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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아미타여래도의 정체성

피안의 세계 들어선 이 환영하는 부처님과 중생의 약속

▲ 일본 서복사(西福寺) 소장 관경16관변상도. 고려. 202.8×129.8㎝.

고려불화는 지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인식되어 있지만, 불과 1978년 이전까지만 해도 그 존재조차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 이전에는 대체로 일본 혹은 중국의 불화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단지 고려시대 건축인 수덕사 대웅전의 벽화 정도만이 유일한 고려불화의 흔적으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었다.

고려불화 대표 도상 중
유독 많은 작품 전해져
임종 지키는 그림으로 추정

‘수기도’와 유사한 양식으로
명확한 구분 기준 찾기 어려워

지협적 문제 연연하기보다
부처님과의 만남에 의미 둬야

고려불화 연구의 도화선은 1978년 일본 나라의 야마토분카간(大和文華館)에서 열린 ‘고려불화전’이 계기가 되었다. 일본인 연구자들 사이에서 일본불화도 아니고, 중국불화도 아닌 이 독특한 양식의 불화들이 점차 고려불화로 알려지면서 급기야 대규모 전시가 열린 것이었다. 당시 바다 건너 이 현상을 지켜보아야했던 우리나라 연구자들의 놀라움과 아쉬움이 어떠했을지 후학으로서는 짐작하기 어렵다.

당시 전시를 다녀온 연구자들은 신속히 이 소식을 한국 학계에 전파했고, 새로운 연구 분야가 눈을 뜨게 되었다. 원래 다른 미술사 분야는 우리나라 미술사 연구의 태두인 우현 고유섭 선생에 의해 어느 정도 기초가 다져져있었지만, 고려불화는 뒤늦게 연구가 시작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그간의 역량으로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발 빠르게 연구성과를 쏟아내었다.

▲ 일본 조쿄지(淨敎寺) 소장 아미타팔대보살내영도. 고려후기. 1,733×911mm.

그 이후로 현재는 더 많은 고려불화가 발굴되었고, 보다 다양한 도상도 소개되었지만, 당시의 도록을 보면 관경변상도, 아미타내영도, 수월관음도 등 극히 대표적인 도상들을 위주로 소개되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고려불화에서 애용되었던 소재는 아미타내영도였다. 아미타내영도란 죽은 이의 영혼을 아미타불이 마중 나와 맞이하여 극락으로 인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미타내영도의 보다 본격적인 그림은 ‘관경변상도’이다. ‘관무량수경’에 근거하여 그려진 이 그림은 죽음을 앞둔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과 위데휘왕비에게 석가모니께서 극락왕생하기 위해 해야할 관상법을 소개한 내용인데, 말하자면 석가모니께서 직접 이들을 데리고 극락세계를 보여줌으로써 죽음의 공포를 없애주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아미타내영도는 바로 이 관경변상도의 한 부분을 확대한 것이다. 관경변상도에는 막 극락세계의 연못에서 올라온 왕생자를 맞이하는 아미타불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렇게 마중 나온 아미타불이 극락세계의 여러 장소를 지나 아미타불의 설법 장소로 인도해가는 것이다. 아미타내영도는 바로 여기 등장하는 마중 나온 아미타불만 별도로 그려 모신 것이다.

이런 그림은 실제로 임종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해 걸어두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러한 장면을 그린 일본의 회화작품이 남아있어서 우리도 상황이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그러한 용도로 사용하기에 관경변상도는 매우 크고 정교한 그림이어서 상당한 재력가가 아니면 사용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아미타불이 마중 나온 장면만 확대해서 그린 그림으로 임종을 지켰던 것이 아닐까 추정되었다.

▲ 서복사 소장 관경변상도 세부(수기장면).

그러나 이러한 견해에 반론이 제기되었다. 고려시대의 관경변상도를 대표하는 서복사 소장 ‘관경16관변상도’ 하단의 내영장면을 자세히 보면 좌우에 각각 ‘초생접인마정지처(初生接引摩頂之處)’ 및 ‘초생접인수기지처(初生接引授記之處)’라는 명문이 쓰여 있음에 주목하여, 이는 내영장면이 아니라 수기장면이라는 설을 제기한 것이다. ‘마정’이란 ‘정수리를 쓰다듬어’ 수기를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는 ‘수기’의 개념이다. 나아가 이 장면을 확대하여 그린 아미타내영도 역시 결국은 모두 수기도로 보아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 근거 중의 하나로서 일본에서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에 등장하는 아미타불은 구름 위에 올라가 있어서 멀리서 왕생자를 맞이하기 위해 구름을 타고 오는 모습을 분명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고려의 내영도에서는 구름이 묘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이 장면이 내영도인가 마정·수기도인가 하는 문제는 어쩌면 지협적인 내용일 뿐 작품을 감상하는데 중요한 요소는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도상이 원래 어떤 도상에서 기원해서 만들어진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장면이 궁극적으로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다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이 장면이 정말 ‘수기도’라면 절하고 있는 사람은 다음 생애에 부처가 될 보살이므로 매우 신성한 존재이다.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내영도’라면 절하고 있는 인물은 우리 누구나 될 수 있는 보다 친근한 존재이다.

