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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김대승 감독 ‘번지점프를 하다’

기자명 법보신문

사랑은 윤회를 거듭해도 계속

올 겨울의 한국영화 흥행 성적표는 ‘노력을 요함’ 정도다. 그나마 명함을 내밀고 있는 영화는 ‘하루’와 ‘번지 점프를 하다’가 있다. 이번 주는 웅장한 사찰도 등장하지 않고 주요 배역을 맡은 스님도 찾아볼 수 없는 영화를 소개한다. 성급한 독자께서는 볼만한 불교 영화를 제쳐두고 도대체 어떤 영화를 말하려는 수작인가라고 의아해 하실 것이다.

요즘 영화애호가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있으며, 한참 주가를 올리고있는 공중파 미니 시리즈의 장면으로 삽입되기까지 한 한국영화인 ‘번지 점프를 하다’이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감독의 발언대로 ‘천 사람의 관객이 천 가지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우선 두 남녀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가슴아픈 첫사랑의 재회를 담은 멜로드라마다. 영화 개론 식으로 구분하자면 현실의 재현보다 환타지나 초현실적 세계의 창조 쪽에 가깝다. 소수 성애자 입장에서 보면 종적 관계를 중시하는 이성애보다 동성간의 애정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한 영화다. 여기서 발전하여 종교적인 입장에서 볼 때 윤회(輪廻)적 세계관을 잘 활용한 영화다. 윤회는 한 존재가 사하여 다른 존재로 태어나 수레바퀴가 돌아가듯이 삼계(三界)와 육도(六途)를 떠도는 것이다.

‘번지점프를 하다’는 사랑을 다룬 멜로드라마다. 멜로드라마는 범박하게 말하자면 사랑하는 두 남녀 사이에 장애물이 설정되고 극복하는 파노라마가 전부다. 하지만 ‘번지점프를 하다’는 2001년에 만들어진 상투적인 멜로드라마와는 일정한 거리를 둔다. 그것은 ‘한 사람만을 죽었다 깨어나도 사랑한다’는 신념을 영상적으로 관철시킨다는 점이다. 한 남자가 다시 태어난 한 여자/남자를 사랑하는 설정은 윤회라는 불교적 세계관을 디렉터스 컷으로 활용한다. 좋은 영화의 기준은 많지만 영상적 표현이라는 항목은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 영화에서 17년이라는 시간의 갭을 없애는 방법의 성공여부에 의해 개연성과 윤회의 설득력이 생길 것이다. 대학시절 태희는 숟가락은 왜 ㄷ 인지 알고 싶어하며, 17년 후 현빈도 똑같은 질문을 한다. 태희와 현빈은 손가락의 모양이 닮았으며 동일한 라이터를 소유한다. 이 같은 반복된 코드는 ‘남자로 환생한 옛 애인을 사랑하는 남자의 이야기’로 수렴시키면서 영화에 탄력을 준다.

이 영화의 압권은 17년이 지난 후 용산역에서 기다리는 인우와 죽은 태희/환생한 현빈이 만나는 장면이다. 인우는 용산역에서 태희가 환생한 현빈과 마주본다.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카메라가 열차의 직사각형 유리창을 잡는다. 열차의 유리창이 만든 프레임 안으로 태희(이은주)가 들어오고 인우(이병헌)와 17만의 포옹을 한다. 인우와 태희의 만남을 시각화하기위해 현빈 대신 태희로 변화시켜 유리창안으로 집어넣어 탁월한 ‘프레임 안의 프레임’을 성취한 명장면이다.

이 영화는 윤회의 세계관을 멜로드라마의 장치 속에서 무리없이 용해시킨 수작이다. 윤회는 시작이 없고 끝은 열반이다. 하지만 인우의 사랑은 시작이 존재하나 끝은 없다. 사랑의 수레바퀴는 누구도 멈추게 할 수 없는 것이었던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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