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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박영의 충남대 명예교수

“한국불교 영역할 땐 가슴 두근거리는 20대 청년”

▲ 박영의 교수는 “외국인들이 우리의 불서를 읽으면서 환희심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댄다”고 83세의 나이에도 펜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불교사에 있어서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13), 그의 생애는 남방과 북방을 아우르는 키워드다. 초기불교와 대승불교,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 앞에는 ‘위대한 번역가’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인도인으로서 팔리어와 산스크리트, 중국어, 중앙아시아어 등 여러 나라의 언어에 능통했던 그는 경율론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경전 380여권을 한문으로 번역했다. 그의 글은 간결하면서도 명쾌했다. ‘금강경’과 ‘법화경’, ‘아미타경’ 등 한역경전들은 현대에도 수많은 나라에서 읽히고 있다.

유마경 무한자비 감동해 개종
한국불교 英안내서 없단 말에
70대 영역불사 발원하고 매진
불교용어사전 등 30여권 회향

대개 번역은 다른 나라의 글을 우리의 글로 바꾼 뒤 지혜와 감성을 입히는 예술로 정의한다. 다른 언어와 글로 표현된 것들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와 글로 옮기는 것만으로는 원작에 담긴 감동과 감성을 그대로 전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여 그 내용이 전문분야라면 언어적 능력은 물론 전문가 못지않은 식견도 가져야 할 터. 더욱이 우리의 언어와 글로 표현된 것들을 다른 나라의 언어와 글로 옮기는 과정은 더 많은 노력이 요구된다.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지역의 문화와 특성, 감성까지 이해하고 현지인만큼 언어를 구사하지 못한다면 번역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영의(효산) 충남대 명예교수의 지난 10여년은 구마라집이 그랬던 것처럼 경전번역에 집중돼 있다. 구마라집이 수많은 경전을 번역해 중국에 불교를 전한 것처럼 그는 83세의 나이에도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잠시도 펜을 놓지 않는다. 그의 손을 거쳐 영역된 출판물만 30여종. 조계종을 소개하는 영문책자도, 영문판 ‘경허집’ ‘간화선입문’도 그의 손을 거쳤다. 특히 조계종에서 진행한 한국전통사상총서 영역작업 담당자 가운데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동참해 역대 고승 26명의 선시를 영어로 옮기는 가장 어려운 작업도 담당했다.

박 교수의 번역불사는 비단 기존 서적을 영역하는데 머물지 않았다. 참선과 불교에 관심 있는 외국인들을 위해 영어와 한글로 구성된 ‘마음찾기’라는 제목의 시집 7권을 발간했고, 2010년에는 불교용어를 영어로 설명한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을 편찬했다. 1200여 페이지에 5000여개의 단어를 담은 이 불교용어사전은 오로지 박 교수의 원력에 의해 편찬됐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더욱 놀라는 것은 방대한 분량을 담은 사전 편찬을 정년퇴임 후인 70대에 시작했다는 점이다. 원력과 신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리라.

 
그의 하루는 단출하다. 행주좌와 어묵동정(行住坐臥 語默動靜), 자고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종일 불서를 번역하고 번역한 내용을 컴퓨터에 옮기는 일에 마음과 정성을 다한다. 이제 쉼표를 찍고 내려놓아도 충분할 것 같은데 그의 일상은 그렇지가 않다. 한국불교 영역불사가 이생의 화두이기에 쉼표는 없다. 서재엔 손때 묻은 불교관련 서적과 영문학 서적으로 가득하니 이제 막 논문초고를 마친 젊은 학자의 열정이 느껴진다. 책상 위 번역을 위한 자료들로 수북하니 여느 대학원생의 책상 같다고나 할까.

박영의 교수에 대해 자비명상 대표 마가 스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보살행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실참하는 불자”라고 평가했다. 스님은 “영어권에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전하는 것으로 지구별에서의 삶을 멋지게 회향하고 있다”며 “승속을 떠나 불제자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한다”고 말했다. 김용표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는 “고령에도 청년 못지않은 열정과 신심으로 수행과 학문, 불교활동에 매진하는 모습은 후학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천상 불교 집안에서 자란 불자일 것 같은 그이지만, 사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가정집 일부를 교회로 사용하게 하고 전도에도 앞장서는 등 대전 지역 내 손꼽히는 크리스천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불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대학시절 우연히 보게 된 ‘유마경’ 한 구절 때문이다.
 
“‘어리석음과 탐욕, 성내는 마음으로부터 내 병이 생겼습니다. 모든 중생이 병에 걸려 있으므로 나 또한 병들었습니다. 모든 중생의 병이 나으면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멍했지요. 중생을 향한 이 사랑에는 어떠한 폭력이나 차별도 없었습니다. 아마 은연중 가지고 있던 개신교에 대한 반감이 ‘유마경’의 무한한 자비와 사랑을 만나면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 같습니다.”

