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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기자명 이미령

범죄자가 범죄 행위 하기까지 과정에 대한 작가의 추척

‘인 콜드 블러드’
트루먼 카포티
박현주 옮김
시공사
1959년 11월 중순.

미국 콜로라도 주 경계에서 동쪽으로 11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한 시골마을 홀컴은 전형적인 농촌입니다. 이 마을에 있는 리버 밸리 농장의 주인은 매우 건실한 마흔여덟 살의 허버트 윌리엄 클러터입니다. 그는 건장한 체격을 지녔고, 최고 부자는 아니었지만 마을 사람 누구나가 인정하는 부유한 농장주입니다. 오래 전부터 신경성 질병을 앓고 있는 병약한 아내와의 사이에서 딸 셋과 아들 하나를 두고 있고, 현재 열여섯 살 사랑스런 셋째 딸 낸시와 그보다 한 살 적은 아들 캐년과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클러터는 모범적인 가정을 잘 이끌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의 공헌도 역시 아주 높았습니다. 그는 술에 취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매주 교회예배를 한 번도 거르지 않는 독실한 감리교인이었습니다. 고용한 일꾼들에게는 약속한 날짜에 약속한 액수의 품삯을 정확하게 지불했고 후하게 인심을 베풀기도 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런 성품을 어린 두 아이들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낸시는 우등생인데다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아서 남학생들을 죄다 짝사랑에 빠지게 한 소녀입니다. 게다가 성격도 고왔습니다. 다정하고 상냥했고 열여섯 살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시간을 쪼개가면서 친구와 가족들에게 헌신했습니다. 막내아들 캐년은 내성적인 순둥이였습니다. 병든 어머니의 손바닥만 한 정원을 손질하는 일에 정성을 쏟았고, 결혼을 앞둔 둘째누나에게 선물할 장식장을 손수 짜는 사랑스런 소년이었습니다.

그런데 11월 중순의 어느 날, 이 선량한 일가족이 괴한의 총에 맞아 비참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온 가족이 집안 곳곳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는데, 특히 아버지인 클러터 씨는 목에 칼로 베인 상처까지 있었습니다. 범인은 누구며, 왜 이 가족에게 이토록 무자비한 짓을 저지른 것일까요? 얼마나 뼛속 깊이 원한이 사무쳤기에 일가족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 넣은 것일까요?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사람들 중에서 클러터 가족만큼 살해당할 가능성이 적은 사람들도 없었다는 겁니다.”(137쪽)라는 것이, 수사관이 이 가족에 대한 원한관계를 중심으로 탐문수사를 펼친 끝에 내린 결론입니다.

이웃들은 경악했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심지어 좌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일이 클러터 가족 말고 다른 집에 일어났더라면 이런 기분까지는 들지 않았을 거예요. 그 집 사람들보다 덜 존경받는 사람들이었다면요. 부유하고, 믿을 만한 사람들이었죠. 그 집 식구들은 여기 사람들이 정말로 높이 평가하고 존중하는 가치를 대표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런 일을 당하다니…. 그건 마치 신이 없다는 얘기를 들은 것이나 다름없어요. 삶에서 의미를 빼앗아 가는 거죠. 두려운 것도 두려운 거지만, 그보다는 좌절했다고 하는 편이 더 맞아요.”(142쪽)

신이 진짜로 존재한다면 이렇게 신앙심이 깊고 선량한 가족들을 죽음으로, 그것도 처참한 비극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게 당시 마을 사람들의 심경입니다. 클러터 일가족 살해사건은 당시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 준 실제 사건입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범인들은 오래지 않아 잡혔고, 그 후 교수대에서 죗값을 치렀다는 사실입니다.

신문기자이면서 소설가인 트루먼 카포티(Trumann Capote, 1924~1984)는 이 사건을 예사로 넘기지 않았습니다. 오드리 헵번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로서 대중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가 카포티는 이 일가족 살인사건을 치밀하게 따라가 보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피해자들의 주변 인물들을 만나고 수사관을 만나 수사과정에 대해 면밀한 검토를 했고, 두 명의 범인들과도 직접 인터뷰를 통해 어릴 적 가정환경에서부터 범죄를 저지르던 순간, 그리고 이후 짧은 도피행각과 교수대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의 상황을 치밀하게 추적합니다. 그리하여 6년에 걸친 취재를 통해 소설 ‘인 콜드 블러드(In Cold Blood)’를 완성합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작가는 ‘논픽션 소설’이라고 스스로 이 작품에 이름을 붙였는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설은 ‘픽션’인데, 세상에 ‘논픽션 소설’이란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지요. 이 작품이 ‘픽션’이냐, ‘논픽션’이냐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사람들은 ‘논픽션’이란 데에 더 강하게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작가는 사건 당사자들을 취재할 때 일체의 녹음기기를 사용하지 않았고 메모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탐문할 때 철저히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이후 순전히 기억만으로 글을 썼다고 스스로도 밝히고 있어서 정확도에서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범죄소설이건만 정작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설명은 작품의 전체적인 분량이나 중요도에서 힘이 약합니다. 대신 작가는 두 범인들의 행각을 지루할 정도로 쫓아다니고 있고, 저들의 끝없는 자기변명과 체포 이후의 갈팡질팡하는 심적 갈등을 밀도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이제 범인들을 만나볼 차례입니다.

