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12연기 - ② 무명
37. 12연기 - ② 무명
  • 이진경 교수
  • 승인 2015.10.13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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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하기에 보여도 볼 수 없는 어둠의 세계

 

▲ 일러스트=김주대 문인화가·시인


잠든 동안에도 몸속 세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처럼
모든 것은 무한속도로 변해
실상을 본다는 것은 불가능


무지의 발생을 해명하기 위해선 무지를 전제하지 않은 채 무명을 정의해야 한다. 무지를 전제하지 않는 무명이란 무엇인가? 무지 이전에 존재하는 무명이다. 무지보다 앞서 존재하며, 무지를 조건 짓는 무명이다. 무명이란 무지한 눈에 포착된 세계가 아니다. 그것은 무지 이전에 존재하는 세계고, 무지하지 않은 눈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세계다. 그렇기에 제대로 포착할 수 없는 세계다. 포착되기 이전의 세계다. 따라서 지혜 또한 작용하기 이전의 세계다. 지혜보다 앞서 존재하고 지혜를 조건 짓는 무명이다. 지혜와 무지 이전에 있는 게 무명이다.

무명이란 빛이 없음이다. 빛이 없는 어둠이고, 어둡기에 뭐가 뭔지 알 수 없음이다. 그 어둠은 지혜나 무지 이전에, 보고 듣고 판단하는 어떤 작용 이전에 존재하는 어둠이다. 그것은 모든 것 이전에 주어진 세계, 애초에 주어진 세계다. 항상-이미 존재하기에 ‘태초’라는 시작의 시간으로 한정되지 않는 ‘시원’이고, 현재는 물론 과거와 미래에도 언제나 상존할 세계란 점에서 시간을 넘어서 있는 ‘시점’(始點)이다. 그것은 무상(無常)하게 변화하는 세계 그 자체다. 무상하기에 그 자체론 혼돈이요 카오스인 세계고, 그렇기에 ‘어둠’이라고 명명되지만 결코 어둡지 않은 세계, 밝게 빛나는 그대로 어둠인 세계다. 어떤 것도 감추지 않고 다 드러내지만 어떤 것도 제대로 포착될 수 없기에 ‘어둠’이라 불리는 세계다.

12연기가 시작되는 개념인 무명이란 석가모니가 발견한 무상한 세계와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깨달음이 불교의 모든 가르침의 출발점이듯이, 그것은 12연기라는 가르침의 출발점인 것이다. 알다시피 ‘유부’라고 불리는 아비달마의 사상가들은 이 무상의 변화를 포착하기 위해 사대와 오온으로 구성된 세계를 더할 것 없이 작는 크기로 분할했고, 그럼으로써 더는 분할할 수 없는 최소 크기에 도달하려고 했다. 그 최소 크기 속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극미의 ‘요소’를 포착하고자 했다. 모든 것을 극미의 요소로 분석하여 75개의 ‘달마’를 찾아내 ‘유’를 구성하는 기본요소라고 정의했다. 이는 더는 분할할 수 없는 최소 크기의 실체란 점에서 일종의 ‘원소’ 내지 ‘원자’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것으로써 무상한 세계를, 무상한 물질이나 대상, 감각이나 식을 해명하고자 했다. 제행무상이라 하지만 그냥 무상함을 받아들이는 것만으론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무상은 한 찰나의 순간에도 멈추어 있지 않음이다. 한 찰나, 극미의 원소에 멈추어 고정된 어떤 것이 된다면, 무상은 무상이 아니다. 무상이란 무한소에 가까운 크기로 자르고 또 잘라도 멈춤 없이 변화하고 생멸하는 사태를 뜻한다. 가령 잠들어 있는 경우에조차, 우리의 신체를 세포의 크기로 분할하여 살펴본다면, 나름의 리듬으로 변화하며 이웃한 세포들과 무언가를 주고받는 무수히 많은 세포들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세포도 한 순간도 멈추어 있지 않고 변화한다. 그 세포를 다시 분할하여 들어간다면, 각각의 세포소기관들 역시 잠시도 멈추어 있지 않고 이웃한 것들과 무언가를 주고받으며 활동하고 있다. 그것을 다시 잘라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자르면 자르는 대로 잘려진 것들 간에는 무언가를 주고받는 활동이나 작용이 있고, 변화가 있다. 어디에서 멈출 수 있을까? 더는 자를 수 없는 최소 크기가 있을 때까지? 그러나 분자라고 하든 소립자라고 하든 어떤 것도 크기를 갖는 한 다시 자를 수 있다. 즉 자를 수 없는 크기는 없으며, 그렇기에 변화 없는 최소단위의 실체 같은 건 없다.

