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7. R. K. 나라얀의 ‘라마야나’

기자명 이미령

늠름한 라마와 아름다운 시타, 그 사랑을 위한 전쟁 서사시

'라마야나'
R. K. 나라얀
김석희 옮김
아시아
아주 오래 전, 인도 코살라국의 수도 아요디아에는 어질고 용감한 다사라타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풍요롭고 백성들은 행복하게 살고 있었지요. 그런데 다사라타 왕에게는 딱 한 가지 아쉬움이 있습니다. 자식이 없다는 것이지요.

인도 코살라국의 사랑 이야기
다사라타 왕의 아들 라마 왕자
세상 가장 아름다운 시타 공주
첫 눈에 반해 부부의 연 맺어

둘째 왕비의 방해로 왕위 대신
14년간 숲속으로 추방 당해
아수라에 납치당한 시타 구하는
인간vs아수라 전쟁에서 승리

극적인 스토리에 웅장한 잠언들
인도 신화 매력에 푹 빠지게 돼

현자의 도움으로 희생제를 지내고 그 덕분인지 세 명의 왕비에게서 각각 아들 넷을 얻었습니다. 첫 번째 왕비 카우살야에게서 라마를, 두 번째 왕비 카이케이에게서는 바라타를, 글고 세 번째 왕비 수미트라에게서는 락슈마나와 사트루그나 쌍둥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왕자들이 한결같이 착하고 의좋고 용감하고 똑똑하게 자랐습니다. 이들의 탄생과 성장은 왕의 기쁨을 넘어서 그 나라 백성들에게도 축복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왕자 라마는 특히 성품이 어질어서 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은 행복한가요? 내 도움이 필요하진 않나요?”

이런 왕자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공주가 등장해야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 시타입니다. 라마 왕자와 시타 공주는 처음 눈이 마주 친 순간 사랑의 화살에 심장을 맞았고, 지독하게 그리워하다가 마침내 부부의 연을 맺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습니다. 코살라국의 아요디아는 여전히 풍요로웠고, 라마왕자와 시타왕자비의 사랑은 무르익어갔습니다. 백성들은 행복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심코 거울을 들여다보던 다사라타왕이 크게 탄식을 하게 됩니다. 자신의 머리칼에 희끗희끗 서리가 내렸고 눈 밑에 잔주름이 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왕위를 물려주고 자신은 권력에서 물러날 때가 되었음을 알게 된 것이지요.

그는 대신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나는 왕의 의무를 젊은 어깨에 넘기려 합니다. 완벽함의 화신인 라마는 내 후계자가 될 것이오. 라마는 완벽하고 따라서 완벽한 통치자가 될 것이오. 라마는 동정심과 정의감과 용기를 가졌고, 인간을 결코 차별하지 않습니다. 늙은이와 젊은이, 왕자와 농부를 모두 똑같이 대한다는 뜻이오. 라마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배려하고 있소. 용기와 용맹과 그 밖의 자질에서 라마에 필적할 자는 아무도 없소. 라마는 모든 적대 세력으로부터 여러분을 누구보다 잘 보호해줄 것이오.”(71쪽)

▲ 일러스트=강병호 화백

왕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사라타 왕은 라마왕자에게 두 가지 미덕을 당부하며 대관식 준비를 하도록 명받습니다.

겸손 그리고 부드러움.

세상사람 모두가 왕의 결정을 환영하지만 딱 한 사람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왕의 둘째 왕비 카이케이입니다. 오래 전 카이케이 덕분에 목숨을 구한 적이 있는 왕은 장차 무엇이든 딱 두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고, 카이케이는 그 일을 상기시키며 대관식을 앞둔 날 밤에 다사라타왕에게 두 가지 소원을 내밉니다.

첫째, 라마 왕자를 십사년 동안 숲으로 추방할 것.

그리고 둘째, 자신이 낳은 아들 바라타를 왕위에 앉힐 것.

다사라타왕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지만 왕비는 단호합니다. 무릇 왕이라는 자는 사람과의 약속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라마 왕자는 기꺼이 동생에게 왕위를 양보하고 어머니의 그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면서 스스로 십사 년 동안 숲으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아내 시타와 함께 숲으로 들어간 라마왕자는 자신을 숭배하는 동생 락슈마나 왕자의 든든한 호위로 평화롭게 살아가지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수라 라바나의 여동생 카마발리가 라마왕자를 보고 한눈에 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미처 사랑고백을 끝내기도 전에 라마의 아내 시타가 등장하고, 같은 여자면서도 카마발리는 시타의 아름다움에 압도되고 맙니다. 아내를 향한 라마왕자의 사랑과 믿음을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카마발리는 그를 포기하려 하지 않습니다. 결국 라마왕자와 락슈마나는 애정공세를 퍼붓는 카마발리의 코와 귀와 젖가슴을 도려냅니다. 질투와 분노와 라마를 향한 욕정을 이기지 못한 카마발리는 결국 신들도 벌벌 떠는 오빠 라바나에게 달려갔고, 묘하게 그를 획책합니다.

“숲에서 만난 아름다운 여인 시타가 오빠의 짝이 되기에 손색이 없습니다.”

그리고 시타의 생김새를 자세하게 묘사하는데, 그 이야기가 어찌나 생생한지 아수라 라바나는 제 눈으로 보지도 않고서 사랑에 빠져 버립니다. 그런 오빠의 욕정을 눈치 챈 카마발리는 이렇게 말하지요.


“그 아름다운 여인 시타에게는 남편이 있는데, 어서 가서 빼앗아 오세요.”