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페리와 딕. 이 둘은 캔자스 주립교도소의 감방동기입니다. 딕은 스물여덟 살로, 세 아이의 아빠이지만 이혼남이며, 선량하고 가난한 늙은 부모와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페리는 좀 복잡 미묘한 인물입니다. 체로키 인디언 엄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서 아주 키가 작고 특히 다리는 마치 자라다 만 것처럼 짧습니다. 그런데도 몸통은 단단합니다. 페리는 어렸을 때 부모의 가정불화로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 맡겨진 뒤에 그곳에서 학대를 받았는데, 자주 노란색 새가 날아드는 꿈을 꾸면서 환상을 보았고 게다가 다 큰 어른이 되어서까지 침대에서 자다가 오줌을 쌉니다.

감방 동기인 이 두 사람은 지독하게 어울리지 않습니다. 인디언 혼혈의 외모 때문에 주눅 들고, 어려서부터 버림받고 학대받았다는 피해의식에 시달리며 신의 구원을 믿지 않으면서도 늘 종교적 서정을 유지해서 찬송가를 불렀던 페리에 비해 딕은 완벽한 무종교주의였고 껄렁껄렁하고 여자를 밝히고 두뇌회전도 아주 빠른 사내였습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거나 두 사람에 의해 살인은 저질러졌고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철저하게 서로 격리된 채 수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사건과는 무관하다며 두 사람은 함구했습니다. 그러나 수사관이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 낸시 클러터의 생일이야. 살아 있었다면 열일곱 살이 되었겠지.”라며 넌지시 흘린 말에 심하게 흔들린 사람은 페리입니다. 하지만 딕은 그보다 한 발 앞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페리가 그랬어요. 전 말리지도 못했어요. 걔가 다 죽였어요.”

당시 수사관과 재판부는 직접적인 살해행위를 누가 저질렀는지는 밝히지 못합니다. 두 사람은 나란히 교수형을 받게 되지요.

그런데 작가는 검거된 딕과 페리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느 사이 페리를 변호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그의 살인행위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그런 극단적인 환경으로 내몰린 그의 성장배경과 범죄 이후 보이는 인간적인 모습에 살짝 기울어진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작가 역시 부인하지는 않으며 절친한 동료작가들도 여기에 동감합니다. 작가는 페리와 인터뷰하면서 분명 이런 의문이 들었을 겁니다.

범죄자가 될 운명을 지니고 태어난 사람이 과연 있을까?

없을 겁니다. 그런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멀쩡한(혹은 멀쩡할 수도 있는) 사람을 범죄자로 몰아넣었다는 말이 됩니다. 하지만 오로지 후천적인 환경 탓만 하려니, 똑같이 불행한 환경에 놓였어도 꿋꿋하고 반듯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치명적인 잘못을 저질러 미래를 더 어둡게 만들기도 합니다.

작가의 글에서는 또 다음과 같은 물음이 떠오릅니다.

잔혹한 범죄를 저지를 때 어떤 심경일까? 세상이나 주변 인물에 대한 증오가 피해자에게 전이되어서 범죄자는 범행 당시 지독한 분노에 사로 잡혀 있는 걸까?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그 아저씨한테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는 페리의 고백처럼 순진하기까지 한 심정일 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한 페리는 소녀 낸시가 정말 다정하고 착했으며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고백합니다. 늘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이 그리웠던 페리는 다정하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낸시가 인상적이었다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순둥이 소년 캐년과, 가족을 걱정하며 울부짖는 병약한 부인에 대해서는 동정심까지 품었습니다.

죄 없고 순박한 사람들인 줄 알면서도 그 생명을 끊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다면 대체 생명을 끊는다는 행위에는 어떤 감정이 서려 있는 것일까요? 세상은 그런 행위를 한 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잔혹한 범죄에 대한 응분의 대가는 사형이지만, 이 형벌은 정작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주변사람과 사회에 지불하는 죗값일 뿐입니다.

게다가 피해자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서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증언해야 할 사람은 가해자입니다. 피해자는 사라지고 가해자가 우리에게 남겨졌으니 범죄의 재구성은 오로지 가해자와 주변인의 몫이라는 말입니다. 과연 이 세상에서 그 누가 사건을 객관적으로 정당하게 바라보고 판결을 내릴 수 있을까요?

페리에게로 쏠리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 가보면 범죄라는 행위와 행위자 사이에 자꾸 틈을 내려는 의도가 슬며시 보입니다. 잔혹한 행위에 대해 준엄한 처벌을 받는 건 맞지만, 행위 이면에 숨어 있는 섬약하고 불안정한 인간 자체를 보아주기를 독자들에게 바라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훗날 이렇게까지 고백합니다.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532쪽)

소설과 비소설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미국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강의할 때 빠지지 않는 교재가 되고 있다는 출판사 서평을 마지막으로 귀띔해 드리면서 이만 글을 맺을까 합니다.

이미령 cittalmr@naver.com

[1301호 / 2015년 7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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