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9. 백명숙 한일불교문화교류協 상임이사

욕심 비워낸 자리 불법으로 채우니 날마다 행복합니다

▲ 백명숙 상임이사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후에 더 나은 불사의 기회가 된다면 더없는 행복일 것”이라며 활짝 웃었다.

관상어 가운데 코이(koi)라는 비단잉어가 있다. 붉은 몸체에 커다란 흰 반점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어종이다. 코이는 주어진 환경에 따라 자라는 정도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바로 태어난 치어(稚魚)를 집안 작은 어항에 넣어 기르면 5~8cm밖에 자라지 않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 기르면 15~25cm까지 자라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cm까지 성장한다. 같은 치어라도 어항에서 기르면 피라미가 되고 강물에 놓아  기르면 대어가 되는 신기한 물고기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코이의 법칙’이라 한다.

욕심 비우라는 스님 호통에 발심
공부 시작한 후 막혔던 문제 해결
합창단 통한 찬불가 대중화 기여
2004년부터 한일불교 여성부 견인
부산파라미타 맡아 청소년 포교도

사람 또한 코이의 법칙을 따른다. 환경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노는 물에 따라 코이의 크기가 달라지듯 사람은 매일 만나는 사람들과 주변 환경, 생각의 크기에 따라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과 꿈의 크기가 달라진다. 백명숙(70·대일심)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상임이사, 그의 삶은 넓고 깊은 바다를 연상케 한다. 코이가 자랄 수 있는 한계를 제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여성부 회장으로서 일본에 한국불교와 문화를 소개하는데 앞장서는 한편,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 회장으로서 미래의 동량들이 부처님 품에서 꿈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훗날 태풍을 몰고 올 것이라는 신념에서다.

한 방울의 물이 영원히 마르지 않는 법은 바로 바닷물에 떨어지는 것이다. 백명숙 상임이사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불자 된 삶으로 실행하기 위해 부처님의 심해(深海)에 자신을 던진다.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를 통해 백 상임이사와 인연을 맺은 관음종 총무원장 홍파 스님은 그에 대해 “긍정에너지가 마르지 않고 맑은 신심이 가득한 불자”라고 했다. 강한 리더십으로 매년 11월 열리는 ‘한일불교 여성불자교류대회’를 이끌고 있으며,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만발공양 행사를 개최해 모든 이가 함께 공덕의 탑을 쌓을 수 있게 하는 ‘보살’이라고 소개했다. 박동희 부산 옥련선원 합창단장은 “부산 불교의 자랑”이라고 여러번 되풀이 했다. 공부는 물론 수행의 공덕을 나누면서, 지금 항상 깨어있는 삶을 그로부터 배우고 있다는 게 박 단장의 설명이다.

그의 하루는 여명(黎明)과 함께 깨어나 30년 전 부처님과의 약속을 되새기는 것으로 시작한다. “모든 고통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니 나로 인해 아파하는 이들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법대로 살겠습니다.” 이젠 버릇이 된 새벽 발원에 이어 능엄주 독송으로 어둠을 밀어낸다. 참선수행으로 아직 밝지 않은 마음을 살피고 인연 있는 모든 이들의 행복을 축원한다. 어렵게 재회한 부처님 법,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발심을 꾹꾹 다지는 시간이다. 마음에 담아 둔 발심은 몸과 입과 의식으로 출현하니 그의 지금은 항상 부처님의 법을 향한다.

 
독실한 불자 집안에서 성장했지만, 시집을 오면서 멀어진 부처님이었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개종을 원했다. 그렇지만 등 떠밀려 교회에 나가진 않았다. 일요일이 가장 바쁜 남편 학원일을 도와야 한다는 핑계를 방패막이 삼았다. 불교를 모태신앙으로 여길 만큼 신심은 굳건했지만,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절에도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수행이나 불교공부를 한 것도 아니었으니 시간이 갈수록 부처님과 멀어져갔다. 그러나 이러한 방일함의 변화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늘 분주했다.

그러던 1987년, 그의 나이 41살 되던 때였다. 학원 자율화의 바람을 타고 막 학원사업을 시작할 즈음 뇌혈증으로 인한 반신마비가 찾아왔다. 빚까지 얻어 문을 연 학원이기에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밤낮없이 뛰어다니며 무리한 것이 병마가 찾아온 원인이었다. 쓰러져 눕게 되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던 부처님이 떠올랐다. 궁한 처지에 놓이게 되니 얄팍하게도 부처님이 그렇게도 그리울 수가 없었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될 정도로 회복하자 곧바로 집 근처 절을 향했다. 

“시어머니 역정이 대단했지만 개의치 않았어요. 부처님을 향한 제 마음이 그만큼 절실했던 겁니다. 당시 남편이 큰 힘이 돼 주었어요. 제 마음을 이해하고 저를 대신해 어머니를 설득해 주었으니까요. 절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냥 법당에 앉아 부처님을 바라보고 향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행복했죠. 마음이 행복해지니 몸은 건강으로 답을 하더군요. 그렇게 며칠을 왔다 갔다 했더니 한 스님이 운문사 사리암에 가보라는 겁니다. 거기서 정성껏 기도하면 바라는 바가 이뤄질 인연이라고 하면서요.”

