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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용운 ‘군말’

기자명 김형중

‘님’ 정체 밝힌 ‘님의침묵’ 서시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시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연애가 자유라면 님도 자유일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이름 좋은 자유에 알뜰한 구속을 받지 않더냐. 너에게도 님이 있더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羊)이 기루어서 이 시를 쓴다. 

‘님의 침묵’

님은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
잃어버린 조국과 자유와
오욕의 삶 초극한 절대자
부처이며 중생이고 조국

만해 한용운(1879~1944)은 1919년 3·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로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다. 시인 고은은 “3·1운동은 우리나라 오천 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쾌거 중에 하나이다. 만약 3·1운동이 없었다면 우리 민족은 다른 국가의 압제나 구속으로부터 항거할 줄 모르는 개나 돼지와 같은 하등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은 외부 세력에 의한 압제 하에서 항거하고 자주 독립을 요구할 줄 아는 자유를 사랑하는 고등 민족”이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만해는 한국 현대시에서 큰 업적을 남긴 시집 ‘님의 침묵’을 쓴 위대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한국문학사에서 한시에서 한글 근대시로 전환되는 시기에 교량적 역할을 한 대표적 시인이다. 그의 ‘님의 침묵’은 한국의 근대문학에서 사상적 빈곤으로부터의 탈피이며, 전통단절론의 극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의 전통사상인 불교와 근대문학과의 결합을 성공적으로 달성시킨 공적을 남긴 것이다.

만해는 여느 시인들처럼 시동인으로 시를 발표하거나 시인 행세를 한 시인이 아니다. 1926년 어느 날 갑자기 ‘님의 침묵’이란 시집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주요한은 “‘님의 침묵’은 모국어인 조선어로 가장 아름답게 시를 노래한 전무후무한 시집이다. 조선의 시단에 큰 행운이다”고 평가하였다.

‘님의 침묵’은 만해가 동양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키탄잘리’의 시집을 보고 격동하여 1925년 설악산 백담사 오세암에서 여름 한 철에 쓴 시집이라고 전한다. 산문시 형식과 시집 첫머리에 ‘군말’(서시(序詩)에 해당하는 산문시)과 말미에 ‘독자에게’(마무리 짓는 글)란 시적인 산문을 실은 것은 ‘키탄잘리’의 영향이다. ‘님의 침묵’은 이 2수의 시와 본문의 88수의 시를 합하면 90수의 시로 구성되었는데 ‘님’이란 주제로 쓴 연작시이다.

‘군말’은 할 필요가 없는 군더더기 같은 말이다. 선(禪)에서는 모든 말이 군말이고, 공에서는 모든 사물과 행위가 꿈이요 그림자일 뿐이다. 만해는 ‘님의 침묵’의 서시(序詩)와 같은 이 시에서 ‘님’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님은 내가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

만해의 시에서 ‘님’은 간절한 그리움의 대상으로 잃어버린 조국, 잃어버린 자유, 오욕의 삶을 초극하려는 절대자, 부처이며 또한 중생,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잃은 조선인이요 조국이다. ‘어린 양’은 원래 ‘구약 출애굽기’에 나오는 애굽에게 억압받은 유대인이다.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영도하였듯이 만해는 조선의 모세가 되어 조선을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자주 독립을 하도록 어린 백성(중생)을 일깨우기 위하여 ‘님의 침묵’이란 시를 쓴 것임을 밝힌 것이다.

올해는 길을 잃고 헤매던 어린 양이 잃어버린 님을 되찾은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만해는 ‘조선 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서 “자유는 만유의 생명이요, 평화는 인생의 행복이다”고 하였다. 온 국민이 착한 양처럼 화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을미년 푸른 양의 해가 되길 기원한다.

김형중 동대부중 교감·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278호 / 2015년 1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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