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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김주효 병원불자연합회 이사장

“40년 간호봉사 했으니 다음 생엔 출가인연 오겠지요”

▲ 김주효 이사장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대 삼아 정진하며 이웃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인연이 있기에 늘 행복하다”고 말했다.

수면은 옅은 바람에도 쉬이 일렁이지만 심해(深海)는 태풍이 일어도 고요하다. 사람도 이와 다르지 않다. 지혜로움이 심해 같이 깊은 사람은 어떤 외풍에도 강건하며 결코 가볍지 않다. 전국병원불자연합회 김주효(70) 이사장은 깊은 바다와 같은 사람이다. 그가 걸어온 길은 심해를 닮아 고요하고 우직하다. 국립서울병원 불자회를 창립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던 전국의 병원불자회를 연합회라는 공동체로 완성했고 초대회장으로서 불자 의료인들을 하나로 묶어 신행활동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기독교세가 강한 의료계에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전국단위 불자회를 결성해 냈으니 그 여정은 수행자의 순례길처럼 외롭고 고단했을 것이다. 공적(空寂)이라는 그의 법명과 같이 고요함 속에 깃들어 있는 굳은 신심으로 불자 의료인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 있다.

“수행과 신행에 매진하며 배우고 변화된 것들을 반드시 실천하는 참다운 부처님 제자다.”(남양주 성현사 원행 스님) “한 마디로 불교를 위해 태어난 분이다. 개인적인 신행활동도 열심이지만 불교의 사회적 역할, 특히 의료봉사를 필생의 업으로 삼은 것 같다.”(이학주 교법사단장) “옆에 계시는 것만으로 힘이 된다. 항상 자신을 낮추며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후배들의 지남이다.”(이동숙 병불련 사무총장)

병원불자연합회 등 창립 주도
불자 의료인들 마음의 울타리
마음을 낮추고 하심하는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노년 비법

불심은 어머니가 전해준 최고의 유산이었다. 가난한 농촌살림에도 어머니는 한 해 농사를 수확하면 제일 먼저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부터 챙겼다. 행여 작은 티끌이라도 섞일까 손으로 쌀알 하나하나를 고른 뒤 머리에 이고 20리 길을 걸어 부처님께 공양올렸다. 어머니는 그 길을 어린 딸과 함께했고,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을 보여줬다. 어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늘어날수록 시나브로 마음 밭에는 불심의 씨앗이 싹을 틔우고 깊이 뿌리를 내렸다.

배고프고 고단했던 새마을운동 당시 우리네 농촌이 그러했듯이 김 이사장의 고향에도 작고 아담한 교회가 있었다. 일요일이면 친구들은 교회로 갔고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면 떡과 사탕, 계란 등 선물을 한 아름씩 받아왔다. 어린 시절이었으니 교회 친구들이 부러웠으리라. 그러나 그는 달랐다. 친구를 쫓아, 선물 때문에, 호기심으로 한번쯤 교회에 갈만도 하건만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가지 않겠다는 결심에 그런 것은 아니다. 그냥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당시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이 시대의 나이팅게일이 되어 희생과 봉사의 삶을 살겠다고 서원한 그는 공주간호대학에 입학했다. 집을 떠나 홀로 자취생활을 한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었다. 그런 그를 친구들은 교회로 인도하려 했다. 그에게 말벗이 되어주고, 어려움을 함께 나누던 친구들이었다. 1966년 학교를 졸업한 뒤 공주결핵병원에서 간호사로 일을 시작했다. 동료 간호사들은 그를 교회로 이끌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심어놓은 불심의 씨앗은 어느새 단단히 뿌리를 내려 도량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누군가 불자인지 물어오면 선뜻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며느리, 아내, 엄마의 역할을 해야 했던 가정생활과 의료인의 사명을 다해야 했던 직장생활에 매여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알 수 없을 만큼 바쁜 나날이었다. 불서를 읽고 기도를 하고 신행활동을 하는 불자로서의 삶은 언감생심 사치처럼 느껴졌다.

