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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과학이 불교였다 아니 불교 속으로 과학이 들어왔다”

기자명 김택근

▲ 성철 스님은 성전암 노트에 “광대무변한 은하계 밖 우주를 측정함으로써 3천대천세계의 불교우주관을 인식하게 됐다”라고 적었다. 그리고 미신적이라고 공격받던 불교 교리가 과학의 힘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음을 대견해했다. 사진은 허블망원경으로 촬영한 카리나 성운.

“불교는 가장 과학적인 종교였다. 불교는 늙고 오래되어 낡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사실은 가장 새롭고 역동적인 종교였다. 성철은 이런 ‘과학 법문’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동구불출하며 공부했던 성전암에서 성철이 메모한 수십 권의 노트에는 과학으로 불교의 근본교리가 밝혀지고 있음을 찬탄했다.”

성철은 과학 이론을 통해 불교의 원리를 설명했다. 백일법문에서도 또 이후의 법문에서도 불교의 진리를 과학으로 풀어냈다.

“색이 공과 다르지 아니하고 공은 색과 다르지 않으며, 색은 곧 공이고 공은 곧 색이니라.(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이란 유형을 말하고 공이란 것은 무형을 말합니다. 유형이 곧 무형이고 무형이 곧 유형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유형이 무형으로 서로 통하겠습니까? 어떻게 허공이 바위가 되고 바위가 허공이 된다는 말인가 하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것은 당연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바위가 허공이고, 허공이 바위입니다. 어떤 물체, 보기를 들어, 바위가 하나 있습니다. 이것을 자꾸 나누어 가다 보면 분자들이 모여서 생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분자는 또 원자들이 모여 생긴 것이고, 원자는 또 소립자들이 모여서 생긴 것입니다. 바위가 커다랗게 나타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분자→원자→입자→소립자로 결국 소립자 뭉치입니다. 그럼 소립자는 어떤 것인가? 이것은 원자핵 속에 앉아서 시시각각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가 충돌해서 문득 입자가 없어졌다가 문득 나타났다가 합니다. 인공으로도 충돌현상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입자의 세계에서 자연적으로 자꾸 자가 충돌을 하고 있습니다. 입자가 나타날 때는 색(色)이고, 입자가 소멸할 때는 공(空)입니다. 그리하여 입자가 유형에서 무형으로의 움직임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연히 말로만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아닙니다. 실제로 부처님 말씀 저 깊이 들어갈 것 같으면 조금도 거짓말이 없는 것이 확실합니다.”

이쯤 되면 법문인지 과학 강의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불교는 가장 과학적인 종교였다. 불교는 늙고 오래되어 낡았다는 인상을 주었지만 사실은 가장 새롭고 역동적인 종교였다. 성철은 이런 ‘과학 법문’을 오래전부터 준비했다. 동구불출하며 공부했던 성전암에서 성철이 메모한 수십 권의 노트(성전암 노트)에는 과학으로 불교의 근본교리가 밝혀지고 있음을 찬탄했다.

‘우주의 근본 대원리를 구명하여 합리 또 합리한 만세부동(萬世不動)의 법칙으로써 조직되어 허공은 가히 붕괴시킬 수 있으나 이론체계는 추호도 움직일 수 없는, 영원히 진정한 종교가 3천 년 전부터 존재하였다. 유-그릴의 기하공리(幾何公理)는 이론이 천박하여 이해가 용이하므로 고금을 통하여 일반에 공개되었다. (하지만 영원히 진정한 종교의) 이 교리는 원래 우주의 심오난사(深奧難思)한 근본원리를 토대로 하였으므로 일반적인 보급은 지극히 어렵고, 오직 탁출(卓出)한 몇몇 지혜인에 독점되어 심산궁곡(深山窮谷)의 고경(古經) 속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학의 경이적 비약으로 인지(人知)가 크게 발달한 금일에야 비로소 그 진가의 일부를 공개하게 되어 그 광명이 점차 우주를 덮게 되었으니 다름 아니라 인도의 싯다르타 태자가 개척한 우주의 원리인 불교 그것이다.

우주의 대신비를 천명한 심원(深遠)한 불교 교리는 1940년대의 과학으로도 몰이해 상태에 있었으나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되어서 원자과학의 극치인 등가원리 즉 질량에너지 동등원리가 만방에 공개됨으로써 불교교리의 기초인 진여상주이론(眞如常住理論)을 다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고 또한 백 인치 2백 인치 망원경이 완성되어 광대무변한 은하계 밖 우주를 측정함으로써 3천대천세계의 불교우주관을 인식하게 되고, 전자현미경으로 일호(一毫)에 9억이란 불교세균설을 규명하여 판별할 수 있게 되었으니, 이러한 사실로만 보더라도 불교가 얼마나 광대심원한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성전암 노트)

성철은 과학이 발달할수록 불교가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했다. 허황하고도 미신적이라며 공격받던 불교 교리가 과학의 힘으로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며 대견해했다. 성철은 또 영국의 캐논 경(Sir Alexander cannon)의 ‘잠재력(The Power Within)’이란 보고서를 인용하여 인간에게 무한한 잠재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캐논 경의 실험 보고를 통해 인간의 정신작용은 뇌신경 세포의 활동에 관계없이 독립해 있다고 설명했다. 또 정신과 정신이 서로 통하는 텔레파시(Telepathy)라는 ‘정신감응’이 있음을 얘기했다. 한쪽에서 어떤 생각을 강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하면 그 생각이 그대로 상대편에 전달된다는 것이다. 또 부처님이 수백, 수천의 장소에 몸을 나타내는 ‘분신(分身)’과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의 육근을 서로 바꾸어 쓰는 ‘육근호용(六根互用)’도 가능하다고 했다. ‘중국 사천에 사는 어린이가 모든 것을 귀로써 본다’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귀로써 보고 눈으로 듣는다[耳見眼聞]는 이 말은 본래 불교에 있는 말입니다. 오조 법연 선사도 이에 대해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보통의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일종의 법문이지 실제로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하고 의심을 품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러나 중생이 번뇌 망상으로 육근이 서로 막혀 있기 때문에 그런 경계에 도달할 수 없을 뿐이지 실제로 부사의(不思義)한 해탈경계를 성취하면 무애자재한 그런 경계가 나타나 육근이 서로서로 통하게 됩니다.”

