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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한국바둑이 잃은 것

이세돌과 알파고 바둑대결을
기계 승리로 보는 건 ‘호들갑’
바둑은 자기 관하는 철학게임

세계 최고의 바둑기사라는 이세돌 9단. 그가 구글 딥마인드의 바둑프로그램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잇따라 패배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보다 많고 고도의 집중력과 총체적인 판단력이 필요한 까닭에 기계가 범접할 수 없는 영역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이 무참히 지면서 언론들이 온통 이 얘기로 떠들썩하다.

일간지는 ‘인공지능, 인간을 이기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에 인간이 졌다’ ‘2살 인공지능, 5000년 인간 바둑을 넘다’ 등 이세돌 9단의 패배를 1면 톱기사로 전했다. 한 카이스트 교수는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닐 암스트롱이 달을 밟은 날을 기억하듯이 오늘을 기계가 인간을 처음 이긴 날로 기억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인공지능 발달로 사람들의 일자리가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현실적인 걱정에서부터 영화 터미네이터에서처럼 인공지능이 사람을 살해하고 지배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다수 언론의 보도처럼 기계가 바둑을 이긴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과학기술의 발달과 인공지능의 무한한 가능성 앞에 인간으로서 왜소함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이번 대결이 인간과 기계의 지적 우열로까지 연결하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

인간의 특징을 설명하는 용어 중에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있듯 도구를 제작하고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이다. 돌도끼, 활, 총, 자동차, 비행기, 원자력, 컴퓨터, 휴대전화 등은 모두 도구의 영역에 포함된다. 포클레인이 사람보다 삽질 능력이 뛰어나다고, 혹은 컴퓨터가 인간의 계산 능력보다 월등하다고 하여 인간이 기계에 패배했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을 인간과 기계의 능력대결로 몰고 가고, 끝내 인간이 기계에 졌다고 단정 짓는 것이 지나친 호들갑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대국으로 바둑의 즐거움과 철학이 퇴색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바둑은 중국의 요임금과 순임금이 자식을 가르치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할 정도로 유서가 깊다. 그 오랜 역사를 거치며 사람들은 바둑에서 위로를 받았고 삶의 가치를 발견했다. 바둑과 관련된 고사성어들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욕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청심과욕’, 다 죽을 것 같은 상황이라도 끈기 있게 밀고 나가면 되살릴 수 있다는 ‘기사회생’, 상대의 작은 말을 잡으려다 자기의 큰 말이 죽인다는 ‘소탐대실’, 상대를 얕보면 당한다는 ‘경적필패’, 겁이 많으면 공을 세울 수 없다는 ‘겁자무공’, 자신의 작은 말로 상대의 큰 말을 잡는다는 ‘이소역대’를 비롯해 근래 드라마로 방영됐던 ‘미생’도 아직 살아있지 못하다는 바둑 용어와 관계가 깊다. 당나라 때의 바둑 고수 왕적신이 바둑의 교훈을 기술한 ‘바둑십결’은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인생의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 이재형 국장
요즘처럼 바둑을 결과와 승패의 논리로만 따진다면 슬픈 일이다. 바둑에는 순간순간 좌절과 희망, 충동과 번민, 절제와 평정이 담겨 있다. 순간의 선택과 통찰에 의해 전체 판세가 결정된다. 바둑은 마치 선불교처럼 ‘지금 여기’에 충실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세기의 바둑대결에서 우리가 얻은 것이 인공지능에 대한 무한한 기대와 우려라면 잃은 것은 바둑을 두는 즐거움과 오랜 철학이 아닐까.

이재형 mitra@beopbo.com
 

[1335호 / 2016년 3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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