져오고 선한 행위가 선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가르침이다.

▲ 김형규 부장
이제는 지연과 학연에서 벗어나 오로지 국민을 위할 동량을 뽑아야 한다. 그것이 희생자 가족의 오열이 쏟아지는 아수라장에서 팔걸이 의자에 앉아 뻔뻔하게 라면을 먹던 교육부 장관이나 부패의 몸통이면서 부패 척결을 외치는 정부에 경종을 울리는 길이다. 그리고 생명이 피어오르는 봄날에 막 피어나는 봄꽃들을 하릴없이 바다에 묻어버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김형규 kimh@beopbo.com
 

[1245호 / 2014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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