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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선사 두 보살의 정체

기자명 주수완

단석산 신선사 명문 속 두 보살은 미륵불의 협시보살일까?

▲ 경주 단석산 신선사 전경. 절벽이 바위처럼 둘러서서 석굴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단석산은 경주시 건천읍 송선리에 위치하며 경주 중심지에서 보자면 서남쪽에 위치한다. 흔히 경주의 오악이라고 하면 북쪽은 소금강산, 동쪽은 토함산, 남쪽은 남산, 서쪽은 가까이로는 선도산, 멀리로는 이 단석산을 가리킨다.

명문에 ‘미륵석상 1구 두 보살’
미륵불과 협시보살 개념 조성
지장·관음보살이 일반적 시각

명문 속 ‘두 보살’ 놓고 해석 분분
절벽에 새긴 4구 중  둘이란 견해
절벽 하단 새겨진 두 공양자 지칭
대불 주변의 마애존상을 보살로
보는 해석까지 다양한 주장 제기

단석, 즉 “돌을 자르다”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부에 반으로 갈라진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신라 장군 김유신이 신검(神劍)으로 검술을 연마하며 자른 것이라 하는데서 유래한 것이다. 또 그 아래에는 김유신이 이 신검과 함께 천지신명으로부터 삼국을 통일할 비법이 담긴 책을 받았다고 하는 석굴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신선사이다. 김유신뿐 아니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했다고 전하는데, 실제 가보면 왜 그런 이야기가 전하는지 이해가 되는 신비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설화 속에 등장하는 석굴은 현재의 모습으로 보면 커다란 바위들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서서 방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거대한 바위틈을 지나 그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마치 석굴처럼 느껴진다.

석굴 절벽 면에는 다양한 불교 존상들이 새겨져 있다. 안쪽인 북쪽 벽에는 높이가 7m에 달하는 불입상이 새겨져 있고, 그 옆 절벽에는 불-보살-불-보살이 나란히 새겨져 있는데, 가장 오른쪽 보살이 반가사유상인 점이 특이하다. 또한 각 존상들이 각자의 왼쪽 옆에 서있는 존상들을 향해 마치 안내를 하는 듯한 손 모양을 하고 있어 주목되는데 이러한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표현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 불상들은 모두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편단우견식 착의법을 하고 있어 특별한데, 이러한 착의법의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에는 많이 등장하지만, 삼국시대 불상으로서는 매우 드물고 특히 통일신라시대의 편단우견 불상이 대부분 좌상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입상으로 표현되고 있어서 이처럼 입상이면서 편단우견인 불상의 기원이 어디인지는 아직까지 의문에 쌓여있다. 이러한 옷차림의 불상이 강조되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은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인도의 남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아마라바티 양식 불상이 이와 유사하므로 이러한 양식이 바닷길을 따라 동남아시아를 거쳐 중국 남부지역과 산동성 지역, 그리고 널리 신라에까지 소개된 것이 아닐까 추정하고 있는 정도이다. 경주 황룡사에 봉안되었던 장육상도 설화에 의하면 바닷길을 통해 전해진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어서, 이 역시 신라의 해상 교역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나란한 네 존상 아래로는 또 한 구의 작은 편단우견 불입상과 함께 공양하는 두 사람이 얕은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신라시대 사람의 모습을 새긴 아마도 가장 생생하고 정교한 조각일 것이다. 고깔모자처럼 생긴 높은 모자를 쓰고, 끝이 뾰족하게 위로 솟은 신발을 신었으며, 통이 큰 바지에 비해 어깨는 딱 맞게 재단된 듯한 옷은 당시 신라인의 패션을 증언하고 있다. 앞에 선 인물은 손에 향로로 보이는 것을 들고, 그 뒤의 인물은 나뭇가지를 들고 있는 모습인데 마치 종려나무 가지처럼 보이는 것이 왠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어 맞이했다는 이야기가 연상된다. 흔히 불교에서의 꽃 공양은 연꽃으로 묘사된 경우가 많은데, 왜 여기서는 이런 특이한 식물을 들고 있는 것일까?

▲ 신선사의 본존인 마애대불. 높이 7m. 명문에 의해 미륵불임을 알 수 있다.

7m의 대형 불입상 왼편과 맞은편에는 높이 5m가 넘는 두 구의 마애조상이 보인다. 맞은편 바위면에는 마침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그 중에 “3장 높이의 미륵석상1구와 두 보살(彌勒石像一區高三丈菩薩二區)을 만든다”는 내용이 있어서 마애불입상과 주변의 두 부조상이 원래 미륵불과 그 협시보살의 개념으로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다. 명문에는 분명이 ‘두 보살’이라고 했는데, 눈으로 보기에 마애대불 주변의 대형 마애부조상은 모두 승려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거에는 보살 중에서 지장보살이 승려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우선 미륵대불 맞은편의 한 구는 지장보살로 보고, 다른 한 구는 손에 정병을 들고 있어 관음보살로 추정해왔다.

승려상 중 한 구를 지장보살로 보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러나 손에 정병을 들었다는 것만으로 분명하게 승려상으로 보이는 존상을 관음보살로 보는 것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그럼에도 명문에 분명히 “보살”이라고 되어 있으니 다른 선택이 없는 셈이었다.