1992년 변화의 계기가 찾아왔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중심으로 국립서울병원 내 종교모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종교가 같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신앙을 나누고 친목을 다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무슨 연유인지 문득 부러워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임이 생기면 직장에서라도 기도하고 정진할 수 있잖아요. 저라도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죠. 알음알음 알아보니 간호사 가운데 10여명이 불자더라고요. 어렵사리 공간을 허락받아 부처님을 모시고 법회를 보던 첫날의 벅찬 환희심과 가슴 떨림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국립서울병원 불자회는 김 이사장의 온전한 노력으로 그렇게 출범했다. 매주 월요일 법회를 봉행하고 성지순례를 통해 친목을 다지며 회원들의 애경사를 챙기면서 서로를 도왔다. 모임이 활성화되자 동참 발길도 속속 이어졌다. 이웃종교에 비해 출발도 늦고 외부지원도 빈약했지만 구성원들의 결속력과 친화력은 오히려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병원이라는 공간이 환자는 물론 환자를 돌보는 의료인들도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해지기 쉬운 곳입니다. 고통과 아픔을 보듬는데 종교만한 것이 없잖아요. 병원 내 종교모임이 생기기 전에도 기독교인들은 병원 주변 교회나 성당에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불자들은 이마저도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러던 중 병원 내에서 부처님을 뵙고 법문을 들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마련되니 드러내지 않았던 불자들이 속속 동참한 것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지구 반대편에선 태풍을 일으킨다고 했던가. 그의 소박하고 진솔한 날개 짓은 국립서울병원을 넘어 전국 불자 의료인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계기가 됐다. 1999년 조계종은 직장단위 신행단체 조직에 착수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병원불자회 대표들과의 만남이 성사됐다. 병원불자회 대표들은 전국에 산재한 병원불자회를 아우르는 연합단체를 조직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1999년 10월, 7개 병원 100여명의 의료인들이 동참한 가운데 그를 초대회장으로 전국병원불자연합회가 창립됐다.

“정말 신이 났어요. 천수천안관세음보살님을 완성한 화공의 기쁨이 이와 같았을 겁니다. 무엇보다 거사님들의 동참에 큰 힘을 얻었고, 발심 초기이다 보니 한 번 해보자는 의욕으로 가득했어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단체의 원력을 사회에 회향하는데 병불련 만큼 좋은 여건을 가진 곳도 없잖아요. 그렇게 병불련은 출범과 함께 의료지원이 절실한 곳을 찾아 부처님의 자비나눔을 실천하는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김 이사장은 2005년 국립서울병원을 퇴임하면서 병불련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소임을 놓은 뒤에는 한 걸음 뒤에서 후배들의 활동을 격려하고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서 병불련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음에서 멀어져서가 아니다. 행여 후배들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배려에서다.

“병불련은 신행단체이자 의료봉사를 통해 부처님의 자비를 전하는 포교단체입니다. 병불련의 원력이 환하게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훌륭한 의료진, 아픈 이들에 대한 지극한 마음이 갖춰져야 합니다. ‘찬집백연경’에 높다는 것은 언젠가 떨어지고, 있다는 것은 언젠가 없어지며, 태어난 것은 언젠가 죽어가고, 모이는 것은 마침내 흩어진다 했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행여 환자에게 쏟아야 할 그 마음이 저로 인해 방해가 된다면 저는 물론 병불련에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병불련을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로서 응원하는 것이 제 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그는 수행과 기도에 매진하고 있다. 감사의 기도로 아침을 열고 관음정진으로 하루를 회향한다. 이웃과 나누고 다른 사람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발원도 놓치지 않는다. 경전공부도 빼놓을 수 없는 일과다.

“나이팅게일의 봉사와 희생의 삶을 조금이라도 닮고 싶어서 간호사가 됐습니다. 그리고 40여년간 간호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48세 되던 해 국립서울병원 불자회 창립을 계기로 본격적인 불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지만 불자로 사는 삶은 여전히 부족하기만 합니다. 참 나를 찾는 길 또한 여전히 멀기만 합니다. 다음 생에는 출가자가 돼 부처님을 닮아가는 기쁨을 경험하고 싶습니다.”

그의 나이 70, 일생을 통해 터득한 행복한 노년의 비법을 잔잔하게 설명한다.

“현재에 충실하며 만족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흔히 행복하고 여유로운 노년을 위해 젊어서부터 경제적인 것들을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가난한 사람입니다. 때문에 경제적인 것만큼이나 부처님 법을 일찍 만나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내려놓는 것만큼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위한 명약은 없으니까요.”

그는 오늘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대 삼아 정진한다. 이웃에 대한 나눔을 실천하고 기도하면서 자신을 관찰할 수 있는 인연이 있기에 그의 내일도 여여(如如)할 것이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45호 / 2014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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