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안서(安西) 유림굴(楡林窟)
5. 안서(安西) 유림굴(楡林窟)
  • 김규보 기자
  • 승인 2015.11.23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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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설 물줄기가 피워낸 사막 속 화엄법계 꽃망울

▲ 기련산맥 만년설이 녹아내린 물이 흐르는 계곡을 가운데로 두고, 양 옆 절벽에 굴들이 들어서 있다. 유림굴에서는 자그마한 숲도 볼 수 있다.

난주(兰州)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가욕관(嘉峪關)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번거롭지도, 그렇다고 아쉽지도 않은 딱 적당한 정도의 비다. 그동안 높은 습도 탓에 다소간의 불편함을 느껴왔던지라 지금 내리는 비가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더군다나 가이드는 이곳의 연평균 강수량이 60mm에 불과하다면서 놀랍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늘이 흩뿌리는 감촉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동안 가피의 의미를 헤아려본다. 비가 흔한 곳에서 왔으나 이제는 그것이 귀한 곳을 순례하며, 삶의 노곤함을 이유로 감춰버린 소중한 것들을 다시금 불러들인다. 깨어있고자 한다면 응당 깨어날 것이니, 가피는 그러한 가운데 스스로 꽃피우는 생명일 것이다.

계곡 양쪽에 총 42개 석굴
5650㎡ 벽화·소조상 259점
뛰어난 예술성·사료적 가치

돈황 막고굴 등과 더불어
실크로드 불교예술의 진수
6굴 24.7m 미륵대불 ‘백미’


▲ 하서주랑의 가욕관은 과거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었다.

비를 맞으며 가욕관을 둘러본다. 가욕관은 하서주랑(河西柱廊) 서쪽의 가장 좁은 땅에 위치한다. 하서주랑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중요한 요충지였다. 남과 북이 높고 험한 산맥으로 둘러싸여 있기에 길이 1000km, 최대 100km 폭의 하서주랑만이 평지로서 통로가 돼줬다. 때문에 이곳에 요새인 가욕관이 들어선 것은 당연하다 할 수 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가욕관의 성루에 올라 기련산맥(祁連山脈)을 바라본다. 들어가려 했던 자, 막으려 했던 자 모두 종적을 찾을 길 없고 오직 기련산맥까지 뻗은 성벽만이 초라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가욕관을 출발해 고비사막과 마주한다. 사막은 제 품으로 들어온 존재들을 짓누르려는 듯 광막함을 순식간에 드러낸다. 감로수를 떨어뜨리던 먹구름은 어느새 사라지고 지평선까지 이어진 대지, 무량(無量)의 모래알만이 시야를 뒤덮는다. 원시(原始)의 대자연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무서운 기세로 출렁이고 있다. 아득한 옛적 어느 날, 구법승들 또한 이 풍경에 압도되어 숨죽인 채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걷고 걸어도 결코 다다를 수 없을 것 같은 지평선으로, 그것 너머에 계실 부처님에 닿고자…. 위태롭고도 처절했던 사막의 순간들을 매순간 딛고 일어나야 했던 스님들의 위대한 정신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숭고하게 기록돼야 할 것은 구법기행, 자체라기보다 그것에 가려 가뭇없이 잊힌 구법승들의 하루하루일 것이다.

한참 동안 사막을 내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춰 선다. 가이드가 마이크를 잡고 오늘의 목적지 안서(安西) 유림굴(楡林窟)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주위를 둘러봐도 변함없는 사막의 풍경뿐이기에 영문을 알 수가 없다. 유림굴이 있다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놀랍게도 유림굴은 이곳에 있었다. 사막을 반으로 가른 뒤, 그 결을 따라 깊이 파내려간 듯 기이한 모습으로, 유림굴은 이곳에 있었다. 기련산맥 만년설에서 녹아내린 물이 흐르는 계곡을 가운데로 두고, 양 옆 절벽에 벌집처럼 들어선 굴들이 순례자 앞에 홀연히 나타난다. 하천 주변으로는 조그마한 숲도 보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청량감이 목젖을 훑고 내려와 몸속 구석구석에 퍼지는 것을 느낀다. 텁텁한 사막 한복판에서 유림굴은, 그렇게 신비로운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 유림굴의 감실들. 감실마다 열쇠로 잠긴 출입문이 있다.

유림굴은 감숙성(甘肅省) 안서현 서남쪽 75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돈황(敦煌)의 막고굴(莫高窟), 서천불동(西千佛洞)과 함께 이 지역 불교예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석굴로 손꼽힌다. 언제부터 개착됐는지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남아있는 석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당대(唐代)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도 오대(五代), 송대(宋代), 서하(西夏)시대에도 지속적으로 조성됐으며 원대(元代)에 이르러 불사가 마무리됐다고 전해진다. 다만 청대(淸代)에 보수작업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소조불상들이 크게 훼손됐다고 한다. 현존하는 굴은 동벽에 32개, 서벽에 11개 등 모두 42개다. 석굴에는 총 5650㎡의 벽화와 조각·소조상 259점이 남아있다. 유림굴은 감실(龕室)의 형식과 표현 내용 등에서 막고굴과 유사하며 특히 벽화는 뛰어난 예술성과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계단을 따라 유림굴로 내려간다. 좁은 하천에 차가운 물이 흐르고 나무의 풍성한 잎들은 미세한 바람에도 흔쾌히 제 몸을 흔든다. 모처럼 들려오는 생명의 노랫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매표소로 향한다. 매표소에는 유림굴 안내인이 순례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유림굴은 현재 동벽의 감실만을 개방하고 있는데, 3개 층으로 구성된 감실 앞에 계단과 난간을 만들고 입구에 출입문을 만들어놓았다. 안내인이 열쇠로 출입문을 열어야만 감실에 들어갈 수 있다. 이는 훼손을 막기 위한 것으로 유림굴뿐 아니라 막고굴, 베제크릭 석굴 역시 마찬가지로 운영되고 있다.

