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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건흥5년명 금동불광배

기자명 주수완

광배만 남은 불상, 독자 연호 사용한 백제에서 제작했을까?

▲ 건흥5년 명 금동불광배. 명문에 의하면 본존불은 석가모니불이었는데, 가운데 뚫린 구멍으로 보아 좌상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학문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국내의 박물관 전시는 대부분 관람객들에게 어떤 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만, 해외 전시를 보면 종종 답보다는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것도 훌륭한 목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집트 파라오의 미라나 스톤헨지의 건설 목적, 진시황 병마용의 비밀 같은 것은 단순한 이야기 거리를 넘어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상상력을 자극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시킨다. 어쩌면 잘 정리된 답을 제공해주는 한국미술사 관련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한국미술이란 그저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로 인식될 뿐인지도 모른다. 또한 전문가들은 모두 답을 가지고 있다는 분위기 속에서 학자들은 일반 관람객들에게, 혹은 교양강좌 청중들에게 “모른다”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불상 없이 1915년 중원서 발견
명문에 ‘건흥5년 병진년’ 기록
병진년, 536년 또는 596년 추정
536년, 이론상 삼국제작설 불가
596년 고구려작 판명 될 즈음
백제 독자 연호설 제기로 미궁
불상·금석문·문헌사료 맞물린
한국불교미술사에서 첫 난제

어떻게든 대답은 한다고 치더라도, 고등학교 교과서처럼 이미 답이 알려진 문제에, 혹은 분명 이미 답이 나와 있을 것이라고 믿는 분야에 그 누가 관심을 가질 것인가? 그러나 한국 미술은 그렇게 답이 뻔히 알려진 쉬운 문제가 아니다. 마치 수학에서의 ‘푸앙카레의 추측’이나 ‘리만의 가설’과 같은 난제들처럼 미술사에서도 풀리지 않는 난제들이 있다. ‘한국불교미술사의 난제들’이라는 소개를 통해 독자 여러분들도 불교미술사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라며, 더불어 이들 난제에 한번 도전해 보시기를 권해드리고 싶다.

▲ 일본 이소노카미(石上神宮) 소장의 칠지도. 백제의 연호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는 유물이다.

첫 난제로 건흥(建興) 5년명 광배의 얽히고설킨 문제를 출제(?)해드리고자 한다. 이 광배는 불상이 사라진 채 1915년 충북 충주 중원군 노은면에서 발견되었다. 이 광배에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중요한데, 이에 의하면 “건흥5년 병진년”에 제작된 것이다. 출토지가 충청도이니만큼 처음에는 백제의 광배로 받아들여졌지만, 점차 고구려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건흥’이라는 연호의 문제인데, 이는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연호여서 삼국 독자의 연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중국 당나라 때 쓰여진 ‘한원(翰苑)’이라는 지리서는 백제가 연호를 사용하지 않고 간지만 사용했다고 기록하고 있고, 무녕왕릉 지석에서도 연호 대신 “백제 사마왕 62세 되던 해…” 등으로 기록하고 있어서, ‘건흥5년…’처럼 연호를 사용한 명문은 백제의 것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이다. 그렇다면 고구려나 신라의 작품이 될 것인데, 이는 두 번째 문제와 맞물려 있다.

▲ 충남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 6세기중반. 백제.

즉, 두 번째 문제는 불상의 편년과 관련된 것이다. 병진년은 대체로 536년이나 596년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536년 설은 건흥 5년을 안원왕 6년으로 추정한 결과이고, 596년은 광배의 미술사 양식의 흐름에 따라 판단한 결과이다. 여기서 536년 설을 따른다면, 다시금 신라의 광배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라는 536년부터 처음으로 법흥왕이 건원(建元)이라는 연호를 사용하기 시작했으므로, 건흥 5년이 536년이라면 이미 이전부터 연호를 사용해왔던 것이 되어 사료와 맞지 않는다. 또한 고구려의 작품으로 본다면 명문에 의해 고구려 불상이 확실한 ‘연가7년명 금동불입상’의 제작연대인 기미년을 미술사학계에서 대체로 539년으로 보는 것과 서로 맞지 않는다. 이에 따르면 536년은 고구려의 연가4년이자 건흥5년이 되어 마치 고구려가 두 개의 연호를 동시에 쓴 것이 되므로 있을 수 없다. 때문에 역사학계에서는 연가7년을 539년이 아닌 419년이나 479년으로 보기도 하지만, 중국 불상의 양식적 흐름을 고려했을 때 500년 이전으로 올라가기 어려움은 지난해 ‘쟁점, 한국불교미술사’ 첫 글에서 다룬 바 있다. 따라서 일단 536년은 이론적으로는 백제작도, 고구려작도, 신라작도 될 수 없다. 결국 596년 설이 유력한 후보로 남는다.

596년 설로 본다면 이번에는 신라의 연호로서 진평왕대부터 선덕여왕대까지 사용한 건복(建福) 연호와 겹치게 되어 신라작일 가능성은 배제된다. 또한 백제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으므로 이번에도 제외되면 고구려만이 남는다. 신라는 처음 연호를 사용한 법흥왕의 ‘건원’부터 중국 당의 연호를 받아들이기 직전 동안 진덕여왕이 사용한 ‘태화(太和)’까지 이미 알려져 있어서 연호가 있는 삼국시대의 불상들은 처음부터 신라작일 가능성은 배제되는 편이다.