여동생의 부추김에 속아 넘어간 라바나는 시타를 납치해서 랑카 섬에 숨겨두고, 시타를 찾아 헤매는 라마와 락슈마나는 아수라 라바나와 한판 전쟁을 벌입니다. 그리하여 인간과 아수라의 전쟁,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비슈누의 화신과 아수라왕의 한 판 전쟁, 그 사이에서 라마를 돕기 위해 등장한 원숭이와 독수리, 그리고 온갖 동물들의 이야기가 장광설처럼 펼쳐집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저 유명한 ‘라마야나’입니다.

라마왕자는 몇 번이나 위기를 넘기면서도 싸움의 정도를 지킵니다. 도망치는 적의 등에 칼을 꽂지 않고, 무너지는 적의 장수에게는 다음 날 다시 싸우자고 제안합니다. 분노에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천천히 맞섭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지만 원수의 목숨을 제 목숨인양 여깁니다. 그래서 라마왕자는 승리합니다.

이 라마 왕자 이야기는 시인 발미키가 산스크리트어로 처음 서술했다고 하는데, 정작 이 발미키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라마야나’는 힌두교가 전해진 지역이나 또는 이 이야기를 전파하는 사람들의 성향에 따라 첨삭이 심하기 때문에 어떤 것이 진짜 라마왕자의 모험담인지를 판가름하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힌두교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이 『라마야나』에 열광합니다. 인도신화를 영어로 새롭게 써내려가는 작가 R. K. 나라얀(1906~2001)은 ‘마하바라타’에 이어 ‘라마야나’도 한 권으로 간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각색해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에는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 그런데 인도 신화 매력에 한번 빠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는 건 잘 모릅니다. 오래 전 인도를 여행할 때, 한없이 지연되는 열차를 기다리며 깜박깜박 형광등이 나가는 대합실에서 읽어댔던 ‘마하바라타’가 그토록 매혹적이더니 멋진 왕자와 시타의 사랑이야기, 그리고 신들과 아수라들과 동물들의 전쟁이야기인 ‘라마야나’도 결코 그만 못하지 않습니다.

이 책 뒷부분에 달린 해설을 보자면, 1988년 여름 북인도의 환경미화원들이 “‘라마야나’를 각색한 텔레비전 연속극에 연방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해서 더 많은 에피소드가 방영되도록 하라”며 파업까지 했답니다. 이 서사시에 어떤 매력이 있기에 이러는 걸까요?

무엇보다 선과 악을 두부모 자르듯 딱 가르는 단순 구도를 벗어나 선이 악이 되기도, 악이 선이 되기도 하는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늠름한 왕자와 눈부시게 아름다운 공주는 예나 지금이나 모든 이들의 로망이라서 이들의 사랑이야기에는 달콤한 마력이 있고, 그리고 이들이 핍박을 받아 숲에서 지내는 과정에는 덩달아 한없이 안타까워집니다. 하지만 이런 배경에는 인간이 절대 거역해서는 안 되는 그들만의 약속이 있으며, 따라서 피해자는 기꺼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 들어갑니다. 그 운명의 절박함이란….

그런데 기가 막힌 상황에 놓인, 정의롭고 선량한 피해자를 돕기 위해 온 세상이 발 벗고 나서는 과정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됩니다.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을 받게 되어 있단 말이지….

이런 점들이 ‘라마야나’에 빠져들게 하나 봅니다. 그런데 뭐니뭐니 해도 ‘라마야나’의 매력은 극적인 스토리에 실려서 웅장하게 펼쳐지는 멋진 잠언들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다섯 가지 악 즉 정욕, 분노, 탐욕, 이기심, 시샘을 정복해야만 신성함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23쪽)

“사랑하는 사람이 늘 가까이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되오. 부모 나무의 발치에서 싹을 틔운 씨앗을 다른 데로 옮겨 심지 않고 그 자리에 남겨두면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법이오.”(27쪽)

“일단 입에서 나온 말은 화살 같아서 앞으로만 나아갑니다. 도중에 그것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108쪽)
“그 말투가 너무 무시무시해서 세상 만물이 살며시 달아났다.”(144쪽)

“너는 동생이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계속 분노에 너 자신을 내맡겼다. 너는 권력의식을 통해 너의 분노를 사치스럽게 충족시킬 수 있었다.”(193쪽)

“인간의 형상을 한 생물도 옳고 그름에 대한 지식을 보여주지 못하면 짐승이라고 부를 수 있고, 반대로 이른바 짐승이라도 깊은 지성을 보여주면 짐승이 아니라 가장 높은 기준에 따라 평가해야 할 것이다.”(195쪽)

“당신은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모르고 있어요. 이것은 오래 전에 당신 아버지가 당신에게 건 저주의 일부요. 당신이 당신 자신의 학식과 능력의 깊이를 알지 못하도록 저주를 내린 것이지요. 당신이 이제 무언가를 시도하려면 우선 이 미망을 극복해야 할 거요. 마음만 먹으면 당신의 몸은 어떤 크기로도 자랄 수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당신이 마음만 먹으면 온 세계를 한 걸음에 주파할 수도 있소.”(223쪽)

“이 도시를 정말로 불태운 것은 원숭이 꼬리에 묶인 횃불이 아니라 시타라는 여자의 영혼 속에서 사납게 날뛰는 불길이었습니다. 남자가 명예와 명성을 잃는다면, 그것은 주로 욕정과 탐욕 때문입니다.”(234쪽)

이미령 cittalmr@naver.com

[1303호 / 2015년 7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