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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진심’으로 살기

기자명 이미령

위안부 협상 최선인 척하는 정부에 실망

▲ 일러스트=강병호

성원 스님,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편지 잘 받았습니다. 이렇게 간절한 바람의 안부로 새해를 여니 올 한해가 제게는 더욱 복될 것만 같습니다. 새해에는 어떤 계획을 세우셨는지요? 언제부터인가 새해 계획을 세우는 일 자체를 그만둔 지 한참된 것 같습니다. 한 해, 두 해 살아오면서 보자니 지난해니 새해니 할 것 없이 날마다 똑같은 날이더라는 얄팍한 달관의 깨우침 때문인지, 아니면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날마다 좋은 날이라는 옛 스님의 말씀에 꽉 붙들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뭔가 계획을 세우지 않고 1월을 보내려니 좀 아쉽기도 합니다. 올 한 해는 조금 더 진지하게 책을 읽고 사색하고 가지런히 생각을 모아 글로 완성하고, 사람들과 생각과 마음을 나누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스님께서도 마음속에 품으신 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제게 들려주시지 않겠어요?

소설 ‘척하는 삶’ 읽은 후
한일외교협상 소식 들려

굴욕적 합의에도 불구하고
‘불가역’ 내세우는 정부 태도
피해 할머니 가슴에 대못
진심으로 사람·일 대해야

스님, 저는 최근에 인상 깊은 소설 한 권을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인 작가 이창래의 ‘척하는 삶’이지요. ‘A Gesture Life’라는 원제목을 그리 옮긴 것이니 번역자와 출판사가 얼마나 고민하며 생각해낸 제목인지 감탄했습니다. 주인공은 닥터 하타라고 하는, 미국에서 의료기기를 파는 미국계 일본인입니다. 일본인답게 조용한 성품에 점잖기 이를 데 없고, 이웃을 향해 따뜻한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고 있는 데다 매우 부유한데도 겸손하기까지 해서,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그를 존경해 마지않지요. 그래서 그저 의료기기를 파는 상인인데도 사람들은 그를 아프고 몸 불편한 이를 치유하는 의료인처럼 여기고 있기 때문에 ‘닥터’라고 부르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누구나 환영하고 존경하는 닥터 하타를 입양 딸인 한국인 소녀 서니는 대놓고 무시합니다. 양아버지를 곱게 보지 않는 이유는, 사람을 대하는 그의 자세를 예리하게 꿰뚫었기 때문입니다. 닥터 하타는 매우 정중하고 품격 있고 겸손한 사람이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영역으로 들이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진심으로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하지 않는 그런 삶을 입양아인 서니는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던 것이지요.

사실 이 책은 더 큰 문제를 다루고 있답니다. 닥터 하타는 일본인이 아니라 한국 사람으로서, 어려서 일본인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당시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성노예인 한국 소녀들을 관리하는 의무병 노릇을 했지요.

어려서부터 일본사람이 아니라 ‘조센징’으로 놀림을 받을까봐 노심초사했고, 다 자라서 군인이 되어서는 능욕 받는 조선처녀를 늘 ‘건강한 상태’로 관리해야 하는 가운데, 같은 핏줄이면서도 다가가지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지옥으로 끌려온 소녀들은 그가 같은 한국인임을 알아채고 절박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도와줄 듯 도와줄 듯 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금을 긋습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매몰차게 굴었더라면 상대방은 덜 힘들었을 겁니다. 인간미 넘치는 사람처럼 굴지만 더 다가가지는 않는 사람. 그래서 작가는 이런 주인공의 삶을 제스처로 살아온 삶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그의 겉모습을 보면서 점잖고 품위 넘치는 신사라고 추켜세우겠지만 그 속내를 꿰뚫는 사람들은 위선에 몸서리를 치거나 실망하여 떠나게 됩니다. 어찌되었거나 미국으로 이주해서 성공한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그는 늙고 병이 들고서야 깨닫습니다. 늦게나마 제스처뿐인 삶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희로애락에 함께 휩쓸리는 여느 평범한 할아버지의 삶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 거지요.

이 소설을 막 읽고 났을 때 속보가 터졌습니다. 한일외교회담을 통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데’ 합의했다는 소식입니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재단에 일본 정부가 10억엔을 출연한다는 내용도 이어지고 있고요. 그런데 이 돈에는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이전한다는 조건이 걸려 있다는 일본 언론의 보도도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해자 측과의 합의에 ‘불가역’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이 불가역이란 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과거에 머물러 있지 말고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는 데에 누구인들 반대하겠습니까? 하지만 이웃 나라의 어린 여성들을 성노예로 삼았으면서도 역사적 사실로서 인정하지 않고 모호한 말로 발뺌하던 일본 측과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는 합의를 했다는 것을 좀처럼 납득할 수 없습니다.

차선책이었다, 한미일관계 정상화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정부 측의 입장표명을 보자면 중국 작가 루쉰이 그려낸 아Q가 생각납니다. 굴욕적 협상을 해놓고는 ‘역사적 전환’ 운운하는 그 모습이 이웃에게 몰매 맞고 지독하게 멸시당하면서도 대인인 척 씩 웃는 그의 ‘정신승리’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법적인 배상을 요구하는 건, 일본군 성노예로 삶을 망쳐버린 할머니들의 ‘한풀이’ 차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보상이 아니라 배상을, 도덕적 반성만큼이나 법적 차원의 사실 인정과 사죄요구는, 그런 역사를 더 이상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일 뿐입니다. 설령 일본이 이런 요구를 다 들어주었다고 해도 일본 정부를 대표하는 이의 진정한 사죄는 끝없이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단순히 ‘일본의 굴욕’이 아니라 지금도 이웃나라를 쳐들어가 살육과 능욕을 일삼는 자들 모두에게 울리는 경종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제가 읽은 소설이 ‘척하는 삶’이었다는 것이 무척 의미 깊게 다가옵니다. 위하는 척, 공감하는 척, 이해하는 척, 다가가는 척하지만 결국 진정으로 가슴을 열고 상대방 처지로 깊숙하게 들어가지는 않았다는 것, 무관심·방기만큼이나 아픈 이들의 가슴에 뽑을 수 없는 대못을 쳐대는 것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스님, 이렇게 편지를 써내려가다 보니 새해 계획에 하나를 덧붙여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새해에는 쿨한 척, 진심인 척하지 말고, 진짜로 쿨하고, 진심으로 사람과 일을 대해야겠습니다. 수처작주(隨處作主)하라는 옛 스님의 가르침도 바로 이렇게 살라는 말씀이 아닐까요?

겨울인데도 날씨가 고르지 못합니다. 늘 건강 챙기시고 평안하시길.

이미령 북칼럼니스트 cittalmr@naver.com

[1327호 / 2016년 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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