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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김주영 단편소설 ‘도둑견습’

기자명 이미령

‘착함’을 강요하는 세상에서 ‘저항’하는 도둑으로 살아남기

'도둑견습'
김주영 단편소설
창비출판사
20세기 한국소설
“그 돼먹잖은 의붓아버지란 작자는, 초저녁부터 어머니와 흘레붙기를 잘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성상납으로 마련한
폐차 직전 버스에서 사는 소년
가난한 삶의 무기력에 찌들어

아버지 죽고 찾아온 의붓아버지
우악스럽게 폐품 모으는 인생
소년에게 도둑질 망보도록 강요

들킨 순간 소년이 보인 독기에
진정한 부자 사이로 거듭나
세상에 맞서며 사는 모습으로
소년의 뇌리에 ‘거인’으로 각인

비록 착하게 살지는 못하지만
거부하는 소년의 몸짓 장해보여

김주영의 단편소설 『도둑견습』의 첫 문장은 이처럼 상상조차 하기도 부끄럽고 민망한 러브신을  ‘고발’로 시작합니다. 방 한 칸에서 온 식구가 생활하다보면 알면서도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는 장면이 바로 이겁니다. 그런데 어릴 적 꿈결에 느끼곤 했던 낯설지만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이 묘한 러브신을 까발린 소년의 이름은 이원수입니다.

때는 1970년대.

도시의 어느 폐품 집적소에 폐차 직전의 마이크로버스가 소년의 집입니다. 아버지가 폐품 집적소의 일을 보는 최가란 놈에게 어머니를 성상납한 결과 얻어낸 보금자리입니다. 소년에게는 이 일이 씻기지 않는 얼룩으로 남아 있습니다.

아버지는 병약했고 그렇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현재 상황이 소년은 버겁습니다. 마지막까지 지켜줘야 할 것을 제 손으로 내주고도 여전히 무력하게 지내는 아버지, ‘그 짓’을 해놓고도 도대체 말짱한 얼굴로 지내는 어머니, 이 어처구니없는 어른들을 보면서 소년은 어리둥절했을 겁니다. 그러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될 대로 되라며 세상을 향해 지독한 욕을 내뱉는 게 그저 최선입니다. 세상은 가난한 아버지를 지켜주지 못했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지켜주지 못했으니, 자신을 지켜줄 사람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지레 자포자기했을 겁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소년에게 의붓아버지가 등장합니다.

도대체 이 작자 강두표는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커다란 가위를 철컥철컥 소리 내며 동네 골목을 다니면서 폐품을 모으는 막장 인생인데다 우악스럽기 그지없고, 무엇보다 질색인 게 밤마다 어머니와 ‘그 짓’을 보란 듯이 해대면서도 종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호색한입니다. 소년은 밤마다 고욕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나마 의붓아버지가 친아버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예의 그 최가란 놈이 마이크로버스 주변을 빙빙 돌면서 어머니를 향해 색정 어린 눈치를 보내면 거의 미친 듯 발작하며 광분한 채로 하루를 보낸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의붓아버지는 자기가 지켜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그러던 어느 날, 이 우악스런 사내가 소년의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내일부터 나를 따라 나서라.”는 겁니다. 대체 고물장수를 따라나서서 해야 할 일이 뭐란 말인가. 의붓아버지의 그악스러움에 눌려 따라나선 후에야 소년은 알아차립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란 게 이 작자가 남의 빈집에 들어가 고철로 쓸 만한 것들을 죄 털어 나올 때 망을 봐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지요. 소년은 이렇게 해서 도둑 견습생이 됩니다. 무기력한 친부도 문제지만 자신을 범죄의 길로 끌어들인 계부는 더 심각합니다.

그런데 참 묘하기도 한 것이 계부 눈에는 모든 게 다 돈으로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끌어 모아야겠지요. 가진 것 하나 없는 밑바닥 인생인데 양심을 찾겠습니까, 윤리와 도덕의 잣대를 들이대겠습니까. 그런 걸로 치자면 요즘 시끄럽게 언론에 오르내리는 인간들-최고 학벌에 어마어마한 권력과 재력과 인맥을 가진 인간들 중에 도둑놈 아닌 인간 있습니까?

소년은 계부를 따라다니며 망을 봐주다가 어느 날 실수를 하고 맙니다. 집주인이 들어올 때 미리 짜둔 신호를 넣어야 하는데 그걸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계부는 딱 죽기 직전까지 늘씬하게 얻어맞고 토낍니다. 그리고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망연자실한 소년을 향해 계부를 두들겨 팼던 집주인 사내 둘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꼼짝없이 ‘죽었다…’ 생각하는 찰나에 문득 소년에게는 계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이 자식아, 쥐새끼도 막다른 골목에 이르면 돌아서서 고양이를 문다구.”

그렇습니다. 이판사판입니다. 소년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쥐새끼입니다. 살아야지요. 무조건 살아내야지요. 뭘 가리겠습니까. 소년은 리어카 속에 들어 있던 조그만 쇠꼬챙이 하나를 꺼내들고 두 사내를 향해 돌아섰습니다.

배 째라며 들이댔습니다. 기가 찬 쪽은 사내들이었습니다.

“야, 요것 보라아! 벼룩이 튄다아!”
“이 새캬! 니 눈깔엔 벼룩밖에 보이는 게 없니?”
“야, 요놈 봐라아! 너 몇 살이니?”
“몇 살이면 워쩔 텨? 너 애비 나이라도 보태줄 텨?”

