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 원공 스님과 송광사 매실장아찌

구산 큰스님에서 하판 스님까지 평등하게 발우공양 전통

▲ 일러스트=강병호 작가

조계총림 송광사는 한국불교의 승맥(僧脈)을 잇는 승보종찰(僧寶宗刹)이다.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뒤를 이어 15분의 국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가람이다. 송광사는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의 수행정신을 간직한 ‘목우가풍(木牛家風)’으로도 유명하다. 목우가풍이란 목동이 소를 찾듯이 불성(佛性)을 찾기 위해 쉼없이 정진하는 수행정신을 의미한다. 이러한 가풍으로 송광사는 여타 사찰과 달리 ‘없는 것’이 세 가지 있다. 무거운 석탑과 석등이 없고, 글자로 인한 섣부른 알음알이가 생길까봐 주련에 글자가 없다. 또 수행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풍경조차 달지 않는다.

송광사 800여명 대중 상주
공양간은 항상 전쟁터 같아

찬은 쑥이나 냉이무침 등
계절 따른 채소 공양 올려

가을 시래기국 별미 중 별미
다양한 장아찌, 송광사 특징

순천 일대는 매실 농가 많아
매실장아찌, 장아찌 중 으뜸

설 되면 강정·유과 최고간식
절 공양비법은 적게 먹는 것

치열한 수행과 정진 가풍으로 송광사는 근현대에도 효봉, 취봉, 구산, 일각, 법정 스님과 같이 눈 푸른 선사들의 출현이 끊이지 않았다. 이분들이 송광사에 주석하던 당시는 오늘과 같은 불자교육이나 수행프로그램이 없었다. 이러한 문제점을 직시한 구산 스님은 1971년 신도들에게 제대로 된 불교교육을 시키고자 ‘수련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무소유’로 유명한 법정 스님이 수련원장을 맡아 재가불자들을 위한 교육·수행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원공 스님이 취봉 스님을 은사로 송광사에 출가한 때가 바로 이 무렵이다. 스님은 출가하자마자 공양간에서 많은 양의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당시 송광사에는 선방스님 70~80명을 비롯해 100여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었다. 여기에 불자들을 대상으로 한 수련대회가 열리면 600여명의 수련생들이 송광사로 몰려들었다. 따라서 공양간은 그야말로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원공 스님은 전쟁터와 같은 공양간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지만 ‘동체대비(同體大悲)와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가르침을 몸과 마음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었다고 술회한다.

“다른 사람을 나와 같이 여기는 마음이 아니라면 하루 세 차례 700~800인분의 공양을 준비한다는 건 실로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 동체대비, 자타불이의 가르침을 배우는 기회로 삼았기에 오히려 송광사로 사람들이 몰려들수록 힘이 났고, 이 모든 것이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는 불사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는 모든 대중이 엄격하게 발우공양을 했다. 공양주와 행자들이 청수와 밥, 국, 반찬 3~4가지를 놓으면 큰 어른인 구산 스님부터 하판 스님들까지 여법하고 평등하게 공양을 했다. 발우공양은 그자체로 신심과 구도심을 일깨우는 수행이었다. 스님들은 불법승 삼보와 시주의 은혜, 지옥·아귀·축생 삼도(三途) 중생의 고통까지 생각하며 자비의 마음으로 경건하게 공양을 받았다.

송광사는 농지가 적지 않았다. 옛날부터 손이 귀하거나 소원이 있을 때 농지를 절에 시주하고 제사를 맡기는 풍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아침, 점심, 저녁 세끼 모두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찬은 특별할 것 없이 봄에는 쑥이나 냉이무침, 여름에는 호박, 가지나물, 가을에는 토란국과 무지짐, 겨울에는 김치볶음이 주재료였다. 특히 ‘시래깃국에 살찐다’는 말이 있을 만큼 가을 시래깃국은 별미 중에 별미였다.
송광사는 유독 장아찌를 많이 만들어 먹었다. 봄에는 매실 장아찌, 여름에는 깻잎 장아찌, 가을엔 감 장아찌를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송광사는 매실 장아찌를 으뜸으로 쳤다. 송광사가 위치한 순천 일대는 매실농사를 짓는 농가가 많은 탓에 실하고 좋은 매실을 구하기 쉬웠다. 매실 장아찌는 잘 씻은 매실을 소금으로만 저렸다가 먹을 때마다 조금씩 꺼내 고추장이나 된장 양념에 무쳐먹는다. 감 장아찌는 감을 소금물에 저려두었다가 건져내 고추장에 버무리면 된다. 간장이나 된장 속에 박아두었다가 꺼내 먹는 깻잎 장아찌는 입맛이 없을 때 최고다.

설이 되면 직접 만들었던 들깨강정과 유과는 최고의 간식이었다. 들깨강정은 물과 설탕, 조청, 소금을 끓여 조린 후 볶은 들깨와 검은콩을 넣어 재빨리 볶아낸다. 유과는 점성이 높은 찹쌀을 주재료로 사용하는데 맛있는 유과를 만들기 위해선 무엇보다 찹쌀을 삭히는 과정이 중요하다. 찹쌀을 미리 1~2주 물에 담가두어 골마지(발효성 식품 겉 표면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흰색막)가 제대로 끼도록 삭힌다. 그렇게 삭힌 찹쌀을 잘 씻은 후 곱게 빻아 가루를 내고, 반죽해 넓게 밀어 적당한 크기로 썰어준다. 반죽이 꾸둑꾸둑해질 때까지 잘 말렸다가 쓸 때마다 노릇하게 두 번 튀겨낸다. 튀긴 반대기(음식을 둥글거나 네모로 넓게 펼친 조각)에 꿀이나 조청을 발라 그 위에 쌀 튀각가루를 묻히면 맛있는 유과가 된다.

삭발일에는 떡메로 쳐서 만든 찰떡과 귀한 김 공양을 받았다. 여름에는 특별식으로 콩을 맷돌에 갈아 콩국수를 해먹었고, 종종 호박과 표고버섯을 썰어 넣은 수제비도 만들었다. 또 선방 다각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덖어서 만든 녹차를 마실 수 있었다. 원공 스님은 “역사는 늘 취사선택의 순간”이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제대로 취할 때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수준 높은 삶을 영위·전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로부터 절집에선 기한발도심(飢寒發道心)이라, 춥고 배고파야 도심이 진실로 발현된다고 했습니다. 배부르고 등 따시면 몸이 게을러지고 정신이 맑지 못해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절 공양의 비법은 누가 더 적게 먹고, 더 맑은 정신을 유지하느냐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이러한 기한발도심 정신이야말로 어떤 형태로든 이어가야 할 공양의 참 의미이자, 불가의 중요한 정신문화라 생각합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

 
원공 스님은

송광사 취봉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구산 스님의 3년 결사에 동참했으며, 통도사 극락암에서 경봉 스님을 모시고 3년, 향곡 스님 밑에서 8년을 정진했다. 현재 정읍 정토사에서 주지로 주석하고 있다.

[1336호 / 2016년 3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