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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김홍도, ‘기로세련계도’

기자명 조정육

법장비구 극락과 단원 명작은 원력이 일궈낸 눈부신 결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무량수경

개성 만월대서 열린 계회 그림
가을빛 물든 송악산 풍경과
손님·구경꾼들 흥겨움 묘사

온갖 슬픔이 사라진 극락은
사바세계 뭇 중생의 이상향

단원이 일상서 명작 만들고
법장비구가 극락 만들었듯
좋은 세상 만드는 건 우리 몫

▲ 김홍도의 ‘기로세련계도’(1804년), 비단에 채색, 137×53.3cm, 삼성리움미술관 소장.

여름이 도착한 탄천에 나갔다.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된 뒤로 탄천에 나가는 횟수가 많아졌다. 족저근막염 때문에 많이 걷지 못한 나에게 자전거는 발이나 다름없다. 자전거 바퀴를 굴리며 앞으로 나아가면 양쪽에 늘어선 나무와 꽃들이 저절로 뒤로 밀린다. 그때는 마치 내가 한 마리 새가 되어 나무숲을 날아다니는 기분이다. 자전거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을 때까지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지고 욱신거리는 과정을 견뎌낸 결과다.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와 준 내가 고맙고 자랑스럽다.

탄천에 자주 나오다보니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자연을 생생하게 느끼게 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내일과 모레가 다를 것이다. 지금은 버드나무 꽃가루도 날리지 않고 아카시아향도 사라졌다. 시계풀과 금계국과 넝쿨장미가 한창이다. 시시각각 바뀌는 계절의 움직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우주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변화함을 실감한다.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세 가지 불변하는 진리를 뜻하는 삼법인(三法印)의 첫 번째가 제행무상이라 가르친 불교의 교리는 얼마나 위대하고 과학적인가. 자전거를 타며 자연을 감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길 수 있는 탄천 길은 말없는 말로 법문을 들려주는 숭고한 법당이다. 향긋한 야외 법당에서 새처럼 날아다니며 부처님 법문을 들을 수 있는 이곳이 내게는 바로 극락정토다.

처음부터 이곳이 극락정토였던 것은 아니다. 10여년 전 처음 이사 왔을 때만 해도 이곳은 아수라장이었다. 쓰레기와 폐기물이 뒤범벅이 되어 걷는 것조차 힘들었다. 탄천에는 맑은 물 대신 악취가 풍기는 하수구가 흘렀다. 길에는 나무 한 그루 심어져 있지 않아 가까이 있는 경부고속도로의 차량 소음이 여과 없이 울렸다. 그런데 10년 사이 완전히 바뀌었다. 자갈과 폐기물이 있던 자리에 산책로가 만들어졌고 쓰레기가 있던 자리에 꽃이 피었다. 더러운 오수가 흐르던 탄천은 오리가 헤엄치는 맑은 물로 바뀌었다. 산책로에는 버드나무가 자라 고속도로의 소음을 차단해주는 방음벽이 되었다. 그야말로 상전벽해다.

극락세계는 어떤 곳일까.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으로 구성된 ‘정토삼부경’ 곳곳에는 극락세계의 장엄한 모습이 곳곳에 묘사돼 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불국토는 금, 은, 유리, 산호, 호박, 자거, 마노 등 칠보로 땅이 이루어지고, 그 넓이는 광대하여 끝이 없으며, 그곳 온갖 보배들은 서로 빛나서 한량없이 찬란하고 미묘 청정하게 장엄되어, 시방세계의 어느 세계보다도 뛰어나게 훌륭하니, 그것들은 모든 보배 중의 으뜸으로써 마치 타하자재천의 보배와도 같으니라. 또한 그 국토에는 수미산과 금강철위산 등 일체 산이 없고, 바다나 강이나 시내나 골짜기 우물 등도 없으나, 보고 싶어 할 때는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바로 나타나느니라. 그리고 지옥과 아귀와 축생 등의 괴로운 경계도 없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도 없으니,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항시 온화하고 상쾌하느니라.”
‘무량수경’에 나오는 내용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아미타경’과 ‘관무량수경’에 나온다. 참고하시기 바란다. 이렇게 아름다운 극락세계를 세운 분은 아미타부처님이다. 아미타부처님은 부처가 되기 전에 법장(法藏)비구였다. 법장비구는 극락세계를 세우기 위해 오랜 세월동안 청정한 수행을 갖춘 뒤 마침내 세자재왕(世自在王) 부처님 앞에서 불국토를 이룩해도 된다는 인가를 받게 되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인가를 받은 것만으로도 기뻐 날뛸판에 법장비구는 그러하지 않았다. 오히려 중생을 향한 보리심을 담은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을 세웠다. ‘제가 부처가 될 적에…’로 시작되는 법장비구의 사십팔대원은 ‘자타불이(自他不二)’를 기본으로 하는 불교인이라면 반드시 들어봐야 할 감동스런 법문이다.

1804년 9월, 수많은 사람들이 개성 만월대에 모였다. 만월대는 송악산 기슭에 있는 옛 왕궁터로 유서 깊은 장소다. 한때는 화려했지만 이제는 고려 왕조의 자취만 남은 만월대에서 오늘은 64명의 노인들이 계회를 열었다. 계회를 준비한 사람들은 며칠 전부터 만월대의 2단 석축 위에 차일을 치고 병풍을 두르고 자리를 깔았다. 드디어 오늘 연회가 시작됐다. 64명의 노인들이 꽃병과 술병이 올려진 중앙의 주칠(朱漆)한 상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았다. 상 위의 꽃병에는 붉은 색 꽃이 담긴 꽃병과 술동이가 놓여졌다. 두 명의 무동(舞童)이 악기에 맞춰 춤을 추며 흥을 돋우는 가운데 일곱 명의 시동이 참석자들한테 연신 술을 대접하기에 바쁘다.

