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일본 아스카 대불 진위 논란
5. 일본 아스카 대불 진위 논란
  • 주수완
  • 승인 2016.03.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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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후 복원된 작품일까, 아니면 신이의 증거일까?

▲ 일본 아스카의 안고인에 봉안된 아스카 대불. 원작은 606년이지만, 1196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복원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일본 아스카의 안고인(安居院)은 ‘아스카데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이 절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서 원래는 호코지(法興寺)라는 이름으로 596년에 창건되었다. 이 절을 세운 사람은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라는 당시의 대신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쇼토쿠 태자(聖德太子)를 도와 친백제 정책 및 불교 중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실제 호코지의 창건에도 백제의 기술이 깊숙이 관여하였음을 ‘일본서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이에 의하면 588년 백제의 위덕왕은 불사리(佛舍利)와 함께 혜총(慧聰)을 비롯한 여섯 명의 승려와 사공(寺工) 태량미태(太良未太)와 문가고자(文賈古子), 노반박사(鑪盤博士)인 장덕백매순(將德白昧淳), 와박사(瓦博士)인 마나문노(麻奈文奴), 양귀문(陽貴文), 능귀문(㥄貴文), 석마제미(昔麻帝彌) 등 네 사람, 그리고 화공(畵工) 백가를 파견하여 일본 최초의 사찰 건립을 도왔다. 사찰이 완공된 뒤 불탑에 사리를 봉안하는 의식에서는 참석자들이 모두 백제의 옷을 입고 모였다고 하니, 당시 일본에서는 백제의 옷이 지금으로 말하자면 턱시도와 같은 최고의 격식을 갖춘 복장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596년 창건한 일본 최초 사찰
호코지 대불 605∼606년 조성
백제의 장인 사마지리가 제작

1196년 화재 발생해 사찰 전소
현재 대불의 진위 놓고 논란도

대부분 후대 복원 추정됐으나
최근 조사서 사실상 원형 결론
이제 학계도 아스카대불 품어야


절이 완공된 뒤에는 백제의 승려 혜총(慧聰)과 고구려의 승려 혜자(慧慈)가 주석하며 불교를 가르쳤다고 하는데, 어떤 연유로 고구려의 승려가 이 백제 분위기의 호코지에 관여하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혜자는 595년에 일본에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으로 있었고, 또 혜총과 함께 삼론학을 가르쳤다고 하므로, 쇼토쿠 태자 및 삼론종이라는 맥락에서 서로 통하는 바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렇듯 삼국시대에는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불교계의 승려들은 서로 교류하며 긴장을 완화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며, 나아가 일본과 같은 제3국에서는 정치적 문제를 떠나 상호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해볼 수 있다.

▲ 아스카 대불의 복원상상도. 원래의 부분으로 간주되는 얼굴과 손, 발 일부만 진하게 표현되어 있다. 일광삼존불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하간 현재는 아스카데라로 불리는 이 호코지에 가보면 나이 지긋한 자원봉사자 분이 바로 이 아스카데라가 일본 불교사찰의 시초임을 설명하면서 한반도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임을 은근히 자랑스럽게 설명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고대로부터 이어져온 우리와 일본의 문화교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호코지는 1196년 벼락을 맞아 모두 불타버렸다. 그리고 아스카 시대의 것으로서 현재 남아있는 것은 추고천황의 명에 의해 605년에 시작하여 606년 석가탄신일에 맞춰 제작된 ‘아스카 대불(飛鳥大佛)’이다. 청동좌상인 이 대불은 높이 2.7m, 무게 15톤 가량의 장육불상인데, 기록에 의하면 이 불상은 구라츠쿠리노도리(鞍作鳥) 불사(佛師) 혹은 사마지리(司馬止利)로도 불리는 백제 출신의 장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결국 우리나라에도 남아있지 않은 삼국시대의 대형 청동불상 사례가 일본에 남아있는 셈이다. 구라츠쿠리노도리는 다음에 살펴볼 호류지 금당의 석가삼존상을 만든 장인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장인들의 이름이 사서에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지만, 일본에서는 장인들의 이름까지 꼼꼼히 기록하고 있으니, 일본 문화가 장인들을 존중하는 전통을 지닌 것이기도 하고 또한 백제의 장인들에 대한 보다 각별한 배려일 수도 있겠다.

