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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정혜쌍수

기자명 인경 스님

선정·지혜, 무엇이 먼저인지 논하는 건 부적절

정혜를 함께 닦는다는 정혜쌍수(定慧雙修)란 어떤 의미인가? 먼저 선정을 닦고 나중에 지혜를 개발하는가? 아니면 지혜를 개발하고서 나중에 선정을 닦게 되는가? 정혜쌍수는 선정과 지혜의 선후가 아니라, 동시에 함께 수련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점에서 정혜등지(定慧等持)란 용어도 사용한다.

돈오는 심성에 대한 깨달음
점수란 현실 문제 대처방안
인간 성품 본래 청정하기에
함께 이뤄지는 정혜등지여야

지관, 혹은 정혜의 선후문제는 부처님 당시에도 거론된 관점이다. 초기경전에서는 지(止, samatha)와 관(觀, vipasanna)의 관계에 대해 4가지 경우를 다 언급한다. 먼저 사마타수행을 하여 선정을 닦은 다음에 나중에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 지혜를 개발한다. 반대로 먼저 위빠사나의 지혜를 개발하고 나중에 사마타의 선정을 닦는 경우도 가능하다. 이렇게 사마타와 위빠사나는 서로 구분하여 선후로 수련하기도 하고, 양자를 구분하지 않고 함께 닦는 경우도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서로 달라진 것은 사람의 근기가 다른 까닭이고 결코 우열의 관계는 아니다.

그런데 왜 보조국사는 정혜쌍수 혹은 정혜등지를 강조하는 것일까? 여기에는 인간을 바라보는 인간관, 심성론의 문제가 가로놓여있다. 인간의 심성[人性]은 본래 청정한가? 아니면 물들어진 존재인가? 마음은 환경에 물들어져서 끊임없이 번뇌를 일으킨다면, 먼저 윤리적인 계(戒)를 확립하여 선정[定]을 닦은 다음에 지혜[慧]를 개발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나 본래 심성은 물들지 않는다면 선정의 닦음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 더 중요한 가치가 된다.

현실에서는 먼저 선정을 닦고, 나중에 지혜를 개발하는 것이 좀 더 보편적인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품이란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후자의 접근이 보다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전자는 번뇌의 존재를 실체로 인정하는 까닭에 번뇌를 끊고 일정한 방식으로 억제하거나 통제하려는 전략을 취한다. 이런 접근은 매우 효과적이지만 항상 유용하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번뇌의 존재나 실체를 인정하고, 그것에 대한 통제는 오히려 번뇌를 더욱 치성하게 번성하게 하는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인간의 성품이 본래 청정하다는 입장은 근본적인 깨달음에 기초하면서 인간을 근본적으로 긍정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번잡한 현실 문제를 그대로 온전히 내려놓게 하는 장점이 있다. 통제보다는 수용이 중요한 가치가 된다. 물론 여기에도 약점은 있다. 현실문제 해결에 분명한 기준점을 제공하는 데 나태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 양자의 통합적인 전략이 필요한데, 보조국사의 돈오점수이고 정혜등지이다.

이때는 인간의 근본적인 성품은 청정하다는 기본적인 패러다임에서 다만 번뇌와 현실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데 있어서 돈오점수와 정혜등지의 입장을 취한다는 것을 말한다. 돈오는 심성에 대한 깨달음이라면 점수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이다. 돈오에 근거한 점수의 구체적 수행방법이 정혜쌍수이다.

이것을 ‘수심결’에서는 자성정(自性定)과 자성혜(自性慧)란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육조단경’에서 인용한 것이다. 자성정이란 본래의 성품에 존재하는 선정이란 말이다. 곧 선정은 외부에서 얻어지고 개발되는 것이 아니고 본래부터 우리의 본성에 갖추어진 바탕[體]이라는 것이다. 자성혜이란 인간의 본래 성품은 지혜롭다는 말이다. 곧 지혜는 외부에서 조달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우리의 본성에 갖추어진 작용[用]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수행은 어떻게 되는가? 선정과 지혜를 닦는다는 말은 적절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본래 갖추어진 덕목이기에, 또한 본래부터 인간의 성품에 갖추어진 자질이라면 양자의 선후관계는 역시 적절하지 않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수행은 오직 돈오이고, 점수란 현실 속에서 돈오에 근거한 작용이다. 이들은 늘 함께 이루어지는 정혜등지(定慧等持)여야 하는 것이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05
호 / 2015년 8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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