참석자들 뒤로는 연회를 준비한 사람들과 음식을 장만한 사람들 그리고 견마꾼들로 북적거린다. 잔치마당에 구경꾼들이 빠질 수 없다. 동네 사람들, 나무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잔치가 궁금한 사람들은 전부 모였다. 잔칫집이라면 절대 빠지지 않는 각설이까지 등장했다. 구경꾼들은 비록 오늘 초대받은 손님이 아니라서 잔칫상을 받을 수는 없지만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언제 정보를 입수했는지 구경꾼들을 대상으로 술을 파는 주모도 보인다. 행사장에서 들리는 풍악소리에 맞춰 절로 춤을 추는 사람도 있다. 원님 덕에 나팔 부는 격이다.

어쩌다 한 번 있을까말까 할 정도로 큰 잔치장면을 김홍도가 그렸다. 김홍도는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를 그리면서 전통적인 계회도 묘사 방식을 선택했다. 그림 상단에는 계회도의 내력을 밝히는 홍의영(洪儀泳 ,1750~1815)의 발문을 쓰고 중간에는 계회도 장면을, 하단에는 참석자를 적어 넣었다. 상단에 제목과 발문, 중단에 그림, 하단에 참석자를 적는 계축(契軸) 형식은 조선 전기부터 내려온 오래된 전통이다. 그러나 김홍도가 살았던 조선 후기에는 계축 대신 화첩에 계회도를 그리는 계첩(契帖) 형식이 유행했다. 김홍도가 당시에 유행하던 계첩 대신 계축을 선택한 것은 만월대가 갖는 역사성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더구나 그림 속 주인공들이 나이든 사람들이 아닌가.

김홍도는 그림을 두 부분으로 나눴다. 배경이 된 송악산과 오늘의 주인공들이 모인 만월대의 계회 장면이다. 가을빛이 물든 송악산은 화면의 절반을 여백으로 남겨둘 만큼 시원하고 넉넉하게 그렸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잔치마당에는 빈 공간이 거의 없을 정도로 꽉 차게 그렸다. 두 장면이 교차하는 부분에는 안개를 풀어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안개로 인해 서로 다른 성격의 산수화와 풍속화가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한다. 안개는 깊이감과 거리감도 느끼게 해준다. 뛰어난 구도감각이다. 송악산이 그려진 산수 부분과 계회 장면이 그려진 풍속 부분은 시점도 달리했다. 송악산은 아래에서 위를 쳐다보는 고원법(高遠法)으로 그린 반면 만월대는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렸다. 한 화면에 여러 시점을 혼재한 경우는 동양화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김홍도는 그저 단순히 기록화로 남을 수 있는 모임 장면을 탁월한 작가적 능력을 발휘해 명작으로 만들었다. 하엽준(荷葉:산이나 바위를 묘사할 때 연잎의 잎맥 줄기와 같이 그리는 기법)으로 윤곽선을 잡고 연한 색으로 물들은 송악산은 그 부분만 따로 떼어 독립시켜도 훌륭한 진경산수화가 될 수 있을 만큼 잘 그렸다. 잔치에 참여한 각 인물들의 특징을 실감나게 잡아낸 계회 장면은 풍속화가로써의 김홍도의 능력이 십분 발휘되었다. 하나의 작품이 진경산수화이자 풍속화이며 계회도이자 기록화가 된 특별한 경우다.

이 작품은 김홍도가 60세 때 제작했다. 자신을 아끼던 군왕 정조와 스승 강세황이 세상을 떠난 뒤 한참 실의에 빠져 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완성한 작품인데 김홍도의 필력은 전혀 훼손되지 않았다.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이 있듯 거장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는다. ‘기로세련계도’에는 고약한 생활고와 흉흉한 무력감 따위가 감히 근접할 수 없는 장엄한 작가의지가 담겨 있다. 예술가로 생생하게 살고자 했던 숭고한 의지다. 의도한 것은 아닌데 어쩌다보니 세 차례 연속 김홍도 그림만 소개했다. 필자의 잘못이 아니다. 그의 그림이 워낙 좋다보니 저절로 손이 가게 되었으니 원인은 김홍도라는 거장에게 있다.

김홍도가 평범한 모임 장면을 잊을 수 없는 명작으로 만든 것처럼 내가 날마다 휘파람을 불며 찾아가는 탄천도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 아름답게 변했다. 극락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혼탁한 기운도 들어설 자리가 없는 극락은 저절로 된 것이 아니다. 법장비구의 원력에 의해 만들어졌다. 법장비구는 세자재왕불의 설법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국왕 자리를 버리고 출가했다. 그리고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고 모든 생사 고난의 근원을 없애 주는 청정미묘한 불국토를 이룩하겠다는 원력을 세웠다. 그는 불국토를 건설하고 장엄하기 위해 오겁(五劫)의 세월동안 선정에 들어 청정한 수행에 매진했다. 오년이 아니라 오겁이다. 극락은 한 두 해 준비해서 급조한 모델하우스가 아니다. 그렇게 준비해서 만든 세상을 아낌없이 중생을 위해 무료로 개방했다. 우리도 그들처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위해 무엇인가 아름다운 일을 하면 참 좋겠다.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1246호 / 2014년 5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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