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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보조국사의 비명 (3) 국사의 생애

기자명 인경 스님

“오직 도를 좇았으며 지조가 뛰어났고 당당했다”

“스님의 법명은 지눌(知訥)이고 황해도 경서(京西)의 동주(洞州)사람이다. 일찍이 자호를 목우자(牧牛子)로 하였다. 속성은 정씨(鄭氏)이다. 아버지인 광우(光遇)는 국학(國學)의 학정(學正)이었고, 어머니 조씨는 개흥군(開興郡) 출신이었다. 스님은 태어나서 병이 많았고 의사의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했다. 아버지가 부처님께 기도하면서 출가로써 서원을 하니 곧 병이 나았다. 나이 8세에 조계(曹溪)의 운손(雲孫)인 종휘(宗暉)선사에게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았다. 배움에는 일정한 스승이 없었고 오직 도를 좇았으며 지조가 뛰어났고, 당당하였다.”

어려서 잦은 병치레로 고통
부처님께 기도해 병 벗어나
8세 때 종휘 스님에게 출가
사굴산파 일원으로 선 전파

비명에는 국사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다. 국사의 고향인 동주는 개경의 동쪽[京西]에 있는 황해도 서흥군의 옛 이름이다. 아버지는 정광우이다. 국학의 학정이었다. 국학은 신라 때 교육기관으로, 고려 때는 국자감(國子監), 고려후기에는 성균관(成均館)이라 했다. 국자감은 오늘날의 국가에서 운영하는 국립대학이고 학생들은 신분에 따라 제한을 두었다. 교육과정은 주로 유교적 교과목으로 편성되었다. 학정은 조선시대의 성균관에서도 그대로 유지된 직책이다. 직원은 2명으로 과거시험을 관리하고 예비심사를 담당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님은 1158년(예종12)에 태어나서 16세 되는 1173년에 정식승려가 되었다. 스님은 태어나서 병약하였고, 의원의 치료에도 별로 좋아지지 않아서, 아버지가 부처님께 기도를 하였고, 아들의 출가를 서원하여 마침내 병이 나았다고 한다. 이 구절은 약에 의해서 치료가 되지 않고, 종교적인 힘에 의해서 치료가 되었다는 것으로 큰스님들의 출가동기에서 종종 발견이 된다. 대표적으로는 남송과 원나라에서 활동하고 고려후기에 간화선을 전래한 몽산덕이 스님이다. 몽산덕이 스님도 병에 걸려서 스스로 기도하기를 만약에 이 기도를 통해 병이 낫게 된다면 출가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다행히 건강을 회복하자 출가하여 임제종 큰스님이 되었다. 국내에서는 송광사 전 방장스님이셨던 구산 스님께서도 병에 걸려 기도를 했고 몸이 낫게 되자, 출가를 하여 큰 깨달음을 성취하였다. 지눌 스님의 경우는 아버지가 부처님께 기도했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유사하다. 이렇게 해서 스님은 8세라는 아주 어린 나이에 출가를 하게 되었다.

운손은 자식(1대), 손주(2대), 증손(3대), 현손(4대), 내손(5대), 곤손(6대), 잉손(7대)에 이은 8대를 말한다. 종휘선사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없다. 단지 보조국사의 비문을 통해 나타난다. 조계(曹溪)란 육조혜능을 말한다. 그러니까 혜능으로부터 8대가 종휘선사라는 이야기다. 신라 말에 선종은 전래되어 전국적으로 9산문을 열었다. 구산선문은 대부분 당시 당나라에서 크게 유행하던 마조계통의 선을 수용하였다. 범일국사(810~889)도 혜능선사의 계열인 마조선사의 제자인 제안 스님으로부터 법을 받았다.

범일국사는 “도는 닦는 것이 아니라 더럽히지 않는 것이다. 부처나 보살에 대한 소견을 내지 않는 평상의 마음을 곧 도라고 한다”는 제안 스님의 법문에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후 범일국사는 문성왕 6년(844)에 귀국한 후 강원도 호족이었던 명주도독의 요청에 따라 굴산사로 옮겨서 40여년 동안 많은 후학들을 양성했다. 그로부터 신종(信宗)·주해(周解)·임엄(林儼)·양경(讓景) 등 500여명의 제자를 배출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이 평가하는 범일선사의 사굴산파다. 범일국사는 기존의 교종들과 신라 왕권과 거리를 두면서 영동지역 호족들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멀게는 왕건에 의한 고려 개국에 기여하였다.

범일국사의 대표적인 선사상은 진귀조사설(眞歸祖師說)이다. 진귀조사설은 선종의 원류를 부처님에게 두지 않고 부처님의 가르침까지도 진귀조사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부처님 가르침을 중시하는 교종과는 구별되는 다른 불입문자(不立文字)라는 선사상이다. 종휘선사가 사굴산파에 속하기에 지눌(知訥) 스님도 사굴산파 출신이라고 말한다. 사굴산파는 고려시대에 들어서도 활발한 활동을 유지하였다.

인경 스님 명상상담연구원장 khim56@hanmail.net


[1311호 / 2015년 9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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