스님의 그 한마디에 이미 마음은 사리암으로 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정성껏 기도하면 바라는 바 이뤄질 것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몸과 마음이 좀 편안해지니 다시 학원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자라기 시작했다. 사리암서 간절히 기도하면 반드시 이뤄주실 것이란 기대가 그의 몸을 이끌었다. 사리암은 기차를 타고 버스를 몇 번 갈아타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에 있었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니 큰 맘 먹고 사흘 철야기도를 계획해 사리암을 찾았다. 첫날을 무사히 보내고 아침공양 후 방사에 이불을 펴고 잠시 쉬는데 느닷없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한 스님이 방문을 열더니 당장 내려가라는 겁니다. 기도하러 왔지 쉬러 온 거냐면서요. 그러더니 기도하면 뭐하냐며 나만 잘 되게 해달라는 그 마음부터 버리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뭐든 하심(下心)하면서 욕심부터 버려야 기도가피도 생긴다면서요. 그렇지 않으면 헛고생일 뿐이라며 호되게 꾸짖었지요. 그 마음 내려놓지 못한다면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는 게 더 낫다며 방사에서 쫓아냈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서글프고 참담하기도 했다. 곧장 법당으로 달려가 부처님께 엎드렸다. 욕심으로 인해 병을 얻고도 그 욕심 버리지 못하고 이곳까지 끌고 온 자신을 생각하니 너무나 부끄러웠다. 어느새 부끄러움은 참회의 눈물이 되어 좌복을 적셨다. 끝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부처님께 발원했다.

“욕심 버리고 하심하며 부처님께서 가르쳐주신 법대로 살겠습니다. 공부하고 실천하는 부처님 제자가 되겠습니다.”

사리암에서의 발심, 그것은 일상의 수행으로 이어졌다. 경전을 보고, 3000배를 하고, 능엄주 염송을 시작했다. 성지를 순례하며 기도를 하고, 큰스님 법회가 열린다면 먼 길 마다치 않고 찾아가 법문을 경청했다. 내면을 살피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기도와 수행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긍정적으로 변하는 ‘나’를 보게 되었다. 좀처럼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도 하나씩 해결되는 등 가피도 이어졌다. 기도의 공덕을 회향으로 나눌 때가 된 것이다. 집 근처 범어사 금강암 불사부터 발 벗고 나섰다. 신도회장 소임을 맡으면서는 포교에 대한 원력도 세웠다. 금강암 합창단을 창단해 음성공양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동시에 흩어진 포교 원력을 결집시켜 부산불교연합합창단을 조직했다. 또 부산불교합창제를 열어 찬불가 대중화에 이바지하는 한편, 국제합창제에 참석해 은상을 받는 등 한국불교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이와 함께 부산불교연합합창단을 확대한 전국 규모의 연합합창단 창립을 추진, 2002년 한국불교합창단총연합회 창단을 이끌었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에 동참하게 된 것도 이즈음이다.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는 당시 학술교류에 머물러 정체됐던 한일불교교류대회를 문화교류로 확대되길 바랐고, 그 적임자로 백명숙 불자를 지목했다. 그는 2004년부터 한일불교문화교류협의회 여성부를 맡아 매년 가을 음식, 다도, 의복, 염색 등을 주제로 ‘한일불교 여성불자교류대회’를 여는가 하면, 부처님오신날을 즈음해 아기부처님 탄생의 기쁨을 나누는 만발공양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올해는 5월17일 부산 광복동 광장에서 3300인분의 비빔밥을 직접 마련해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등에게 보시했다. 2007년에는 부산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학원을 운영하다 보니 자연스레 청소년 포교에 관심을 갖게 됐고, 부산파라미타청소년협회를 맡아 이끌게 된 것이다.

“부처님 법 만나 지금껏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으니 그것만으로 부처님께 큰 빚을 진 겁니다. 제가 짓고 있는 불사는 부처님께 받은 가피를 조금이라도 갚기 위한 일일 뿐입니다. 초는 자신을 태워 세상을 밝히는 빛을 발하고, 소금이나 설탕은 물이나 음식에 녹아야 제 맛을 내며, 땅에 떨어진 낙엽은 스스로 썩어야 새싹을 피우는 거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 제가 걷고 있는 이 길이 후에 더 나은 불사의 기회가 된다면 더없는 행복일 것입니다.”

이 시대 수행자의 상징이었던 법정 스님은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라고 했다. 또 채움만을 위해 달려온 생각을 버리고 비움에 다가가라 했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비움이고 그 비움이 가져다주는 충만으로 나 자신을 채우라는 가르침이다. 백명숙 상임이사의 하루는 욕심 비워낸 자리를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채우는 시간이다. 매일 매일이 행복으로 충만한 이유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299호 / 2015년 6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