박 교수는 이후 ‘금강경’ ‘화엄경’ ‘육조단경’ ‘신심명’ 등 경전을 비롯해 부처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와 영문과 교수가 된 뒤에는 충남대 교수불자회, 한국불교연구원 대전구도회, 대전 자광사 등에서 신행활동에도 매진했다. 영미문학에 대한 불교와 동양사상적 비교연구를 위해 한국동서비교문학학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그에게 번역불사는 필연이었던 것 같다. 불서 읽기를 좋아하고 신행활동에만 동참했던 평범한 불자인 그가 번역불사라는 대원을 세우게 된 것은 정년퇴임 후 70세가 넘어서다. 대전 자광사에서의 인연으로 알고 지내던 원주 구룡사 주지 원행 스님에게서 급하게 연락이 왔다. 주한 외국 대사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는데 사찰안내와 통역을 부탁한다는 요청이었다. 불상과 전각, 탱화의 의미와 사찰예절까지 일반인에게 우리말로 설명하라고 해도 머리를 흔들 상황인데 영어로 설명하고 통역해 달라니 말문이 막혔다. 그렇다고 영문과 교수체면에 못한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그길로 조계종 포교원을 찾아가 혹 한국불교를 소개하는 영문 안내책자가 있느냐고 물었지요. 그런데 ‘없다’는 겁니다. 작은 안내서라도 없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니 한국불교와 간화선을 세계화한다면서 손바닥만한 영문 안내책자 하나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소리를 쳤지요. 그러면서 한국불교와 사찰을 소개하는 영문 안내책자를 만들어 올 테니 기다리라며 큰소리를 쳤습니다.”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그의 원력은 그렇게 시작됐다. 당초 소형 안내책자 제작을 목표로 번역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사찰을 방문해 처음 접하게 되는 순서대로 불교자료를 수집했다. 산문과 전각, 불상, 보살상, 경전, 예불 및 법회 등을 하나하나 정리하다보니 그 양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실용 한영 불교용어사전’이 탄생하는 계기가 됐다. 이렇다 보니 불교용어사전은 일반적인 사전의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안내책자와 같이 한글 설명과 해설은 한국사람에게 필요한 내용으로, 영문 설명과 해설은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스님이나 불교학자가 아닌 영문학자가 불교용어사전을 만들려고 하니 어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생판 처음 보는 불교용어가 부지기수였고,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공부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동국역경원의 ‘불교사전’과 홍법원의 ‘불교대사전’, 서광 스님의 ‘한영불교사전’을 교재삼아 영어권 불교서적을 뒤적이며 6년여를 정진한 결실이었다.

그의 원력이 무르익기 시작할 즈음 번역불사의 인연은 인드라망의 그물코처럼 끝없이 이어졌다. 2006년 조계종 포교원으로부터 ‘경허집’의 영역화 제안이 들어왔다. 문화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진행 중인 ‘경허집’ 영역사업이 난항을 겪자 포교원 관계자들이 박 교수를 생각해낸 것이다. 경허 스님의 법문과 선시 255편을 모은 ‘경허집’ 자체가 결코 쉽지 않은 탓에 내로라하는 스님들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한 채 3년의 세월을 허비한 후였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개월뿐이었고, 그는 3개월 2주 만에 완성본을 포교원에 전달했다.

이후 청화 스님의 법어집과 우학 스님의 수필집 및 법문집, 성담 스님의 법어집 등을 영역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이었다. 잇단 요청에 자신감을 얻은 그는 ‘금강경’ ‘발심수행장’ ‘수심결’ ‘선가귀감’ 등 불교의 가르침이 담긴 주요 글들을 차근차근 영역하며 7권의 ‘마음찾기’ 시리즈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70세를 넘어서면 어느 곳에도 걸림 없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할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한 노년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할 일이 있다는 것, 그것도 다른 사람을 위해, 불교를 위해, 부처님을 위한 일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죠. 보람과 긍지 그리고 행복의 길이기에 오늘도 책상에 앉아 펜을 듭니다.”

박 교수의 번역불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요즘은 ‘마명보살의 손다라난다’와 정여 스님의 ‘나를 찾아가는 명상여행’을 영역 중이다. 그의 마지막 목표는 ‘사명대사어록’을 영어로 번역하는 것. 외국인들이 사명대사어록을 읽으면서 환희심을 느끼는 모습을 상상하면 가슴이 두근댄다. 젊었을 때의 열정, 그것이 기억난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세계에 전하기 위한 그의 정진은 내일의 태양처럼 다시 솟을 것이다. meopit@beopbo.com

[1256호 / 2014년 8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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