순례단은 먼저 11굴로 들어간다. 11굴에는 서하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18나한상이 서 있다. 금방이라도 굴 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생동감 있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곳 천장에 개착 당시 그려진 것으로 보이는 팔선(八仙) 벽화가 있다는 사실이다. 팔선은 도교에 등장하는 8인의 신선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를 통해 11굴이 처음에는 도교사원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옆, 청대에 중수한 12굴에는 오대(五代)시대의 18나한 벽화가 장엄돼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서역인이 아닌 한족의 얼굴이다. 서역에서 전파된 불교가 서서히 중국적인 형태를 갖춰나갔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천장의 천불화는 온전히 보존돼 있는데 막고굴이나 베제크릭과는 달리 개방된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아 약탈이 적었던 탓이다.

▲ 12굴 벽화. 서역인이 아닌 한족의 얼굴로 그려져 있다.

13호굴은 송대에 개착됐으며 석가모니부처님을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협시하고 있다. 천장 벽화는 1000년 전에 그려졌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현대적이다. 감실 입구 바로 위의 비천상 벽화는 당에서 북송 초기의 기풍이 남아있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양쪽 벽에 그려진 설법도도 색채가 선명하게 보존돼 있다. 안내원은 이어 19호굴로 순례단을 이끈다. 19호굴은 조원충(曹元忠)이 조성했다. 조씨 가문은 오대(907~979)의 혼란기에 이 지역을 통치했고, 돈황의 막고굴과 유림굴에 가문굴을 만들었다. 비록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16굴 또한 조씨 가문이 조성했다. 19굴 남벽에는 조원충공양상(曹元忠供養象)이, 북벽에는 양국부인공양상(凉國夫人供養象)이 그러져 있다. 조원충은 이곳에 자신과 부인 적씨, 서쪽 호탄국의 왕이 된 조카를 그림으로 새겨 넣었다. 사자에 올라탄 문수보살도 그려져 있는데, 호탄왕이 고삐를 잡고 있는 흥미로운 구도다.

26굴은 입구 옆으로 27굴이 곁굴처럼 들어선 것이 특징이다. 안내인은 유림굴에서 유일하게 참배가 허용되는 곳이 바로 27굴이라고 말한다. 전체적으로 빛이 바래 전모가 확연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일부 남아 있는 벽화를 통해 조성 당시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26·27굴을 나와 마지막으로 6굴을 향한다. 안내인이 각 굴마다 자세히 설명을 해주긴 했지만 할당된 시간이 워낙 짧았던 까닭에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여행지에서 미진한 기분을 달래고자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야말로 미혹한 중생의 어리석음에 불과하지 않을까.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될지, 과연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기나 할는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음이다. 하물며 중국인들조차 방문하기 힘든 여건의 유림굴을 이런 식으로 그저 ‘통과’만 하고 있으니, 그 안타까움이야 말로 다하기 힘들다.

▲ 6굴로 들어가는 입구의 화엄법계 현판.

이런저런 상념으로 무거워진 발걸음을 옮겨 6굴에 도착한다. 6굴 입구에는 화엄법계(華嚴法界)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내가 일체와 하나가 되고, 서로 원융하여 평등한 세계. 이 문만 지나면 그러한 세상을 만날 것인가. 6굴 내부로 들어가자 높이 24.7m 미륵대불이 자애로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다. 6굴의 공간은 유림굴에서 가장 규모가 커서 예불굴로도 이용됐는데, 그래서인지 훼손된 흔적이 역력했다. 순례단 스님들이 미래에 나투실 부처님께 기도를 올린다. 맑은 눈의 부처님께서 망상에 잠긴 눈먼 중생들을 일깨워주시길, 스님들과 함께 기원했다. 그리고 차마 떨쳐낼 수 없었던 아쉬움들은 화엄법계 밖 흐르는 물에 띄워 보냈다.

유림굴에서의 일정이 끝났다. 순례단 스님들을 모아 단체사진을 찍고 계단을 오른다. 지평선까지 이어진 대지와 무량의 모래알은 여전히 무서운 기세로 출렁이고 있다. 터벅터벅 사막을 걸으며 건조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1500년을 침잠해 있던 구법승들의 숨결이 순례자를 어루만진다. 유림굴은 그들이 꿈꿨던 화엄법계의 꽃망울이었나. 문득 고개 돌리니 유림굴은 보이지 않고 사막의 공허가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320호 / 2015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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