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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아미타경 설법대상

기자명 이제열

부처님 당시 청법대중은 아라한과 대보살·천인

▲ 아미타삼존도. 일본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그들은 모두 덕이 높은 큰 아라한으로 여러 사람들이 잘 아는 아들이었다. 즉, 장로 사리불, 마하목건련, 마하가섭, 마하가전연, 마하구치라, 리바다, 주리반타가, 난다, 아난다, 라후라, 교범바제, 빈두로파라타, 가루다이, 마하겁빈나, 박구라, 아누루타와 같은 큰 제자들이었다. 이 밖에 법의 왕자인 문수사리를 비롯해 아일다보살, 건타하제보살, 상정진보살 등 큰 보살과 제석천 등 수많은 천인(天人)들도 자리를 같이 했다.”

초기의 설법대상은 비구
대승의 설법대상은 보살
발심 중요시하는 대승불교
설법대상 더욱 넓게 적용

부처님께서 아미타경을 설할 때 설법을 듣고자 모인 청법대중을 소개한 내용이다. 청법대중으로는 덕이 높은 아라한들과 대보살들 그리고 천인들이 등장한다. 먼저 아라한은 아르하트(arhat)의 음역으로 보통 살적(殺賊)·응공(應供)으로 번역한다. 살적이란 도둑을 죽이듯 번뇌를 없앴다는 의미다. 또 응공은 인간과 천상으로부터 공양 받을 자격을 갖추었다는 뜻이다. 아라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결(十結)이라는 번뇌의 종류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여기서 결은 묶는다는 뜻으로 중생의 번뇌를 상징한다. 중생의 번뇌가 한량없이 많지만 열 가지로 표현 한 것이 십결이다. 십결은 오온이 자아라고 착각하는 유신견결, 쓸데없는 계율과 형식에 집착하는 계금취견결, 가르침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는 의심결, 감각기관에 의존해 기쁨을 추구하려는 탐결, 대상에 대해 악의와 분노를 일으키는 진결, 물질계 선정에 애착하는 색애결, 정신계 선정에 애착하는 무색애결, 수행의 경지에 집착하는 만결, 아직 미세하게 동요하는 번뇌들이 남아 있는 도거결, 근원적 어리석음인 무명결이다.

아라한은 이와 같은 10가지 번뇌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열반을 실현하여 생사의 속박과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난 존재들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수행의 단계를 4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가 그것이다. 이를 십결과 연결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수다원은 십결 중에 앞의 3가지 유신견 계금취견결, 의심결 등이 끊어진 경지이다. 불교에서는 수다원과부터 성인으로 인정한다. 천계의 왕들도 예배를 올린다고 한다. 사다함은 뒤의 탐결과 진결이 현격히 줄어든 경지이다. 그러나 아직 미세하지만 순역경계에 대한 흔들림이 남아 있다. 아나함은 탐결과 진결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경지로 더 이상 대상으로 인한 흔들림은 남아있지 않다. 육근이 육경을 통해 추구하려는 욕망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을 대하더라도 분노나 원망·적개심·두려움 등의 부정적 심리상태가 발생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아라한과는 나머지 유색애결·무색애결·만결·무명결인 5종류의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 생사의 흐름에 들지 않는 경지이다. 아라한은 소승불교 최고의 성자로 더 이상 배우고 수행할 것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무학(無學人)으로 불린다. 대승불교에서는 이를 소승의 성과라 하여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에 있어서 아라한과는 범부들로서는 측량하기 어려울 만큼 뛰어나다. 인간들만이 아닌 천상의 하느님들조차도 예배와 공양을 바칠 정도로 수행을 마쳤기 때문에 응공으로 칭송받는 것이다.

