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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진정한 불공 참다운 가난

기자명 김택근

▲ 성철 스님과 평생을 한 두루마기. 성철 스님은 수행자에게 가난은 숙명이라고 강조했다. 백련불교문화재단 제공

““돈은 너희 돈으로 샀지만 먹기는 농부들 정성을 생각하고 먹어야지. 반도 안 먹고 버렸으니 기도하지 말고 싹 다 가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처박아놓은 수박을 다시 꺼내 먹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 신도들은 너나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박을 다시 집어 들고 먹어야 했다. 평생 소식을 했던 성철은 밥을 많이 먹는 행자들을 보면 혀를 찼다. “그렇게 먹고 배 안 터지나?”

깨친 사람은 세속을 벗어나 홀로 고고한 은사(隱士)도 아니요, 신통력을 지닌 도사도 아니었다. 도를 얻었으면 하화중생(下化衆生)해야 했으니 결국 사람들 속에서 중생을 사랑하고 제도해야 했다. 백련암의 성철은 말씀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남을 위해 살라고 일렀다.

“불교는 세상과 거꾸로 사는 것입니다. 세상은 전부 내가 중심이 되어 나를 위해 남을 해치려고 하는 것이지만, 불교는 나를 완전히 내버리고 남을 위해서만 사는 것입니다.”

승려들에게도 목탁 장사를 하지 말라고 했다. 목탁이란 본시 법을 전하는 것이 근본 생명이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바른 법을 전하여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그 목탁을 두드려 부처님 앞에서 명 빌고 복 비는 도구로 활용하면 바로 목탁 장사가 되는 것이었다. 성철은 이를 꾸짖었다.

“절에 사는 우리 승려들이 명복을 빌어주는 불공에서 벗어나 남을 도와주는 참 불공을 할 때, 그 때 비로소 우리 불교의 새싹이 트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성철은 불공은 남이 모르게 해야 한다고 했다. 성철은 제자와 신도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마산에 사는 한 신도가 추석을 맞아 가난한 사람을 돕기로 마음먹었다. 쌀을 트럭에 가득 싣고 가난한 집을 찾아가 나눠주고 숨어버렸다. 그러자 기자들이 ‘얼굴 없는 선행’이라며 추적에 나섰고, 결국 그 신도를 찾아내 대서특필했다. 성철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그 신도가 성철을 찾아오자 대뜸 쏘아붙였다.

“신문에 낼 자료를 장만했지?”
“아무리 숨어도 결국 들켜버렸습니다.”
“아무리 캐물어도 발목을 잡히지 말아야 불공이지, 남이 알면 불공은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성철은 진정한 불공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행하는 노인 이야기도 해줬다.

어느 마을에 부자 노인이 불공을 많이 했다. 그러자 이웃 청년이 와서 인사했다.

“재산 많은 것도 복인데 그토록 남을 도와주시니 그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자 노인이 발끈해서 꾸짖었다.

“이런 고얀 놈. 내가 언제 남을 도왔단 말인가. 남을 돕는 것은 귀 울림과 같은 것이야. 자기 귀 우는 소리를 어찌 남이 듣게 한다는 말인가. 그런 소릴 하려거든 다시는 오지 말게.”

실상 남 몰래 남을 돕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남을 도와도 도왔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아야 진정한 불공이었다. 다른 사람을 도왔다는 숭고함 같은 것이 마음속에 남아있다면 진정한 보살도를 행함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철은 곧잘 ‘자신을 속이지 말라[不欺自心]’고 일렀다.

성철은 또 가난을 강조했다. 누구든지 ‘도를 배우려면 마땅히 가난함부터 먼저 배우라[學道先須學貧]’라는 조사들의 가르침을 상기시켰다.

“중생이란 그 살림이 부자입니다. 8만 4천석이나 되는 온갖 번뇌가 창고마다 가득가득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고마다 가득 찬 번뇌를 다 쓰지 못하고 영원토록 생사윤회를 하며 해탈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참답게 도를 배우려면 8만 4천석이나 되는 번뇌의 곳집을 다 비워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할 때 참으로 가난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8만 4천석이나 되는 번뇌를 다 내버리고 나면 참으로 가난하고 가난한 사람이 되어서 텅텅 빈 창고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뜻은 실제로 진공(眞空)을 먼저 깨쳐야 한다는 말입니다. 아주 가난한 진공, 이것은 가난한 것도 없는 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도를 닦음에 있어서는 가난한 것부터 먼저 배우라는 것인데 그것은 번뇌망상을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철 ‘증도가 강설’)

재물에 대한 욕심 또한 번뇌망상에서 비롯되었다. 성철은 예전 스님들이 진정한 가난을 가르칠 때 인용했던 경구를 자주 얘기했다.

‘지난해에는 송곳 세울 땅도 없더니 금년에는 송곳마저도 없다(去年無錐地 今年錐也無).’

지난해에는 번뇌망상을 모두 버려서 송곳마저 들어설 수 없게 되었지만 가난을 의식하는 송곳이라는 물건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그 송곳마저 버려 ‘완전한 가난’을 완성했다는 것이다. 비우고 또 비워서 가난의 경계까지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밖으로는 모든 물질을, 안으로는 번뇌망상을 다 버려서 안팎이 함께 가난해질 때 비로소 성불을 이룰 수 있다고 일렀다.

