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⑨ 사경 종이가 쪽빛인 이유?

기자명 법보신문
금니-은니 글씨 더욱 돋보이게

제작 기법 단절 … 일본서 국가적 재현 노력




1275년 감지에 은으로 쓴

불공견색신변진언경

고려·신라 시대 사경(寫經)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난다.

금과 은을 이용해 쓰거나 그린 아름답고 유려한 글씨와 그림들(변상도). 세상 어느 종교의 경전이 이보다 아름답고 화려할 수 있을까? 경전을 베끼는 일을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당시 사람들이 종교적 신념과 능력이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이보다 더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쪽빛(감색), 붉은 빛, 황토빛 등 다양한 색깔을 띄고 있는 사경 종이의 아름다움이다. 특히 비취빛이 도는 쪽빛의 종이 위에 쓰여진 금자·은자 글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감이 감돈다. 그래서 사경을 장식경(裝飾經) 혹은 장엄경(莊嚴經)이라 부르며 경전보다는 예술적인 면에 더 가치를 두는 이들도 있다.

사경을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불교경전을 베껴 쓰는 일을 말한다. 간편하고 보기 쉽게 쓰면 될 터인데 왜 이렇게 우리 조상들은 사경에 정성들여 금·은을 사용하고, 또 다른 경전이나 책에서는 사용하지도 않던 쪽빛(감지), 상지(갈색), 자지(붉은색) 종이를 사용했을까? 금·은을 사경에 사용한 것은 통일신라시대부터이다. 불교 전래 초기의 우리나라 사경은 대부분 묵서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는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이므로 불교 경전이 수입되는 대로 베껴 쓰는 차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다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경전의 유통은 목판 인쇄가 담당하게 되고 필사에 따른 공덕 신앙이 강조되면서 금, 은니의 필사가 성행하였던 것이다. 특히 권별 변상도와 표지의 경 이름은 반드시 금니로 썼다. 금은 변하거나 썩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금·은니 필사가 성해하면서 자연스럽게 금과 은을 돋보이게 하는 종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감지(紺紙), 상지(橡紙), 자지(紫紙)라는 독특한 색상을 지닌 종이들이다. 특히 쪽빛의 감지는 금니, 은니 사경에 가장 많이 쓰는 종이로 금과 은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고 돋보이게 하는 종이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감지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사경의 기술이 한·중·일 동양 삼국 중 가장 뛰어났기 때문이다. 원나라 때 중국사람들이 고려국에 사경승을 요청하거나, 사신을 보내 사경 종이를 대량으로 구입해 국가적으로 사경작업을 벌였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사경 기술과 사경 종이 제작기법이 오늘날에 완전히 명맥이 끊겨 버렸다. 한솔종이박물관이나 관련 학자들이 감지를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의 감지가 지니고 있는 그 빛깔과 색상을 재현하기에는 지금 기술로는 역부족이라는 사경연구가 김경호씨의 비관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일본은 국가적으로 감지 재현에 매달린 결과 최근 고려시대 감지에 근접한 감지를 재현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금·은니 사경을 가장 돋보이게 하기 위해 조상들이 창조해 낸 신비의 종이 감지. 그 기술을 일본만이 가지고 있다는 오늘날의 현실이 부끄럽다.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