그런데 우스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사내 둘이 슬그머니 돌아선 것입니다. ‘시골장터에 붙들려온 고슴도치라도 구경하듯’ 쇠꼬챙이를 치켜든 자신을 빙빙 돌며 웃다가 사라진 겁니다.

이 난 데 없는 결말.

실랑이는 싱겁게 끝났고, 어쩌면 두 사내는 자신들이 대적하기에 너무 보잘 것 없는 벼룩같은 어린 녀석이기에 그냥 보내준 건지도 모르지만, 그게 어딥니까. 자신의 독기에 어찌되었거나 저들은 물러갔잖습니까.

이거야, 바로 이거야!

소년은 깨닫습니다. ‘악돌이를 당해낼 인간은 없다는 사실. 어른들이란, 틀은 커도 건드리면 움츠리는 족제비처럼 운명적으로 허약하다는 걸’ 소년은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깨달음 뒤에 찾아오는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산 너머 산이라고, 자기가 허술하게 망을 본 바람에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도망친 의붓아버지가 서슬 푸르게 마이크로버스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말입니다. 비록 집주인 사내들에게 얻어맞고 토낀 도둑놈 신세이긴 하지만 그 극악한 성정을 잘 알고 있으니 소년은 이제 죽은 목숨입니다. 그런데 순간 누군가 등을 툭 칩니다. 의붓아버지입니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놀라움과 두려움이 덮친 순간, 그는 씩 웃어줍니다.

“히히, 내가 다 봤다, 임마. 너 통수 한번 거뜬하게 치던데! 됐어. 잘하는 짓이라구. 희망이 가득한 놈이야, 넌.”

달아나지 않고 아들(진짜 아들은 아니지만)을 지켜본 아버지입니다. 소년이 불러온 파국을 실패라 보지 않고, 파국을 향해 쇠꼬챙이 하나 치켜들고 맞장 뜨는 아들을 향해 희망이 가득한 놈이라고 등을 쳐주는 아버지(진짜 아버지는 아니지만)입니다.

난 그날처럼 기분 좋았던 날도 없었습니다. 물론 그날부터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기로 작정도 하였지요. 돈도 없고 무식하며, 도둑질이나 하고 오락이라고는 어머니와 흘레 밖에 할 줄 모르는 그였지만, 사람들 군더더기 없이 용서할 줄 알고 힘을 북돋우어줄 줄 아는 그 왕자표 아저씨를 아버지라 부르는 데 내가 거리낄 것은 없었지요.

아버지는 그 날 이후 자리를 보전하고 드러누웠지만 소년은 괜찮았습니다. 거친 세상을 향해 뭐든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소년은 아버지에게서 꿈과 희망과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 이 문장…, 쓰고 보니 좀 유치해서 낯간지럽습니다. 하지만 폐품 집적소에서 폐차 직전의 마이크로버스를 집 삼아 눈치 보며 살아가는 열다섯 살 소년에게는 이 표현보다 더 어울리는 말은 없습니다. 꿈과 희망과 용기!

이제 소년에게는 아버지의 고물리어카와 가위를 물려받아 철컥철컥 가위질 하며 골목을 다니면서 “사이다병, 콜라병, 헌 양재기 삽시다”하고 외치는 강단이 생겼고, 심지어는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대문을 열어놓고 낮잠에 빠진 식모를 위협해서 고철로 쓸 만한 것을 다 털어내 올 배짱도 생겼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하루의 무용담을 아버지에게 털어놓으면 자리보전하고 있던 아버지는 몸을 후딱 일으키고서 말합니다.

“넌 이제 내 아들이야. 이 강두표의 아들이라구. 딴 놈의 아들이 됐다간 죽엇! 열심히 혀, 책임은 내가 져. 이 강두표가 진다구. 그래야 우리 집이 헐리지 않는 기여 임마, 그걸 알아야 혀.”

하지만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날이 길어지자, 그동안 의붓아버지 서슬에 눌려 지내던 최가 놈은 저들의 보금자리인 마이크로버스를 해체하기 시작합니다.

소년은…, 소년은… 어떻게 될까요?

놀랍게도 소년은 실망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보금자리를 하루 사이에 잃더라도 어머니를 넘겨주지 않는 아버지가 거인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거인의 아들에게 비열하기 짝이 없는 최가 놈 하나쯤 때려누일 자신감이 없어서는 말이 안 됩니다. 비록 아버지는 더 이상 힘을 못 쓰는 존재가 되어버렸지만 소년은 이제 거인을 등에 업고 비정함으로 가득 찬 최가 놈을 향해, 저 몰인정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덤벼듭니다.

“야 이 새캬, 이리 나오라구, 썅!”

착하게 살아야 복을 받는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한 진리겠지만, 착하게 살도록 세뇌당한 민중들은 자신의 착함을 등쳐먹는 세상의 불의에도 착하게 굽니다. 그런 세상을 향해 대거리를 하지 않으면 착함은 주소를 잃습니다. 비록 도둑이라는, 오계(五戒)가 들으면 기절초풍할 죄악이 주인공의 직업이기는 하지만 나는 쇠꼬챙이를 휘두르는 소년의 몸짓이 장해보입니다. 저항하고 거부하지 못하는, 거세된 인간들의 무력증은 악업보다 더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292호 / 2015년 4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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