뒤집어 말하면, 멈추어 있는 듯 보이는 잠든 신체조차 무상한 것들 속의 무상함, 또 그 속의 무상함이 무한히 중첩되어 있는 것이다. 무상의 무상의 무상의…무상이 중첩된 신체인 것이다. 자르고 또 잘라도 무한히 분할되는 이 중첩된 무상한 변화는 무한속도를 갖는다. 가령 0~1사이의 수가 무한히 많은 것은 어떤 수든 간에 나누고 또 나누어도 또 다시 나눌 수 있기 때문인 것처럼. 멈추어선 것처럼 보이는 잠든 신체조차 무상이 겹겹이 중첩된 무한의 무상을, 무한속도의 변화를 갖는 것이다. 무상한 세계, 그것은 무상한 변화가 무수히 많은 층으로 중첩된, 무한속도로 변하는 세계인 것이다. ‘중중무진(重重無盡)’으로 중첩된 무상한 변화의 세계, 중중무진한 무한속도로 변하는 세계인 것이다.

무한속도의 변화, 그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포착할 수 없는 것이란 점에서 ‘카오스’고 무명이다. 무명이란 바로 무한속도로 중첩된 무상의 세계다. 무엇 하나 가린 것이 없건만 결코 포착할 수 없는 세계, ‘불가능성’으로서의 세계다. 눈에 보여도 보이지 않는 세계고, 빛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세계다. 이런 의미에서 무명은 그 자체로 무지를 뜻하지 않지만, 무지를 낳을 수밖에 없다. 보여도 보이지 않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불가능성으로서의 어둠이고, 지혜와 무지가 구별되기 이전의 어둠이다. 그렇기에 무명의 어둠은 무지에 기인하는 어둠이 아니다. 반대로 무지를 조건 짓는 무명이다.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볼 수 없음, 그 ‘불가능성’에서 오는 어둠이다. 무지 이전의 어둠이다. 빛이 들어갈 수 없음이란 의미의 무명이다.

그렇다면 무명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한가? 무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포착할 수 없다면, 실상을 통찰하는 지혜란 불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무명에 기인하는 무지만이 가능할 뿐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석가모니의 통찰력이 탁월한 것은 지혜를 그런 무지와 짝하는 개념이 아니라 그로부터 벗어난 개념으로 정의한다는 사실이다. 알지 못하는 무지와 대립되는 짝은 앎이고 지식이다. 무명은 그런 의미에서 지식의 불가능성을 뜻한다. 아무리 다가가도 충분히 알 수 없고 확실하게 틀어쥐려할수록 놓치게 되는 것이 무상한 세계의 실상이니까. 지혜란 바로 그런 사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상한 것을 멈추고 고정하여 ‘알려는’ 것이 아니라 무상함을 무상함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멈출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멈추려 하는 것이야말로 고통의 원인임을 아는 것이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고정할 수 없고 포착할 수 없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지혜인 것이다. 따라서 지혜는 지식과 어쩌면 반대방향에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불가능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함은 세계의 실상이란 알 수 없다며 포기하고 절망하는 니힐리즘 아닌가? 그렇지 않다. 니체 말대로, 멈출 수 없는 세계에 절망하여 변화 없는 세계, 피안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니힐리즘이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알려는 모든 시도를 포기하는 게 아니다. 살려는 한 세상에 대해, 눈앞의 저것이 무언지 알아야 한다. 알기 위해, 포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변화를 감속시키고 멈출 수밖에 없다. 그리고 멈추어선 채 포착된 것에 이름을 부여한다. 무상한 세계의 불가능성을 인정한다 함은, 그렇게 포착된 것이 실상과 거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고, 고정한 순간 이미 실상은 옆으로 빗겨나기 시작했음을 아는 것이며, 그렇기에 내가 포착한 것이 그저 잠정적인 것임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 고정된 것을 떠나 다시 변화된 것을 향해 눈을 돌리길 반복하는 것이다. 지혜란 내가 포착한 것을 믿고 확장해가는 것이 아니라, 무상한 세계 앞에서 그걸 내려놓을 줄 아는 것이다. 부처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한 물건도 지지 않고 있을 땐 어떠합니까?”라는 물음에 조주 스님이 “내려놓아라!”라고 했던 것은, 이어서 선승들이 “내려놓아라!”를 끊임없이 반복하여 가르쳤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진경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solaris0@daum.net
 


[1314호 / 2015년 10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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