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어사지, 갈등해결의 열쇠는 가톨릭에 있다
주어사지, 갈등해결의 열쇠는 가톨릭에 있다
  •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 승인 2016.10.14 19:30
  • 댓글 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논설위원 칼럼]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주어사는 가톨릭성지 앞서
스님들이 목숨까지 내걸고
천주교 공부장소 제공한 곳
불교 흔적까지 지우려는
가톨릭 행위 동의할 수 없어

1492년 콜럼버스가 현재 아이티(Haiti) 땅에 첫발을 밟은 날을 기념하여 미국에서는 오랜 동안 10월 둘째 월요일을 ‘콜럼버스 날’로 지켜 왔지만, 그 땅의 본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에게는 이 날이 ‘땅과 생명을 빼앗긴 역사가 시작된 비극의 날’일 뿐이다. 그들은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백인들을 우리 선조들이 발견하여 그들에게 물과 먹을 것을 주어 살려준 ‘구원의 날’로 기념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호응하여 최근에는 ‘콜럼버스 날’을 폐지하고 ‘원주민의 날’로 바꾸는 주(州)와 도시가 많아진다고 한다.

한편 1779년(정조3), 권철신‧정약전 등이 여주와 광주가 경계하고 있는 앵자봉 아래 주어사에서 천주교 공부를 하였다고 추정된다. 이런 추정에 따라 이곳을 ‘최초의 강학 장소’로 보는 천주교 쪽에서 성역화를 추진하면서,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불교계와 마찰을 빚고 있다. 조선후기 천주교 서적을 읽고 토론하는 일은, 그 당사자들 뿐 아니라 공부 장소를 제공한 사람들까지 목숨을 빼앗길 수 있었다.

그러므로 자발적이든 강제였든-권철신과 정약전 등 양반들이 방을 내달라는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스님들이 목숨을 걸고 ‘최초의 강학’이 이루어질 수 있게 도와주었던 주어사를 “이곳은 우리 성지”라고 하며 그곳에서 불교의 흔적을 지우려고 하는 저들의 행동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종교 화합과 평화가 아무리 소중하다고 할지라도, 이런 일에까지 양보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로널드 라이트가 지은 ‘빼앗긴 대륙 아메리카-콜럼버스 이후 정복과 저항의 아메리카 원주민 500년사’에 따르면, 스페인 정복자들이 멕시코(Mexico)를 함락한 뒤 그곳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새 도시를 세우면서 맨 먼저 한 일은 아즈텍인들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던 성소인 틀라텔롤코 피라미드 곁에 성당을 세우는 일이었다.

정복자 피사로는 1493년 악명 높은 교황 알렉산드르 6세의 “내가 그 땅을 스페인 국왕에게 넘겼으니 그런 줄 알라”는 교시를 원주민 수탈과 지배의 근거로 삼았다. 그 뒤로 백인들은 자신들을 살려준 원주민들에게서 황금 등 값나가는 물건들을 수탈하였을 뿐 아니라 아즈텍과 마야 제국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방대한 유산을 말살하여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지혜의 보물 창고’를 사라지게 하였다.

절두산순교성지후원회에서 출간한 ‘천주교순교성지절두산’(박희봉 편저)에 따르면, 주어사 터에 있던 해운대사 의징(海運大師義澄)의 부도비는 1973년 11월에 오기선‧박희봉 신부가 양화진 본당 부녀회원들과 함께 주어사 터에 들렀다가 가져가 절두산순교성지에 세워놓았다. 저들의 입장을 아무리 이해해주려고 해도, 조선시대 승려의 비석을 왜 천주교순교성지에 옮겨다 세워놓았는지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엄밀히 말하면, 이 사건은 종교 갈등이라는 차원을 떠나서 실정법상 ‘문화재 무단 반출’이며 ‘도난’ 행위이다.

백인 정복자들과 함께 신대륙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빼앗아갈 수 있었던 옛날 선교사들의 역사를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잘못을 그대로 추종하는 있는 한국 천주교의 ‘몰(沒)역사적’‧‘반(反)문화적’‧‘비(非)민족적’ 행태가 이 의징대사비 무단 반출(엄밀하게는 ‘절취’)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가 주어사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인정한다면, 불교계와 갈등을 일으키는 성지 조성 등의 사업을 펼치기보다는 그곳에 “우리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절/ 죽음을 무릅쓰고/ 우리 선조 교도들을 숨겨주고/ 강학 장소를 제공해주었던/ 주어사 스님들의 자비와 용기 있는 행동에 감사드립니다”라고 새긴 작은 비석을 세워서 당시 한국 불교계와 승려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톨릭교도들을 숨겨주고 강학회를 열게 하였던 행위에 감사를 표할 필요가 있다. 주어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푸는 열쇠는 천주교가 갖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3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재흥 2016-10-20 15:58:21
언론계를 장악한 교활한 카톨릭계에 의해 주어사지가 전혀 부각되지 않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도화 2016-10-19 13:33:54
요즘 천주교인 행태들 보면 가관이다. 모든 것을 베껴쓰고 있더군. 심지어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있던데 자비라는 단어 마저도 컨닝한놈이 요즘은 아예 다른 사람이 자기껏을 컨닝했다고 우기고 있다. 사대주의 자들.

ㆍㄹㅂㄴㆍㄹ 2016-10-14 23:42:25
미췬 그게 어떻게 가톨릭에있냐??원불교나 잘되게해라ㆍ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