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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염라(閻羅) 혹은 야마(Yama)

염라대왕은 중앙아시아 기원…인도·이란 거쳐 동아시아 전래

▲ 인도 오릿사 부바네슈와르 7세기초. 파라슈라메슈와라 사원의 벽면에 조각된 야마 조각. 몽둥이를 들고 있고 아래쪽에 물소가 보인다. 이 조각은 아마도 가장 초기에 제작된 야마 조각상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한국을 포함해 동아시아 사람들에게 익숙한 염라대왕은 오래전 인도 또는 이란의 땅에서 건너왔다. 또는 훨씬 오래전 그들에게 전해지기 전에 중앙아시아 어디쯤에서 기원했던 신이다. 이 신은 리그베다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조로아스터교의 아베스타 문헌에도 등장한다. 전자에서는 야마, 후자에서는 이마라고 부른다. 인도의 야마나 이란의 이마 등은 인도-유럽인들 공통의 신화로 묶이는데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북유럽의 이미르(Ymir) 역시 동일한 어원을 갖는다. 염라(閻羅)는 이 고대 인도-이란인들의 공동 신이던 야마(Yama) 혹은 이마(Yima)를 한문으로 음사한 이름이다. 때로는 염마(閻魔)라고 쓰기도 한다.

리그베다에서는 ‘야마’로 등장
아베스타 문헌에선 ‘이마’ 칭명
야마·이마 둘 모두 죽음의 존재

불교에서 염라가 더 부각된 건
불교우주관 반영 지장신앙 속
시왕신앙이 자리 잡게 된 이후
명부 담당 10명 판관 중 하나
지장탱에도 염라 모습 나타나

힌두교 야마 의미 불교가 수용
탄트라 불교 속에서 의미 확장

‘염라대왕’ 하면 흔히 죽음을 떠올리는 것은, 바로 이 야마 또는 이마가 본래 죽음의 존재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마’ 혹은 ‘이마’ ‘이미르’ 등은 어원적으로 모두 ‘쌍둥이’를 뜻한다. 죽음의 존재들이 왜 이런 의미를 갖게 되었을까. 이 점에서 죽음은 의미심장하다.

이러한 의문은 아마도 이 신들의 초기 신화적 파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야마는 태양신의 자식으로, 쌍둥이 여동생 야미(Yamī)로부터 강한 성적 유혹을 받는다(리그베다). 선하고 율법을 지키는 야마는 그렇지 않은 야미와 통정하게 되고 그 결과로 선과 악, 삶과 죽음을 만들어낸다(야스나). 그 결과 야마는 최초의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된다. 인간의 삶은 항상 선과 악, 욕망과 죽음 등의 대립쌍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야마가 본격적으로 죽음의 신으로 등장한 것은 후기 베다시기에 이르러서다. ‘우파니샤드’에서 진리의 탐구자 나치케타스(Naciketas)는 가사(假死)상태에서 야마를 만나 윤회과정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가르침을 듣게 된다. 이미 이 시기에 야마는 저승을 관장하는 신으로 등장한다. 야마의 두 번째 어머니인 차야(Chāyā, 그림자)와 갈등 끝에 야마는 아버지인 태양신으로부터 저승세계를 다스리는 주인으로 등장한다.

이 저승세계란 특별히 조상들이 죽으면 이르게 되는 조상의 혼령이 머무는 세계이며 보통 ‘남쪽’으로 명시된다. ‘마하바라타’에서 야마는 쉬바(Śiva)에 의해 저승의 주인으로 자리하게 된다. 따라서 야마는 남쪽의 저승세계에 머물면서 그쪽으로 건너오는 죽은 자, 조상들의 영혼을 심판하는 자의 역할을 맡는다.

불교에서 바라보는 죽음의 신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붓다의 성도 직전에 등장하여 열반을 가로막는 마라(Māra)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서의 야마(Yama)다. 불교적 관점에서 마라가 불교에서 극복해야할 죽음(Mṛtyu) 또는 윤회의 상징이라면, 야마는 율법의 집행자에 해당하는 중립적 위상을 갖는다. 죽은 자의 사후는 윤회의 법칙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므로, 신적인 권력으로 업에 대한 심판을 임의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불교적인 관점에서 야마의 역할은 기본적으로 크게 강조될 수 없었을 것이며, 아마도 이 같은 이유로 초기불교에서 지옥에 대한 언급은 많아도 상대적으로 야마에 대한 언급은 비교적 적다.

불교에서 야마가 크게 부각된 곳은 동아시아적 불교 신앙과 탄트라 불교의 맥락 속이다. 중국에서 지장보살이나 목건련 존자와 얽힌 일화는 동아시아가 갖는 유교적 효(孝)관념과 불교적 신앙의 적절한 타협을 보여준다. ‘지장보살본원경’이나 ‘관정경’ 등에는 악업을 많이 지었던 어머니를 위해 지옥을 여행한다는 지장의 과거생과 목건련의 이야기가 보인다. 지옥을 여행하면서 목건련이 야마도 역시 율법의 관리자(法王 dharmarāja)로서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목건련의 어머니가 지은 죄가 너무 무거워 염라(즉 야마)도 그녀를 구할 수 없었다. 염라가 그런 능력을 갖는 것이 아니라, 다만 관리자일 뿐이다.