불상을 만들 때의 일화도 전한다. 불상이 완성되자 그 다음으로는 금당 안으로 옮기는 것이 문제가 되었는데, 불상이 너무 커서 금당의 일부를 허물지 않고는 들여오기 어려웠다. 그러나 구라츠쿠리노도리가 묘안을 내어 금당을 허물지 않고도 안으로 옮겨와 봉안했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보면 대형불상의 조성은 단지 불상의 주조 문제만이 아니라 그것을 옮기고 세우고, 자리를 잡는 문제 등을 전반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숙달된 장인만이 할 수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호코지 가람터에 대한 전체적인 사역을 조사한 결과, 호코지는 나라 호류지(法隆寺)의 세 배 정도 되는 거대한 규모였고, 중심에는 세 채의 건물과 하나의 탑이 세워져 있었음이 밝혀졌는데, 탑을 중심으로 마치 한자의 ‘품(品)’자처럼 건물이 둘러선 형태였음을 알 수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문헌상에 나타나는 호코지는 백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이 분명한데도, 이러한 ‘품’자형 건축배치는 고구려 사찰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비록 백제 승려 혜총과 고구려승 혜자가 함께 주석했다고는 하지만, 창건 자체에는 백제 장인들이 관여했음에도 어쩐 일로 고구려식 사찰배치가 나타난 것일까?

뿐만 아니라, 백제계인 사마지리가 제작했다는 현존하는 청동불좌상도 양식적으로 보면 고구려 불상인 연가7년명 금동불입상과 많이 닮아 있다. 마치 장풍을 불러일으키는 듯 강렬하게 앞으로 내민 두 손, 약간 각이 지고 날카로운 듯 하면서도 고요한 위엄이 가득한 얼굴, 그리고 두껍게 흘러내리면서 층단을 이루는 옷자락의 표현 등은 마치 연가7년명 금동불입상을 그대로 확대해놓은 듯한 느낌을 준다. 기록에 의하면 이 대불을 조성할 때 고구려에서는 황금 300냥을 보내 이를 축원하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영향을 주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혹 사원의 건립과 불상의 주조와 같은 하드웨어적인 측면은 백제의 기술자들이 담당하고, 사원의 마스터플랜과 불상의 도상이나 양식은 고구려 장인들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추측도 해본다. 여하간 고구려와 백제의 기술·사상이 융합된 일본 최초의 사찰인 호코지는 우리 불교미술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연구대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삼국시대 불상이 대부분 소형의 금동불이나 마애불뿐이어서 실제 금당에 안치된 주존불이 어떤 양상이었을지 전무한 상황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아스카 대불은 삼국시대 불상 양식 및 주조기법에 있어 중요한 연구대상일 수밖에 없다.

▲ 아스카데라의 가람배치 추정도. 탑을 중심으로 법당이 품(品)자형으로 둘러서는 것은 고구려식 가람배치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여기에는 하나의 걸림돌이 있었으니 바로 1196년 화재이다. 바로 이 화재로 인해 호코지가 전소되면서 아스카 대불도 사실상 이때 모두 녹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현재 보고 있는 대불은 오직 얼굴과 손 등의 일부만 원래의 것이고, 나머지는 후대에 복원된 것이므로 현재의 대불이 곧 삼국시대 양식을 반영하지는 않는다고 간주되어 왔다. 따라서 단지 참고만 될 뿐 깊이 있는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후대에 복원되었다고는 하지만 연가7년명 불상 등 삼국시대의 불상과 많이 닮아있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웠고, 과연 후대의 복원품이 이토록 원래의 고풍스런 양식을 잘 반영할 수 있었을까 의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의문이나 주장은 화재로 전소되었다는 기록 앞에서는 더 이상 어떤 생각의 전개나 의견의 개진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전, 한국인 연구원도 포함된 일본 와세다대학교의 복원기술연구팀이 아스카 대불에 대한 과학적 조사를 실시하였는데 뜻밖의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이들의 계획은 불상의 금속표면을 조사하여 화재시 불을 맞은 흔적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을 찾아내 어디서 어디까지가 원작인지 밝혀내는 것이었다. 불을 맞은 부분은 구리가 산화제이동(CuO)으로 변화하므로 화재에서 살아남은 부분은 산화제이동 성분이 검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대하기는 얼굴 및 손 등 기존에 알려진 원형 부분에서만 검출될 줄 알았던 것이 뜻밖에도 대부분의 불상 범위에서 검출이 된 것이다. 이것은 아스카 대불의 대부분이 화재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놀라운 결과는 결국 아스카 대불이 화재 후 복원된 것이 아니라 사실상 원형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연 아스카 대불은 1196년의 화재에서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전설적인 불교설화 속에는 불상이 화재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은 이야기를 다룬 사례가 종종 있다. 불길을 피해 스스로 걸어 나왔다든가, 아니면 화재가 끝나고 보니 불상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든가 하는 류의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아스카 대불은 그 화재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이 확대되어 그러한 기적의 신화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만약 이런 측정결과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이 거대한 불상이 화재에서 살아남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의 말을 누가 받아들였을까? 물론 이와 같은 측정결과에 대한 이후의 추이를 봐야 하겠지만, 이제는 서서히 우리 학계에서 본격적으로 이 아스카 대불을 품어야할 때가 온 것 같다.

[1334호 / 2016년 3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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