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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인간세상과 인연의 중요함-상

“인연 속에 나와 남이 있고 보시공덕이 깃들어 있습니다”

▲ 불광산사가 건립한 광명대학 학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선생님과 어른 스님들의 매질과 욕설 교육, 수많은 억울함과 난감함, 손바닥 매 맞기, 벌로 무릎꿇기 등은 수시로 겪던 일이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저에게 성장의 인연을 주신 것입니다. 저와 원한 관계도 아닌데 왜 저를 때리고 욕하셨겠습니까?”

요즘 ‘돈(錢=前과 동음)을 향해서 봐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는데 돈이 그리도 중요할까요?

‘돈을 향해서 보는 것’ 이외에도 세상에는 봐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며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온갖 공연을 좋아하기도 하고 신기하거나 기묘한 구경을 좋아하고 텔레비전이나 신문, 인터넷 등등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쳐다보기 좋아하면서 왜 ‘인연’을 바라보는 것은 싫어할까요?

빈승에게는 눈이 한쌍 있는데 예전에는 보는 기능을 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세상을 보고 싶어하고 사회의 어려움을 보아왔는데 정말로 보기 좋아하는 것은 바로 ‘이치(道)’를 보는 것이었습니다. 이치란 무엇일까요? 이치가 곧 인연이고 이치가 바로 불법이고 이치가 바로 불교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세심히 살펴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발견해야 합니다. 빈승이 출가한 처음 10년은 가난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돈이 없었고 돈이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돈이 대단하다는 것을 저는 별로 느끼지 못했고 몰랐습니다. 출가하고 나서 매일 보이는 것은 불상과 보살상, 나한상, 장엄한 법당이었고 경전을 보고 선생님과 동기 등등을 보며 지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보이는 물건들은 아주 빨리 잊힌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너무 멀리 있는 것은 보이지 않고 담으로 가려져도 보이지 않으며 현재 눈앞에 보이는 일련의 인간사의 인연도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어버리니 달라지는 것입니다. ‘듣는 것’이 ‘보는 것’보다 좋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서 선생님들이 고금을 말씀하시고 불법과 현학을 가르치시는 것에 저는 흥미를 느끼고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 빈승은 또 보거나 듣는 감각적인, 소위 말하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에 대응적인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 궁극적이지 못하다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어 이리보고 저리보고 여기저기서 듣는 것 모두가 자신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느 한 번은 선생님으로부터 따귀 한대를 얻어맞고서는 ‘무얼 보는 거야? 세상에 어떤 물건이 너의 것인데?’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맞아, 이 세상에 내 것인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달 간의 보지 않는 생활을 보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선생님이 저한테 ‘마음을 보도록 해라’라고 하셨는데 마음이 어떤 모양인지 보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때리기도 하고 욕을 하시기도 했지만 ‘네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너 자신이 살펴볼 수 없겠냐?’라며 저에게 자상한 가르침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살펴보는 속에서 빈승의 업장이 무겁고 ‘탐에무명(貪無明)’과 미움과 ‘질투(瞋恨嫉妒)’가 깊어서 차마 들여다 볼 수 없었고 재물과 색을 밝히는 것보다 더욱 추악하였습니다. 저에게 질투심이 있고 저에게 탐욕심이 있으며 저에게 성내는 마음이 있고 저에게 어리석은 마음 등등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의 키가 이미 180센티 가까웠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남보다 한 뼘은 작게 느껴졌고 남들이 나보다 잘나고 나보다 더 크게 느껴져서 차마 남을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가난할 뿐만 아니라 못나기까지 했습니다.

목표를 찾고 좌선과 염불로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나중에 또 ‘너는 존중과 포용으로 너의 질투를 대처하고 자비와 희사로 너의 탐욕을 대처하며 온화함과 친절로 너의 성내는 마음을 없애고 인연의 이치로서 어리석음을 없애라’는 선생님의 자비하신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로 불가에서 저는 자신이 몸을 뒤집은 듯 나의 높이와 넓이를 키우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공부하는 세월 속에서 사회와 인생과 오욕육진(五欲六塵)에 대한 생각에 다시 예전과는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당시 빈승은 비록 재물에 욕심을 갖지 않았지만 ‘명예’를 좋아해서 자신이 좋은 사람이고 건전한 사람이며 남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불법의 바다에서 성장하는 과정에서 나이가 서른이 되어가자 관념이 다시 새롭게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본래 인간은 미약한 존재로 개인이 너무 이기적이어서는 안 되며 출가자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를 위하고 중생을 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위 말하는 ‘홍법은 당연한 의무이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은 사업이다(弘法是家務 利生事業)’라는 가르침으로, 유교에서 말하는 ‘나이 서른에 뜻을 세우다(三十而立)’로서 비록 저 자신이 뜻을 세웠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인연에 의지해야만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는 진언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자신을 ‘색신은 사중에 맡기고 생명은 하늘에 맡긴다(色身交予常住 性命付予龍天)’는 생각으로 개인적 수확은 마음에 두지 않고 오직 불교의 앞날을 위해서만 분투하였습니다.

절을 하고 좌선을 하고 염불하면서 저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지만 내심으로 매우 풍족하게 느껴졌고 방향이 정해졌다고 느꼈으니 대중들과 두루 인연을 맺으려고 하면서 자신에게 목표가 있으니 마치 세상을 가진 것과 같았습니다. 기억하기를 ‘석가모니불전기’를 쓰고 있을 때 보리수 아래 금강좌에서 부처님께서는 바로 인연이 생겨나는 연기법을 깨달으신 것을 알았습니다.

