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스테이-중
염불스테이-중
  • 최호승 기자
  • 승인 2015.03.24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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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 맞서 싸울 시간에 아미타불 부르고 마음에 새겨라”

▲ 5일 동안 5만번 “나무아미타불”을 부르짖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불렀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 재회하고 싶은 마음처럼 절절했다. 염불스테이 기간 동안 동산법당의 공기는 뜨거웠다.

신(信), 원(願), 행(行)은 따로 놀았다. 믿음 위에 원력 세우고 실천해야 했건만. 극락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마음 다해 극락왕생을 원하고 아미타불에 귀의하는 염불은 녹록치 않았다. 합장한 두 손이 풀리거나 졸음으로 꾸벅거렸다. 심지어 입에서는 “나무아미타불” 대신 번뇌망상이 튀어나왔다. 허튼 생각 떠올리는 찰나에 아미타 부처님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루 1만번 “나무아미타불”
70분씩 3차례 오로지 염불
회향 5분전마다 관상염불로
부처님 상호를 마음에 담아

허튼 생각 떠올리는 찰나에
입 밖에 번뇌들만 튀어나와
목탁·염불 공명 순간 ‘환희’


이명자(57·아유타)씨는 딴 생각이 가득했다. 20대에는 나름 ‘열혈 불자’였다. 부산 범어사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며 부처님만 바라봤다. 생활에 치여 부처님은 멀어졌다. 결혼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 동안 무릎이 상했고 몸도 아팠다. 마음을 되돌리고 싶었다. 돌아보니 50대였다. 동산불교대에 입학했다. 간만에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느꼈다. “나무아미타…남편은 뭐할까.” 깜짝 놀랐다. 육자염불인 나무아미타불 한 글자 한 글자 챙기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마음 다잡아도 금세 염불에는 온갖 잡생각이 끼었다. 애들과 남편 걱정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탐심도 고개를 들었다. ‘언제 염불삼매에 들까?’

이종현(59·법광) 동산 이사장도 마음의 입을 온전히 열지 못했다. 아미타사가 자리한 대지에 묻힌 아들 볼 면목이 없었다. 다른 곳에 가 있는 마음은 그곳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세상살이 끝나면 나도 가는데…. 왜 일심으로 하지 못할까?’ 정용식(63·혜조)씨도 마찬가지였다. 배가 고파지면 저녁공양 시간에 먹을 국수가 떠올랐다. 염불삼매를 원했던 그였지만 마음도 입도 잔치국수를 찾았다.

염불은 혼란하지 않은 한 마음으로 아미타 부처님 명호를 불러야 했다. 아미타 부처님 명호가 부처님 공덕을 불러오고, 부처님 명호는 깨달음의 씨앗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6일이라는 염불스테이 기간 동안 회향일을 빼면 5일은 염불뿐이었다. ‘천수경’에서 시작해 ‘불설아미타경’ 독송, 장엄염불을 70분씩 3차례 하고 나면 오후 9시였다. 그렇게 하루 동안 1만번씩 아미타 부처님에게 귀의하겠노라 외쳤다.

“원하오니 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부질없는 다른 생각 아니하리다. 아미타불 부처님만 따르오리다. (…중략…) 이 몸 지금 귀의하여 삼업죄를 참회하고 제가 지은 선행복덕 중생 위해 회향하며, 원하건대 나와 함께 염불하는 모든 사람 세상살이 끝난 후엔 극락정토 태어나서 아미타불 친견하고 생과 사를 뛰어넘어 부처님이 하신대로 중생제도 하오리다.”

 
▲ 염주를 돌리거나 겹겹이 감은 손. 손등에 패인 주름 안에는 저마다의 간절함이 깊게 고였다.

누군가는 아미타 부처님을 붙들었고, 다른 누군가는 더러 놓쳤다. 염불행자들의 “나무아미타불”은 입에서만 맴돌았다. 마음이 입 열고 부르는 “나무아미타불”은 아직이었다. 목탁은 여전히 목소리를 높였고, 북소리가 장단을 맞췄다. 날이 갈수록 소리가 맞아갔다. 점점 목탁소리와 “나무아미타불”은 공명하기 시작했다. 공명하는 소리는 염불행자들의 닫힌 마음을 두드렸다. 염주를 돌리거나 겹겹이 감은 손. 손등에 패인 주름 안에는 저마다의 간절함이 고였다.

4일째 되던 날이었다. 염불행자들은 비로소 마음의 입을 열고 아미타불을 불렀다. 마음은 진정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하길 원했다. 차라리 그리움이었다. 정토를 향한 마음이 사무쳤다. 사랑하는 이와 이별한 뒤 재회하고 싶은 마음처럼 절절했다. 염불스테이 시간이 지날수록 염불 열기는 더해갔고 동산법당의 공기는 뜨거웠다. 땀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번뇌도 땀구멍으로 빠져나갔다. 순간이었다. “나무아미타불”은 목탁소리와 하나로 흘렀다. 나중엔 소리마저 사라졌다.