“금은보화라는 패물을 지니고 있으면 재물에 대한 욕심이 늘 붙어 있어서 마음속의 탐심을 버릴 수 없게 됩니다. 내 마음 속의 탐심을 버리려면 바깥에 있는 물질적인 금은보화 같은 물건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당나라의 방거사(龐居士)는 자기의 그 많은 모든 재산을 배에 싣고 가서 동정호(洞庭湖)에 버리고는 대조리를 만들어서 장에 갖다 팔아다가 나날의 생계를 이어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밖으로는 모든 물질까지도 다 버리는 동시에 안으로는 번뇌망상을 다 버리게 되면 안팎이 함께 가난하게 됩니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가난뱅이가 된다면 모든 것이 공해서 거기에는 항사묘용이 현전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으니, 이것이 곧 견성이며 성불입니다. 그러므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안팎으로 가난한 것부터 먼저 배워야 합니다.” (‘증도가 강설’)

성철은 ‘증도가’ 구절을 인용하여 진정한 가난에 대해 설했다.

‘가난한즉 몸에 항상 누더기를 걸치고, 도를 얻은즉 마음에 무가보(無價寶)를 감추었도다(貧則身常披縷褐 道則心藏無價珍).’

안팎이 가난하니 몸에 누더기를 걸쳐도 마음속은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배를 지녔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난부터 배워야한다는 고불고조의 말씀을 철칙으로 삼아 공부하라고 일렀다.
성철은 일찍이 만공 스님에게서 들은 ‘가난’ 얘기도 자주 입에 올렸다. 만공이 처음 정혜사에 살 때는 먹을 것이 변변치 않았다. 모두 탁발로 연명했는데, 그래도 한 철 지나면 ‘한 소식’ 했다는 수좌들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에 신도가 생기고 좋은 절 짓고, 양식도 꽁보리밥 대신 쌀밥을 먹으니 공부 제대로 했다는 사람이 안 나오더라는 것이다. 물질이 풍요로우면 참수행 풍조가 사라져 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성철은 제자들에게 시주물 받기를 독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와 영화는 원수 보듯 경계하라고 일렀다.

“땀 흘리면서 먹고 살아야 한다. 남의 밥 먹고 내 일 하려는 썩은 정신으로는 만사불성(萬事不成)이다. 예로부터 차라리 뜨거운 쇠로 몸을 감을지언정 신심 있는 신도의 의복을 받지 말며, 뜨거운 쇳물을 마실지언정 신심인의 음식을 얻어먹지 말라고 경계했다. 이러한 결심 없이는 대도는 성취 못하니, 그러므로 잊지 말고 잊지 말자.”

출가자에게는 철저한 걸사(乞士)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걸사정신이란 무소유를 근본으로 일의일발(一衣一鉢), 즉 옷 한 벌에 밥그릇 하나에 의지하여 살라고 일렀다.

지금도 백련암 식구들이 기억하는 일화가 있다. 어느 해 하안거 백중을 맞아 장에서 수박을 50덩이 넘게 사왔다. 신도들과 일꾼들이 백련암까지 수박을 져 올렸다. 골짜기 시원한 물에 수박을 담가 두었다가 다음날 대중공양을 했다. 무더위 속에서 땀을 흘리며 아비라기도를 올렸던 대중들이 시원한 수박을 먹는 것은 비길 데 없는 즐거움이었다. 수박을 먹고 모두 기도에 들어간 지 30분이 되었을까. 성철의 불벼락이 떨어졌다.

“기도하는 사람 전부 마당에 모이라케라!”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사람들이 마당에 모였다. 노한 성철의 얼굴은 실로 무서웠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박 껍질에서 사단이 났다. 끝까지 먹지 않고 버려서 붉은 속살이 남아 있었다.

“돈은 너희 돈으로 샀지만 먹기는 농부들 정성을 생각하고 먹어야지. 반도 안 먹고 버렸으니 기도하지 말고 싹 다 가든지, 아니면 쓰레기통에 처박아놓은 수박을 다시 꺼내 먹든지 둘 중에 하나 선택하라.”

신도들은 너나없이 쓰레기통에 버려진 수박을 다시 집어 들고 먹어야 했다.

평생 소식을 했던 성철은 밥을 많이 먹는 행자들을 보면 혀를 찼다.

“그렇게 먹고 배 안 터지나?”

한창 먹을 나이, 먹는 걸로 꾸중을 들으니 참으로 서운했다. 그러나 그러면서 제자들은 또 다른 의미의 가난을 배워갔다. 백련암에는 소화제가 없었다. 많이 먹고 배탈이 나면 불벼락이 떨어졌다.

“산에서 뭘 처먹었으면 배탈이 나는가.”

성철은 깁고 또 기운 누더기를 입고 지냈다. 출가해서 옷 두벌로 육신을 감쌌을 뿐이었다. 성철은 이렇게 말했다.

“야반삼경에 다 떨어진 걸망 하나 지고, 달빛 수북한 논두렁길을 걷다가, 차가운 논두렁을 베개 삼아 베고 푸른 별빛을 바라다보면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 조금이라도 수행자의 모습에 가깝다.”

김택근 언론인·시인 wtk222@hanmail.net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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