빈궁함에 안주하면서 즐겁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한 새김이 되었습니다. 인연이라 함은 쉽게 이해가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든다면 사람과 사람 간에 서로 사이가 좋으면 “우리는 인연이 있나 봐”라고 말을 하고 사이가 나쁘면 “서로 인연이 없어”라고 말합니다. 혹은 “우리가 인연이 있어서 천리 길을 와서 만났다”고 하는 말을 자주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인연은 이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인연은 바로 조건으로 세계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생존하는데 어떻게 많은 조건(인연)이 갖추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본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성공(緣起性空)’의 기본적인 의미는 ‘유는 공함에 의해서 존재한다(有依空立)’ ‘이치가 성립되어야 일이 이루어진다(事待理成)’ ‘결과는 원인으로부터 생겨난다(果由因生)’입니다. 부처님은 사람이 성취한 것으로, 성불할 수 있으려면 그만한 인연이 되어야 사람이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열 살이 넘어서야 기차를 보았고 스물여섯 살이 되어서야 전깃불이 있는 생활을 하였으며 서른이 될 때 까지도 트렁크가 없어서 어디를 가게 되면 옷 두벌을 보자기에 싸서 다녔습니다. 사실상 빈궁함은 여태껏 저를 따라 다니지만 빈승의 마음에는 빈궁해서 괴로운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가에 고마운 것은 출가하여 처음 교육을 받던 시기에 저를 소박하고 바라는 것이 없는 성격으로 길러주었기에 외부의 어떤 유혹도 저를 흔들 수는 없었습니다. 빈궁함에도 편안하게 불법을 배우며 즐겁게 지낸 것은 당시 제가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르침입니다.

제가 출가한 이후로, 은사 스님께서는 저에게 돈을 주지 않으셨고 새 옷을 주시지도 않으셨으며 제가 어렵게 지내게 하셨지만 사실상으로는 저에게 많은 인연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물건을 사지 않는 습관을 길렀으며 청빈한 관념을 갖게 되었으니 은사 스님께 감사드리며 제게 이렇게 좋은 인(因)과 좋은 연(緣)을 갖도록 해주셔서 제가 불교의 승단에서 안주하게 하셨으니 은사 스님께서 주신 인연과 마음 공덕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선생님과 어른 스님들의 매질과 욕설 교육, 수많은 억울함과 난감함, 손바닥 매 맞기, 벌로 무릎꿇기 등은 수시로 겪던 일이었지만 선생님들께서는 저에게 성장의 인연을 주신 것입니다. 저와 원한 관계도 아닌데 왜 저를 때리고 욕하셨겠습니까? ‘사랑이 깊으면 야단이 엄하다’는 말처럼 그분들은 단지 제가 불가의 인재가 되고 불교의 자랑이 되기를 바라셨기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야단을 치신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는 그분들이 저에게 비료를 보시해 주신 것이고 저에게 물과 흙을 보시해주신 것으로, 제가 성장해 인생에서 또 세상에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어 달콤한 결실을 맺도록 하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확실히 서른이 된 이후로 ‘인연의 중요함’을 점차 느끼게 되었습니다.

본래 저는 대만으로 건너오지 않고 중국대륙에 남아 있으려고 했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십년간 수탈의 고난을 견뎌내야 했을 것입니다. 지용 스님께서 주신 인연으로 제가 대만에 오게 되었고 문화혁명의 고난을 피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제가 어찌 이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월남 화교인 저백사(褚柏思) 부부와의 인연으로는 저는 단지 적은 액수의 도움을 드렸을 뿐인데 그 분들은 저에게 이 불광산 토지를 선물로 주었으며 결국에는 도량을 짓고 승가를 안돈하고 대중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자비광명이 두루 비추게 되고 불법의 샘물이 널리 흘러나가게 되었으니 이 인연이 좋지 않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염석산(閻錫山)이 대만에서 행정원장을 하던 시절에 한 사람의 완성은 돈으로 살 수 없었고 애정으로 유혹할 수 없으며 협박으로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면서 그렇지 않다면 사람이 돈에 눌리고 애정에 끌려 다니고 협박에 두려워진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빈승의 생각에는 만약 한 사람이 인연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면 모든 인연이 일어나고 인연이 다하는 것을 잘 알게 되므로 동요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돈만 보지 말고 인연을 보아야 합니다. 인연 속에 대중이 있고 인연 속에 세상이 있으며 인연 속에 남과 나의 관계가 있습니다. 진정한 금은보화와 법신혜명이 다 인연 속에 있습니다.

빈승은 책 읽기를 좋아했지만 책 살 돈이 없었고 여러 곳을 다니며 배우기를 좋아했지만 여행경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불교를 위해서 교육기관을 세우고 불교를 키우고 대중교화하고 승가를 안돈하고자 무엇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저에게 돈이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저는 우리에게도 금전이 역시나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습니다. 재물을 얻을 인연이 저에게 없었던 탓이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사 인연은 아주 기묘한 것이라서 당신의 인연이 부족할 때는 삶아놓은 오리도 날아가버리게 되고 당신의 인연이 갖추어지게 되면 돈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돈을 갖다 주는 사람이 저절로 찾아오고 도움을 주게 됩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342호 / 2016년 5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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