김연희(69·연화선)씨는 염불하는 내내 아미타불을 애타게 불렀다. 자신이 엄마와 아빠를 찾아 헤매는 어린 아이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울었다. 어렴풋이 아미타 부처님이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동산불교대 39기이자 의식반 32기인 박해훈(벽산)씨도 절절했다. 임종을 눈앞에 둔 어머니와 아미타 부처님이 겹쳐 간곡하게 염불했다. 염불이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었다. 염불행자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염불스테이는 명호를 부르는 데 그치지 않았다. ‘관상염불(觀想念佛)’도 큰 흐름이었다. 일체가 아미타 부처님의 화신임을 믿었고, 마음을 집중했다. 탐진치 삼독심에 물든 어리석은 마음을 여의고, 마음을 아미타 부처님의 원력에 송두리째 맡기는 염불이었다. ‘죽어야 사는 수행’이었다. 매일 아미타 부처님 명호만 부르짖던 전수염불(專修念佛)이 끝나면 10분을 남겨놓고 별관상(別觀想)을 했다.

무견정상상(無見頂上相), 정상육계상(頂上肉髻相), 발감유리상(髮紺琉璃相)으로 시작해 진금색인 아미타 부처님의 몸과 좌대인 연꽃까지 마음에 담았다. ‘나무(南無)’를 먼저 부르고 아미타불로 끝맺으면서 귀의하겠노라 수십번씩 마음을 다했다. 정수리부터 나발, 눈썹 사이, 눈썹, 눈, 귀, 코, 입을 통틀어 부처님 상호를 하나씩 마음에 새겼다. 문종순 동산 기획실장이 힘을 실어 한 마디 더했다.

“번뇌와 맞써 싸울 시간에 차라리 아미타 부처님을 부르고 마음에 새겨라. 끊임없이 부처님을 부르고 마음에 새길수록 내 마음은 부처님을 닮아간다.”

“나무아미타불”에 몰입하던 염불행자들은 ‘거리의 성자’의 가르침을 되새겼다. ‘나무아미타불’ 육자명호를 주는 순간 단 한 번 염불로도 성불의 길이 열린다고 믿은 거리의 성자 잇펜 스님. 잇펜은 1289년 8월23일 51세 일기로 정토에 들기까지 끊임없이 걷고 춤 췄으며 염불의 공덕을 알렸다. 그는 일본 90대 천황 가메야마의 배우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내 몸이 죽고 사는 무상의 도리를 자각하고 아미타불에 귀의해 단 한 번 나무아티마불을 부른 뒤에는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닙니다. 마음도 거동도 말도 나무아미타불 마음이자 거동이며 말입니다. 그렇기에 살아 있는 목숨도 아미타불 목숨, 죽어가는 목숨도 아미타불 목숨입니다.”

동산법당에 ‘나’는 설 자리가 없었다.

최호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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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행”

안동일 전국염불만일회장

 
안동일(75·관해) 전국염불만일회장이 부처님과 벌, 나비 단어를 꺼냈다. “벌의 공간에서 나비처럼 살 수 없듯 부처님 세계에 사는 우리도 부처님이 돼야한다”고 했다. 적어도 그에게 부처님처럼 사는 방법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다. ‘나무아미타불’이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 수행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 길이 바로 염불입니다. 만일염불결사를 서원한 것도 오로지 부처님이 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는 1998년 8월6일 만일염불을 서원한 뒤 줄곧 ‘나무아미타불’을 염했다. 매일 염불 1000번과 108배, 보시 등을 실천했다. 한 번도 거르지 않았다. 매일 절 한 번에 10번씩 염불하고 걸을 때도 발걸음에 맞춰 ‘나무아미타불’이었다.

그는 ‘염불(念佛)’에 담긴 뜻을 곱씹었다. ‘염(念)’자는 ‘이제 금(今)’자와 ‘마음 심(心)’자로 구성됐다. 합쳐서 ‘염(念)’이다. ‘염불(念佛)’을 굳이 풀이하자면 ‘지금 이 순간 마음을 부처님과 하나로 해야한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염불 수행자의 보살행까지 읽었다.

“아침은 단순히 동이 트면 오는 게 아닙니다. 일어나서 동체대비의 자비심이 안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어둠속에 갇힌 상태입니다. 동체대비 마음이 일어나야 중생제도의 보살도를 이루는 것이며, 비로소 새날이 찾아옵니다. 부처님 마음이 동체대비이지요. 그래서 염불이 중요합니다.”

그는 염불의 공덕을 설명하는 데 공력을 쏟았다. 보물섬을 가려고 배를 직접 만드는 것보다 상선을 얻어 타고 가면 된다는 비유였다. 보물섬은 성불이고 상선은 염불이었다. 그는 여러 공덕 가운데 극락왕생 하나만 사후에 이뤄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염불 공덕은 전생의 번뇌와 현생의 공덕에 따라 빨라질 수도, 늦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염불하는 동안 탐진치 삼독심 등 나쁜 것이 점차 사라지고 팔정도, 육바라밀 등 좋은 것이 오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달라이라마의 말씀을 재차 언급하며 염불수행을 당부했다.

“깨달음이나 성불을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라. 금생에 이뤄지면 다행이고, 내생이나 그 다음 생에 이뤄질 수도 있으니 끊임없이 정진하라.” 


[1287호 / 2015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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