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 폭염, 기후변화의 어두운 그림자

기자명 최원형

기후변화 원인은 자본주의…소비할수록 고통 심화

밤이 되어도 기온이 떨어지지 않는 열대야가 보름 넘게 지속되면서 많은 이들이 피로감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높은 기온에 매미 개체수가 엄청나게 증가해서 매미 울음소리마저 소음공해가 되어 괴롭다는 얘기도 들린다. 이렇게 지독한 폭염은 작년에 한 달여 지속되던 가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도시에서 살고 있으면 가뭄은 사실상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비가 참 안 오네’ 라고 느끼긴 해도 수도꼭지를 틀면 언제나 물이 콸콸 나오니 가뭄을 체감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폭염은 다르다. 폭염이 가뭄과 다르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전기요금이 아닐까 싶다. 만약 에어컨을 맘껏 켤 수 있다면 도시인들에게 폭염이 이토록 고통스럽게 다가갔을까? 바꿔 말하면 가뭄의 심각한 정도만큼 수돗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도시인들에게 가뭄 역시 이번 폭염처럼 고통으로 다가왔을 거란 얘기다.

우리가 써버리는 모든 자원
재생 넘어 생태계 혹사 시켜
편리함과 고통으로 가는 길은
인과이치로 서로 다르지 않아

열대야는 폭염의 영향도 있겠으나 도시에서 생성된 열이 기여하는 바도 적지 않다. 여름날 도시를 걷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다. 뜨거운 햇살도 햇살이지만 건물과 자동차가 에어컨을 가동하면서 내뿜는 열기는 견디기가 무척 힘들다. 이런 열을 완충시켜줄 숲은 드물고 오히려 열기를 가두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뒤덮이다 보니 도시에서 열대야는 도시인 스스로가 어느 정도 자처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에어컨을 켠 채 문을 열어두고 영업을 하는 상점들을 보는 일이 도시에서는 어렵지 않다. 손님들이 문 열고 들어오는 걸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소위 문턱을 낮추려는 영업 전략이라 한다. 이렇게 문을 연 채 에어컨을 켤 수 있는 건 상업용 전기요금에 가정용전기요금처럼 누진제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용은 누진제가 6구간으로 나뉘어 있어 올 여름처럼 에어컨을 많이 켤 경우 요금폭탄을 면하기 어렵지만 산업용이나 상업용은 예외다. 최근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 폐지를 위한 소송이 진행 중이고 인터넷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누진제 폐지가 과연 답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누진제가 폐지되어서 이제 가정에서도 더우면 에어컨 빵빵 돌리면 폭염 문제가 다 해결되는 걸까? 에어컨은 열기를 여기서 저기로 옮겨놓을 뿐 결코 사라지게 하는 게 아니다. 에어컨을 맘껏 쓰기 위해 필요한 전기는 어디서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 걸까?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의 적어도 95% 이상은 수입한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와 바이오매스, 수력 등으로 생산하는 아주 적은 양을 제외하고는 죄다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고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그대로 두라는 뜻은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고민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방식으로 전기 생산 방식을 전환해야 탄소배출을 줄일 수 있을지, 오늘 이런 기후문제가 왜 발생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먼저여야 한다는 거다.

해마다 국제환경단체인 지구생태발자국네트워크(GFN)에서는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세계 생태발자국 추정치를 발표하고 ‘지구용량 초과의 날’(Earth Overshoot Day)을 선포한다. 지구용량 초과의 날이란 말 그대로 지구가 인류에게 준 한 해 분량의 자원을 모두 써버린 날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날 이후부터 쓰는 자원은 미래에 쓸 것을 미리 당겨쓰는 셈이다. 올해 지구용량 초과의 날은 지난 8일이었다. 그러니 8월8일 이후부터 우리가 탄소를 배출하고 써버리는 자원은 모두 자연의 재생 능력을 넘어서는 것이고 지구 생태계를 혹사시키는 게 된다. 인류가 생태자원을 지구 용량 이상 초과하기 시작한 건 1970년대 들어서다. 1970년대 초반 12월 하순이었던 지구 용량 초과의 날은 90년대 들어서 10월로, 2010년 들어서는 8월로 당겨졌다. 2010년에는 8월14일이었고 올해는 8일로 불과 6년 사이에 6일 앞당겨졌다. 미래의 것을 당겨쓰다 보니 지구인들이 지금처럼 자원을 소비하려면 지구가 1.6개 필요하고, 만약 세계인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자원을 소비한다면 지구는 3.3개가 필요하다는 내용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올해 폭염을 겪으면서 많은 이들이 기후변화가 우리 가까이 와 있다는 걸 실감하길 바란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과도한 온실가스 발생으로 규정짓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작가 겸 진보적 사회운동가 나오미 클라인은 기후변화의 문제를 탄소가 아닌 자본주의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그의 말에 동의한다. 편리함과 고통은 가는 길이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 길은 그대로 인과의 이치를 설명해주고 있다. 폭염과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우리에게 속삭여준다. ‘많이 소비할수록 고통 또한 깊어진다’는 것을.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55호 / 2016년 8월 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