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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국수이야기

기자명 김유신

사찰음식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국수(掬水)다. 국수는 ‘승소(僧笑)’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데 맛에 탐착하지 않고 소식에 익숙한 스님들도 국수는 과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의 별미인지라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고 해서 이와 같은 별명을 갖게 된 모양이다. 국수는 떡과 두부와 함께 ‘삼소(三笑)’라고도 하였다. 혹은 떡 대신 만두를 포함하기도 한다. 국수란 말도 그대로 풀이하면 물속에 담겨진 면을 움켜쥔다는 뜻이니 국수를 만드는 모양과 먹는 모양에서 그 이름이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고 한편으로는 만드는 법도 까다로운 것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스님들도 미소짓는다 해서
‘승소’라는 별칭으로 불려
불교국가 고려, 종묘제례 때
소 대신 국수 올려 살생방지

중국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이며 백과사전인 ‘제민요술’에 국수를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손을 이용해 밀가루 반죽을 잡아 늘였다고 한다. 이 때 반죽을 나무젓가락 굵기가 될 때까지 늘였다가 이를 한자정도 길이로 잘라서 수증기를 쐬어가며 서서히 늘려서 얇고 가느다랗게 국수를 만들었는데 물에서 당겨 늘린 음식이라는 의미로 ‘수인병(水引餠)’이라고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수의 긴 가락모양이 장수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대표적인 생일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고려 때 대문장가였던 이규보가 아들을 얻은 기쁨을 표현한 시에 보면 “작이탕병객(作爾湯餠客)”란 구절이 있는데 여기서 언급한 탕병이 바로 국수이다. 옛날에는 아기가 출생한 지 3일째 되는 날 친척과 친지들이 모여 국수를 먹으며 축하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세삼(洗三)’이라고 하였다. 또한 혼인식을 할 때도 국수를 올렸고 조상을 기리는 제사에도 국수가 빠지지 않았음을 볼 때 음식 이상의 의미를 두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고려사’에 사찰에서 국수를 만들어 판매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찰에서도 국수는 특별한 존재였던 듯하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에서 종묘에 제사를 드릴 때 소 대신 국수로 제사를 올렸는데 이를 ‘면생(麵牲)’이라고 하였다. 제물로 바치는 소를 ‘희생(犧牲)’이라고 하는데 이 희생을 대신한 국수라는 의미이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이기에 국가의례에서도 불살생의 가르침을 온전히 실천하였던 것이다. 불교에 심취했던 중국의 양무제도 소를 대신하여 국수로 제를 지낸 사례가 있다.

우리 민족이 국수를 꽤나 즐겼던 것은 송나라 사신 서긍의 ‘고려도경’에도 잘 나와 있는데 사자(使者)를 대접하는 음식에도 국수가 들어가 있고 양반가에서 즐겼다고도 하였다. 오늘날 국수는 주로 밀가루로 만드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비교적 근세의 일로 예전에는 주로 메밀로 국수를 해먹었다. 이유는 우리나라는 밀 재배가 용이치 않아 생산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려도경’에도 당시 중국에서 밀가루 수입을 많이 해서 나라에서 금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국수는 밀보다는 메밀로 만든 것이 주종이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기행과 민중구제로 유명한 진묵대사의 행적을 적은 ‘진묵대사유적고(震黙大師遺蹟考)’에 보면 대사를 짝사랑하던 여인이 죽어 기춘(奇春)이라는 시동(侍童)으로 환생하였는데 대사가 기춘을 귀여워하자 대중들이 시기하였다고 한다. 이에 대중들을 깨우치게 하고자 대사가 바늘을 국수로 화하게 해서 먹었던 일화가 전하고 있다. 여염집에서는 혼례와 생일을 기념하는 잔치음식이지만 불가에서는 불살생의 의미를 전하는 음식이자 우매함을 일깨우는 지혜의 음식으로 전해지고 있는 음식이 국수다.

김유신 한국불교문화사업단 발우공양 총괄부장 yskemaro@templestay.com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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