다음은 법회에 동참한 보살들이다. 보살은 보디사트바(bodhisattva)의 음역에서 나온 말로 깨달은 생명이라는 의미로 각유정(覺有情)이라 번역한다. 보살의 종류를 수행의 측면에서 풀이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지전보살이다. 지전보살은 아직 깨달음의 어떠한 단계에도 들지 못하고 믿음만 지닌 상태의 보살이다. 대승불교에서는 수행의 단계를 열 단계로 나눈다. 그런데 지전보살은 견고한 믿음을 지니고 수행은 하고 있으나 아직 초지인 환희지에도 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둘째는 지상보살이다. 지상보살은 갖가지 믿음을 지니고 수행을 하여 십지 가운데에 어떠한 지위에 머무르고 있는 보살이다. 이 보살은 깨달음을 체득하여 점차 부처의 지위를 향해 올라만 갈뿐 뒤로 물러나거나 떨어질 염려는 없다. 셋째는 권현보살이다. 권현보살은 십지에 든 지상보살들이 깨달음을 완성하고 부처가 된 다음 다시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보살의 지위로 내려온 보살들이다. 이 보살은 비록 명칭과 역할은 보살로 나타나지만 그 지위에 있어서는 부처님인 것이다. 권현보살이라고 할 때에 권(權)은 방편이라는 의미이고 현(現)은 나타난다는 의미이다. 부처님이 방편으로 보살이 되어 부처님의 제자인 것처럼 꾸미고 부처님과 문답을 한다든가 설법을 하기도 한다. 대승불교에서 추앙하고 있는 관세음보살·문수보살·보현보살·지장보살 등 수많은 보살들은 모두 권현보살이라 할 수 있다. 당연히 아미타경에 등장하는 대보살들도 권현보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어 등장하는 천인들은 천계에 머무르는 신들로 복력과 수명이 뛰어나고 기쁨으로 충만 된 삶을 사는 존재들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천계를 불교의 범주 안에 들여 놓고 그 세계에 사는 일체의 천인들을 부처님과 가르침에 귀의한 존재들로 그린다. 불교의 천계는 모두 28종류로 욕계에 속한 6종류의 천, 색계에 속한 18종류의 천이 있으며 무색계에 속한 4종류의 천이 있다. 천계는 전생부터 지은 복력의 정도와 선정의 힘에 따라 태어나게 된다. 이때 욕계천계는 보시와 인욕 같은 선행을 통해 태어 날수 있지만 색계천계와 무색계천계는 선정의 힘에 의해 태어날 수 있다. 선정의 단계가 높을수록 색계에서 무색계로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에 모여든 천인들 모두 욕계의 천인들과 색계의 천인들이라는 점이다. 보다 높은 단계인 무색계의 천인들은 부처님의 설법에 동참하지 않는다. 이는 선정의 경지가 너무 뛰어나 인간계나 그 아래 단계의 천상에 내려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행동을 하려면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몸은 없고 마음만 있다거나 마음만 있고 몸이 없으면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다. 욕계·색계·무색계 가운데에 욕계와 색계는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중생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나 무색계는 마음만 있을 뿐 몸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의 마음도 깨끗하기는 하나 분별과 감정과 의지가 거의 없는 무의식 상태의 마음이다. 이곳에서 봄과 들음과 생각이 존재할리 만무하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본다면 왜 부처님 설법시에 무색계천인들이 참여하지 않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경전에서 천인들을 대표하는 제석천은 욕계천의 제2천인 도리천의 왕으로써 불법을 옹호하고 인간계의 선악을 감시하며 상과 벌을 주는 대표적인 신이다. 아미타경에는 제석천보다 높은 색계의 신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승경전의 특징은 부처님이 설법을 하실 때에는 반드시 천인들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소승경전에도 천인들이 등장하고는 있지만 대승경전에는 빠짐없이 천인들이 등장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다. 설법대상에 있어 눈여겨 볼 일은 소승과 대승에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니까야 계통의 소승경전들을 보면 설법이 비구들을 중심으로 행해진다. “비구들이여”하는 식으로 설법이 시작되거나 비구가 등장하여 부처님과 대화를 이끌어간다. 이에 비해 대승경전들에서는 보살들을 중심으로 설법이 행해진다. 대승경전에서는 설법 대상을 “비구들이여” 대신 “선남자 선여인”으로 넓히고 이들을 보살로 호칭한다. 발심을 중요시하는 대승불교는 설법대상을 보다 넓고 평등하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열 불교경전연구원장  yoomalee@hanmail.net

[1302호 / 2015년 7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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