그러나 염라(閻羅)가 좀 더 부각된 것은 동아시아의 장례의식과 불교의 우주관 등이 반영되어 지장신앙 속에 시왕(十王)신앙이 자리 잡게 된 이후일 것이다. 시왕신앙은 ‘시왕경’을 통해 잘 표현되는데, 이 경전은 위구르어 등을 통해 중앙아시아 지역에 여러 판본으로 유통되었으며, 이러한 ‘시왕경’과 ‘지장보살본원경’ 등의 유행으로 중국의 중세 당시에 염라에 대한 인식은 훨씬 커졌을 것이라 생각된다.

시왕(十王)은, 한국의 사찰을 방문하면 명부전(冥府殿)이나 지장전(地藏殿)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열 명의 판관이 바로 시왕이다. 명부를 담당하는 열 명의 재판관들 가운데 한 명이 염라다. 물론 이 시왕신앙은 불교뿐만 아니라 도교의 영향에 주도된 것이므로 불교나 인도적인 맥락 외에 있는 판관도 존재한다. 이 명부의 시왕들은 각각 49재와 100일재, 1년, 3년재의 순서대로 죽은 자의 업보를 심판하게 되는데, 염라대왕 또는 염라법왕(閻羅法王)은 다섯 번째 7일에 심판을 맡는 판관이다.

한국의 지장탱이나 지옥도(地獄圖)에도 시왕의 모습과 함께 염라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열 명의 판관 혹은 왕들 가운데 누가 염라인지도 거의 구분해낼 수 있다. 특이하게도 다른 왕들과 달리, 염라대왕은 관(冠)의 앞뒤에 구슬을 꿰어 늘어뜨린 면류관(冕旒冠)으로 주로 표현했던 경향이 두드러진다. 뿐만 아니라 그 관 위에 별자리도 표현해놓은 경우도 있다. 이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며, 한국적인 특징만도 아니다. 지옥의 표현과 시왕들의 표현은 이미 돈황에서 발견되는 여러 사본들 속에서 확인되는데, 그러한 염라의 표현은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고려불화 가운데 지장시왕도는 거의 일본이나 독일 등이 소장하고 있지만, 이들 불화를 통해서 염라의 특징들을 더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 인도 오릿사 부바네슈와르 11세기. 라자라니 사원. 사원 벽면에 조각된 야마 조각상. 한 손에 올가미를, 한 손에 몽둥이를 들고 있다. 아래쪽에 물소. 여기에 조각된 야마상은 난장이 야차(Yakṣa) 형태를 취하고 있다. 입과 이빨 모양이 인상적이다.

한편, 염라 혹은 야마의 존재는 탄트라 불교 속에서 그 의미가 상징적으로 더 확장된다. 초기 힌두교가 보여주었던 야마의 의미를 불교가 받아들여 이것을 좀 더 발전시켰기 때문에 아마도 불교 탄트리즘 속에서 베다에 나타나는 야마의 일관성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베다에서 야마는 천상이나 지하세계까지 돌아다니는 ‘여행자’ 또는 ‘방랑자’ 등으로 그려진다. 야마가 불교 탄트라로 들어오면서 문헌이나 도상 속에서 특별히 문수보살의 수행자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우주의 구석구석을 꿰뚫어 알고 있는 그의 능력을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염라는 밀교 만달라에서 천계의 방위를 부여받게 되는데, 여기서 그는 팔방천이나 십이천 가운데 특별히 남방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것은 베다 시대의 방위 관념을 반영한 것이다. 즉, 남방은 귀신의 방위이며 조상신들의 방위로서, 이 방위는 야마가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흔히 한국 사람은 집터를 고를 때 남향을 선호하지만 고대 인도사람들은 그와 정반대였다. 남쪽은 죽은 자들의 혼령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야마는 조상들의 방위인 남쪽에 위치한다.

한국은 앞서 말한 바처럼 시왕도나 명부전에서 그의 도상을 확인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 인도의 도상처럼 야마의 독특한 올가미나 몽둥이(daṇḍa)를 들고 있는 모습은 볼 수 없다. 야마가 들고 있는 올가미나 몽둥이는 죽음의 불가피성과 그 죽음 다음에 이어지는 심판의 의미를 담는다. 그렇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동아시아에 와서 모두 잊혀졌다 하더라도 가끔씩 물소나 개가 그려져 있는 시왕도를 볼 수는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죽음의 신 야마와 동행하고 있는 개와 물소의 상징이다. 야마는 도상 속에서 간간히 그리고 매우 지속적으로(인도에서 한국까지!) 이 동물들을 등장시킨다. 야마는 자주 물소(특히 수컷 물소)를 타고 다니거나 이 동물을 몰고 다니는데, 이 물소는 야마의 승물(乘物)이면서 동시에 개의 먹잇감이기도 하다. 고대 인도에서 개는 죽음의 또다른 상징물이었으며 죽음의 전령사였다. 따라서 현대까지도 죽음과 분노의 시바(Śiva) 화신인 바이라바(Bhairava)가 개와 함께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고대 인도에서 장례식 때에 늙은 불임(不姙)의 암소고기 일부를 저며서 송장과 함께 태우는데 이는 저승세계로 죽은 자의 영혼을 무사히 인도하기 위해 그 영혼을 안내하는 저승의 개에게 공양하기 위한 것이다. 죽은 자의 영혼을 보내면서 그 영혼의 심판자와 함께하고 있는 개에게도 공양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의 신 야마에게 물소와 개가 따라붙은 것은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렇지만, 인도인의 관점에서 개는 동물의 계층에서 가장 하위의 동물이다. 음식과 섹스에 가장 강열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성스러운 제사음식을 더럽히는 동물로 그려지곤 한다. 오직 불가촉천민들의 음식일 뿐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39호 / 2016년 4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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