성철은 ‘아함경’이나 ‘범망경’ 또는 ‘화엄경’에 나타난 불교의 우주관에 대해서도 깊이 들여다봤다. ‘한 일월(日月)이 한 세계를 빚어 천(千)세계가 있나니 이것이 소천(小千)세계요, 소천세계가 천이 있나니 이것이 중천(中千)세계요, 중천세계가 천이 있나니 이것이 대천(大千)세계’(아함경)라는 것과 또 ‘백억 세계에 백억 일월이 있는 끝없는 세계대해’(범망경)는 부처님이 설파한 우주관이었다. 하지만 광대무변한 세계대해를 사람들이 이해할 리 없었다. 허망한 망설로 배척당했다. 그러다 과학이 발달하여 대망원경을 통해 우주를 관찰한 사람들은 경악했다. 부처님의 우주관은 틀림이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대천세계를 세 번 곱한 것이 삼천대천세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일종의 표현방식을 뿐이고 실지 내용은 백억 세계, 혹은 백억 일월인 것입니다. 또 이 백억 세계, 백억 일월을 한 불찰(佛刹)이라고 하고 이런 불찰이 미진수(微盡數)로 많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큰 크기입니다. 이런 크기는 혜안이 열리지 않고는 누구도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 망원경을 통하여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우주라는 것 밖에도 무한한 우주 집단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단순히 별 하나뿐인 단일체가 아니라 수천, 수만 개의 별이 모인 집단 우주가 무한히 많은 숫자로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사진에도 나타나고 신문에도 보도되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무한한 우주집단이 대략 40억 개 내지 50억 개쯤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볼 때 부처님이 말씀하신 백억 세계라는 것이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님을 과학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철은 부처님의 혜안에 두손을 모았다.

‘광대무변한 공간에 무한히 흩어져 있는 대성운들을 확인한 금일에서야 비로소 불교의 삼천대천 백억 세계설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으니, 석가모니는 무슨 능력의 소유자이길래 이러한 불가사의한 통찰력을 가졌는지 참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성전암 노트)

성철은 전생과 영혼, 그리고 윤회가 있음을 설파했다. 아이임에도 지난 생을 정확히 기억하고 이를 얘기하는 전생기억(前生記憶), 몸을 바꾸어 다시 살아나는 차시환생(借屍還生), 최면술 등을 이용하여 전생을 연구하는 연령역행(年齡逆行), 전생을 꿰뚫어 전생과 금생의 인과를 아는 전생투시(前生透視) 등 사례를 모아 제시했다. 정신과학 등을 동원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적시하여 인간에게는 부처님의 말씀대로 전생과 영혼, 윤회가 있음을 입증해 보였다. 성철은 전생기억에 대해서 이렇게 설했다.

“흔히 천재니, 신동이니, 생이지지(生而知之)니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태어난 뒤로 한 번도 글을 배운 적이 없는데 글자를 다 아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생이지지라고 합니다. 곧 나면서부터 다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생이지지는 바로 전생기억에 의한 것입니다. 전생에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금생에로 그대로 가지고 넘어온 것입니다.”

성철은 또 처음 가보는 것인데 낯이 설지 않고, 처음 만난 사람인데도 친근감이 가는 경우는 전생의 기억이 희미하게 되살아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생은 분명 있었다. ‘법화경’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전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받는 그것이다. 내생 일을 알고자 하느냐? 금생에 하는 그것이다. 욕지전생사 금생수자시(欲知前生事 今生受者是) 욕지내생사 금생작자시(欲知來生事 今生作者是)’

최근 우주의 중력파가 검출됐다. 13억 년 전에 일어난 두 개의 블랙홀이 충돌하면서 발생한 파동을 지구인들이 잡아냈다. 중력파는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면서 발생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시공간을 일그러뜨리는 중력파는 불교에서 말하는 찰라와 겁을 어떻게 변형시킬 것인가. 속된 호기심 같지만 도(道)를 이루면 시공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인가. 성철이 인용한 4차원의 세계, 즉 시간과 공간이 융합하는 세계는 과연 도래할 것인가.

성철은 과학은 발달을 거듭할수록 불교 쪽으로 오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이미 중도와 연기사상은 의심할 수 없는 진리로 과학 속에서, 아니 그 위에서 영원불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설령 원자탄이 천 개, 만개의 우주를 다 부순다하더라도 불교의 중도사상, 연기사상의 원리는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성철이 중력파를 건져내는 우리 시대에 있었다면 또 어떤 설법을 했을 것인가. 성철의 ‘과학적인 법문’은 이전에 없던 것이었다. 결국 과학이 불교였다. 아니 불교 속으로 과학이 들어왔다. 성철은 반세기 전에 이미 무변광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있었다. 석가모니가 발견 또는 발명한 우주선에 올라 삼천대천세계를 유영(遊泳)하고 있었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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