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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각기동대 Ghost In The Shell’

기자명 이종승
오시이 마모루 작품 1995년 작품

‘연기론’에 토대한 존재의 이해



인간에게 있어 ‘생명(生命)’과 ‘존재(存在)’를 정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다분히 철학적이고 실존적인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인류는 태초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화두를 던지고 있다. 특히 테크놀로지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인간이 직접 생명을 창조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 지금, 생명과 비생명을 가르는 근거와 기준은 점점 더 모호성이 가중되고 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이러한 뿌리깊은 집착은 예술작품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바로 윌리엄 깁슨에 의해 창조된 ‘사이버 펑크’라는 새로운 사조가 그것이다. 주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테크놀로지에 의해 소외 되어가는 인간의 불안과 정체성의 혼란을 다루고 있는 이 사조는 SF문학이나 영화,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통해 활발히 등장하고 있다.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하는 사이버 펑크 작가를 꼽으라면 단연 오토모 가츠히로와 오시히 마모루를 들 수 있다. 오토모 가츠히로 감독은 ‘아키라’(1988)에서 파괴와 폭력으로 점철된 기계문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 그의 허무주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반면, 오시이 마모루의 ‘공각기동대’는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보다 근원적인 물음을 던지고 있다. 오시이 마모루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를 생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공각기동대’의 내러티브 구조는 크게 쿠사나기 소령과 해킹 프로그램인 ‘인형사’라는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 두 캐릭터 중 보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캐릭터는 단연 ‘인형사’라는 존재이다. ‘인형사’는 자신이 이전에 수행했던 해킹의 흔적을 접하면서 문득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깨닫게 되고 마침내 자신을 창조시켰던 인간에게 자신을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하나의 생명으로 받아들여 줄 것을 요구한다. 이전까지 인간의 사고체계를 지배해 온, ‘육체와 정신의 결합물’이 곧 생명이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인형사의 존재에 대한 요구는 혁명적인 제안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과연 ‘인형사’를 생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라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변화하고 있는 현대문명사회에서의 생명관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불교의 생명관은 이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특히 불교의 무아론(無我論)과 연기론(緣起論)은 오시이 마모루 감독 특유의 인간 존재에 관한 성찰을 파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철학적 기반으로 기능할 수 있다. 불변하는 윤회의 주체로서의 자아의 개념을 부정하는 무아론은 생명과 비생명간의 관계를 지나치게 고정불변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우리의 인식체계를 보완해주며, 만물의 상호 작용 관계를 중시하는 연기론은 ‘인형사’가 컴퓨터망에 남겨진 자신의 흔적을 보고 자신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찰나에 대한 인식론적 기반을 마련해준다. 또한 ‘인형사’가 쿠사나기와의 인연(因緣)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탄생되는 장면은 모든 존재를 불변하는 실체가 아닌 역동적인 관계로 파악하는 연기론의 핵심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공각기동대’는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질문한다. 이제 당신은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를 생명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



이종승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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