▲ 미륵대불 옆에 있는 네 구의 불·보살상. 마치 가장 오른쪽의 반가상으로 안내하는 듯한 자세로 표현된 것이 특이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몇 가지 다른 해석을 시도해볼 수 있다. 명문에서 말하는 “두 보살”은 미륵대불 옆에 있는 두 마애존상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옆 절벽에 새겨진 네 구의 불·보살상 중의 반가상을 포함한 두 보살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하나다. 실제 신선사의 전체 존상 중에서 보살형으로 지칭할 수 있는 존상은 보살입상 1구와 반가상 1구뿐이므로 두 보살이 이들을 지칭했을 것이라는 설명도 문맥상으로는 납득이 된다. 하지만, 그 외에 다른 불상도 있는데, 이들 불상 틈에 있는 보살 2구만 특별히 지칭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 절벽 하단의 두 공양상. 7세기 신라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명문에 보이는 “두 보살”은 이들을 지칭한 것일까?

또 다른 해석은 절벽 하단에 새겨진 두 공양자를 보살로 보는 것이다. 흔히 절에서 신도들을 보살로 부르는 것과 같다. 아마도 이 두 공양자가 실제 신선사에 불상들을 조성하는데 시주한 발원자들이어서 그들을 새겼다는 것을 강조한 것일 수 있다. 그렇다면 명문 중에 ‘보살계제자 잠주(岑珠)’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잠주가 어쩌면 신선사 공양자상의 실제 모델일지도 모른다. 이 해석이 첫 번째 해석보다 더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문맥상 드러나는 “미륵과 두 보살”의 이미지는 미륵의 협시보살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만약 공양자를 새긴 것을 강조하고 싶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명문 속에서 표현하지 않았을까.

▲ 미륵대불 주변의 두 승려상. 그럼에도 명문 속의 “두 보살”이 이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각각 관음·지장보살로 해석되어 왔으나 근래 새로운 해석들이 시도되고 있다.

그 외에 명문에서는 보살을 새겼다고 했지만, 실제는 무관하게 승려상을 새겼다는 설명도 있을 수 있는데, 명문을 쓴 사람과 실제 신선사에 조각상을 새긴 사람은 다른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에 불상을 새기는 공정에서 어떤 변경이나 착오가 있었을 수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학술적으로 논하기는 어렵다.

신선사 불상군 중에서 명문 속의 보살상을 찾으려는 시도와 달리 본존 미륵대불 주변의 두 대형 마애존상을 보살로 보려는 해석도 있다. 첫 번째는 이들 승려들이 가섭과 아난이라는 해석이다. 본존이 미륵불이라면 미륵이 이 세상에 하생할 때 석가모니의 부촉을 받아 영접할 가섭이 함께 묘사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그리고 가섭이 있으니 다른 쪽에 아난이 함께 묘사된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그리고 이들 아라한인 가섭과 아난을 대승불교도들이 불·보살·아라한의 3성 중 두 번째인 보살로 승화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륵과 가섭이 함께 표현되는 것은 도상적으로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렇다고 미륵불과 가섭·아난이 삼존불을 이루는 경우는 흔하지 않고, 또 가능하다 하더라도 가섭과 아난이 굳이 보살로 불리는 이유는 다소 납득하기 어렵다. 다른 그 어디에서도 가섭과 아난을 ‘가섭보살’이나 ‘아난보살’로 지칭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해석은 이들 두 승려상을 아상가(무착)와 바수반두(세친)로 보는 것이다. 아상가와 바수반두는 대승불교 중에서 유식불교를 정립한 인도의 형제 승려였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설화에 의하면 이들은 도솔천의 미륵보살로부터 이 유식불교를 배웠다고 한다. 때문에 유식불교, 미륵, 아상가와 바수반두는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다. 물론 유식불교를 전수한 것은 미륵불이 아니라 미륵보살이지만, 일본 고후쿠지(興福寺) 북원당(北円堂) 안에는 미륵불과 그 협시로 아상가·바수반두 상을 모신 예가 보인다. 나아가 이들 아상가·반수반두는 동아시아에서 ‘무착보살’ ‘세친보살’과 같이 모두 보살로 지칭되었음도 잘 알려져 있다. 이들은 중관학파의 창시자인 나가르주나가 ‘용수보살’로 불리는 것처럼 대승불교를 확립한 아라한으로서 특별히 ‘보살’로 지칭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미륵대불과 무착·세친보살이라는 도상적 구성은 이론적으로 큰 무리가 없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나라 미술에서 무착·세친보살상이 확인된 다른 예가 없기 때문에 과연 실제로 그랬을까는 더 검토할 여지가 남아있다.

이렇듯 단석산 신선사는 수많은 미스터리를 안고 있다. 불과 보살이 번갈아 배치된 네 구의 존상은 왜 왼편의 존상으로 관람자들을 안내하고 있는 것일까? 왜 여기서는 불상들이 편단우견으로 표현되었을까? 명문 속의 “두 보살”은 도대체 어떤 존상을 지칭하는 것일까? 지금은 궁금한 이러한 문제들이 당시에는 매우 명료하고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이었을 수 있다. 이렇듯 각각의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각의 해석들이 모여서 전체를 일관되게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정답에 한걸음 다가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주수완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강사 indijoo@hanmail.net
 

[1332호 / 2016년 2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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