▲ 충남 서산 마애삼존불 본존. 600년경. 백제.

이렇게 대체로 건흥5년명 광배는 596년 고구려 작으로 판명이 나는 듯싶었다. 하지만 새로운 연구가 소개되면서 문제는 다시 복잡해졌다. 그 발단은 널리 알려진 ‘칠지도(七支刀)’의 명문해석이다. 백제작으로 알려진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은 “태(泰)  4년”이라는 연호로 시작하는데, 백제는 연호를 사용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기존에는 중국 서진(西晋)의 연호인 태시(泰始)로 보거나 동진(東晋)의 연호인 태화(太和)로 해석하고 각각 268년, 369년으로 보았다. 그러나 새롭게 백제도 연호를 사용했으며, 칠지도의 이 연호가 백제의 독자적인 연호라고 보는 학설이 제기된 것이다. 그러한 논의의 중요한 근거 중 하나는 우선 기존에 “태  4년 5월16일 병오”로 보았던 것이 1981년도의 X레이 사진 분석 결과 ‘11월16일 병오’로 확인되었고, 11월16일이 병오일인 해는 기존의 268년이나 369년으로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11월16일이 병오인 해를 찾아보면 408년이 해당되며, 이때는 백제 전지왕 4년이고, 따라서 ‘태화’ 연호는 백제의 독자적인 연호라는 것이다.

또 다른 근거는 명문에 등장하는 “기생성음(奇生聖音)”에 등장하는 ‘기생’을 백제의 세자 ‘구수’로 보고 근초고왕의 아들 근구수로 해석해 온 것과 달리, ‘성음’을 ‘성스러운 가르침’ ‘부처의 가르침’이라는 불교용어로 보고 ‘기생성음’을 ‘부처님의 가호로 진귀하게 태어났다’로 해석한데서 비롯되었다.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것이 침류왕 원년 384년이므로 이러한 불교적 표현은 최소한 384년 이후가 되어야 쓰여 질 수 있는 내용이라는 것이 논지였다. 이러한 견해에 의하면 백제도 연호를 사용했다는 것이 된다. 백제의 연호사용은 이전에도 주장되어 온 바가 있었지만, 이 칠지도 논란으로 인해 더욱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 산동성 제성시 청운사지 출토 금동일광삼존상. 17.2cm. 동위(6세기).

중국 측 사료에 기록된 바와는 달리 백제도 독자의 연호를 가지고 있었다면, 문제의 양상은 원점으로 돌아가 건흥5년명 광배가 백제작일 가능성을 다시금 열어두게 한다. 특히 건흥5년명 광배의 양식적 특징을 보면 백제 불상으로 알려진 작품들과 유사한 점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두광(頭光)에 보이는 풍부한 양감을 가진 연판문은 백제의 수막새기와에 보이는 연판문과 닮아있다. 실제 백제 불상에서도 이런 연판문이 보이는데, 예를 들어 예산 화전리의 사면불상에 보이는 두광 연판문이나 서산마애불 본존불의 두광 연판문과 유사한 양식이다. 이는 고구려의 가늘고 날카로운 연판문과 차이가 있다.

이러한 백제의 불상들은 대체로 6세기 중·후반에 속하는 것인데, 바다 건너 중국 동위·북제 시대의 산동성 지역에서도 이와 유사한 불상들이 발견되고 있어서 당시에 우리나라에 많은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특별전에도 전시된 산동성 제성시 청운사지에서 출토된 금동불상은 중국 동위(東魏) 시기의 불상으로서 6세기 전반기의 작품인데, 그 광배를 살펴보면 건흥5년명 광배와 매우 유사함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571년에 북제는 백제의 위덕왕에게 ‘사지절도독동청주제군사동청주자사(使持節都督東靑州諸軍事東靑州刺史)’의 직위를 주었다고 하는데, 이 ‘동청주’가 산동성에 속해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산동성 지역과 백제와의 교류관계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현재까지 발견된 삼국시대의 광배와 함께 주조된 일련의 불상들을 모두 고구려작으로 보던 견해로부터 시야를 넓혀 백제작으로 보고자 하는 다양한 해석이 시도되고 있다.

건흥5년명 광배는 높이 12.4㎝에 불과한 작은 유물이지만, 고구려와 백제,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적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를 품고 있다. 사건수사에서 문제를 풀 결정적 단서는 아주 작은 데에 있는 것처럼, 역사를 풀어나가는 단서의 중요성도 유물의 크기와는 무관하다. 만약 백제도 연호를 사용했고, 칠지도의 ‘태화’처럼 ‘건흥’도 백제의 연호라면, 과연 건흥은 누구의 연호였을까? 건흥5년 병진년을 596년으로 본다면 이때는 백제 위덕왕 재위 18년차였고, 백제는 이 시기를 전후하여 일본에 장인들을 파견하여 호코지(法興寺), 아스카데라(飛鳥寺) 등의 건립을 지원하던 때였다. 백제는 혹시 칠지도에서처럼 일본에 관한 정책에서만 유독 연호를 사용했던 것일까? 불상, 금석문, 문헌사료가 맞물린 한국불교미술사의 첫 난제이다.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indijoo@hanmail.net

 [1326호 / 2016년 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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