관경변상도의 내영장면에 대해 ‘수기도’라는 해석은 일단은 그림에 분명히 등장하는 명문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반론은 제기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아미타내영도가 수기도인가에 대해서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특히 고려불화 중의 아미타내영도 중에도 구름을 밟고 있는 예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름이 있는 몇몇 예는 내영도, 없는 예는 수기도로 구분할 정도로 고려시대 사람들이 그 표현에 연연했을 것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는 추세다.

아울러 만약 고려불화 중의 수많은 아미타여래도가 수기도로서 그려진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그려진 것인지 불명확하다. 관경변상도에서의 장면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마중하러 지상에 내려오는 아미타불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이미 극락왕생한 영혼에게 수기를 내리는 장면이다. 따라서 모든 아미타내영도가 사실상 극락세계에서 일어나는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보기에는 관경변상도에서의 의미를 다소 지나치게 확장한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 중국 신강성 투루판 베제클릭 제15호 석굴벽화. 현재는 러시아 에르미타쥬 박물관 소장.

앞서 아미타래영도는 불교의례적 측면에서 문맥을 이해할 수 있지만, 수기도가 대량으로 그려져 유통된다는 것은 설명하기 다소 어려운 점도 있다. 물론 수기도가 특별히 유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중국 신강성 투루판의 베제클릭 석굴은 다양한 형태의 수기도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또한 서있는 자세의 부처가 무릎을 꿇거나 엎드린 보살에게 수기를 내리는 장면을 묘사한 작품들은 수기의 대상을 반드시 석가모니에게 수기를 받은 미륵, 혹은 연등불에게 수기를 받은 전생의 석가모니에 국한해서 생각한 것이 아니라 마치 석굴의 발원자 개개인이 모두 성불의 수기를 받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 제작된 것이어서 이를 ‘서원도’라고 부른다. 따라서 관경변상도 속의 아미타래영도 역시 마치 법화경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미륵보살 외에도 많은 승려·보살들에게 수기를 내리셨던 것처럼, 죽음에 임한 모든 사람들이 극락에 머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수기를 받고 도솔천에 올라 머물다가 성불하기를 염원하는 서원을 담았다고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여하간 내영이든 수기이든 그 뿌리는 유사한 곳에서 갈라져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간다라 미술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연등불수기본생’이다. 과거불이었던 연등불(디팡카라불)께서 진흙탕을 밟으려 하시자 석가모니의 전생인 수메다가 자신의 머리를 풀어 연등불이 즈려밟고 가실 수 있게 해드렸으며, 그 공덕으로 연등불은 수메다에게 성불의 수기를 내렸다는 이야기이다. 이 장면에서는 더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모습이긴 하지만 전체적인 인상은 관경변상도 속의 수기장면이나 내영장면과 유사하다.

다만 관경변상도 속의 장면이 수기장면을 표현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극락세계에 피어난 영혼을 맞이하러 나오고 있다는 전반적인 분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 연못에서 극락의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마주친 아미타여래는 일부러 마중을 나와 있는 모습이라는 큰 문맥을 간과해서는 안 될 듯하다. 일단 내영이 있고나서 수기도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수기도인가 내영도인가의 문제보다는 기본적으로는 내영도의 성격에 수기도의 의미도 담고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 간다라 ‘연등불수기본생도’. 파키스탄 페샤와르 박물관 소장.

나아가 수기나 내영은 서로 하나의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수기는 성불로, 내영은 극락으로의 새로운 삶을 보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을 내영이나 수기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기 보다는 결국 피안의 세계로 처음 들어선 사람들의 불안감에 대한 부처님의 든든한 보증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서로 닮을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부처님과 중생과의 약속의 장면인 것이다.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indijoo@hanmail.net

[1319호 / 2015년 11월 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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