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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천양희의 ‘운명’

기자명 김형중

고약하게 헝클어진 실타래 풀고
스스로 해답 찾도록 경책하는 시

시인 자신의 모진 운명 읊은 시
비유로 인간 취약한 모습 표현
개인·국가 공동체 화두이기도

눈물로 된 몸을 가진 새가 있다
주둥이가 없어 먹이를 물 수 없는 새가 있다
발이 없어 지상에 내려오면 죽는 새가 있다

온몸이 가시로 된 나무가 있다
그늘에서만 사는 나무가 있다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나무가 있다

운명이란 누가 쓴
잔인한 자서전일까

인생은 고해다. 가혹하고 억울한 사람이 있다. 삶의 겉모습은 화려해 보이고 찬란한 면이 있어 보여도 속내는 말 못할 아픔과 슬픔이 내재해 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사람도 있고, 울고 싶어도 울지도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산 사람도 있다.  재벌 남편과 이혼하면서 자식을 빼앗기고, 제 새끼를 지키려고 피울음을 흘리면서 참고 사는 사람의 이야기를 드라마에서 보았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잔인하고 요지경이다. 운명의 공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불교 경전에 몸통은 남산만큼 큰데 목구멍은 바늘구멍만 하여 항상 배가 고파서 뱃속에서 불이 일어나고 있다는 아귀라는 중생이 있고, 숟가락이 너무 길어서 입에 음식을 떠 넣을 수가 없는 지옥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 인간이 사는 한 모습이라고 한다.

‘운명’은 천양희(74) 시인 자신의 삶을 읊은 시이다. 그녀는 정현종 시인과 이혼하고 홀로 분투하여 성공한 시인이다. 그가 이름을 얻은 만큼 눈물과 슬픔은 클 것이다.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운명을 읊은 것이다. 인생은 만만한 삶이 아니다. 독자에게 어떻게 살아야 이 고약하게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고 살아갈 것인가를 스스로 해답을 찾도록 경책을 주는 시이다.

이 시는 눈물로 된 몸을 가진 새, 주둥이가 없는 새, 발이 없는 새, 가시로 된 나무, 그늘에서만 사는 나무, 햇빛을 받으면 죽는 나무 등 비유와 상징을 통해 우리 인간의 취약한 다양한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다. 운명이란 업보의 사슬에 묶여 어떻게 벗어날까? 이것이 우리 개인과 국가 공동체의 화두이다.

‘운명’은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하고 노래했던 이화여자대학교 선배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자신의 슬픈 모습을 ‘사슴’에 비유하여 읊은 노천명 시인이 떠오르는 시이다. 천양희나 노천명은 명문대학에서 공부하고 멋진 남자를 만나 연애하고 사랑하였지만 그들의 운명은 꼬여서 짝을 잃은 외기러기가 되어 독신 여성으로 외롭게 고독과 애수에 젖어 시와 함께 살았다.

이 시를 읽고 현재 최순실 게이트로 온갖 의혹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진퇴양난에 빠진 박대통령의 운명을 보며 ‘익상조(翼傷鳥)’란 시를 써 보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총탄에 유명을 달리했고, 자신은 운명이란 덫에 떠밀려 역사와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휘둘려왔다. 정상에 올랐으나 껍데기와 허명만 남고 결국 홀로 남았다. 이것이 인생이고 운명이다. 허공의 꽃을 붙들려고 달려가는 불나방이다.

치마를 입지 못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옷을 벗지 못하는 여인이 있습니다
구중궁궐에서 홀로 우는 여인이 있습니다
너무나 슬퍼서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거울을 봐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습니다
벌거벗은 임금님이라고 백성들이 조롱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날개가 부러져 하늘을 날지도 땅에 앉을 수 없는 새가 되었습니다
날려고 용을 쓰면 더욱더 죽어가는 기구한 운명의 새가 되었습니다.
그나마 쉼터인 마당 앞 한 그루 나무가 얼마 전에 잘려 나갔습니다
하루 종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합니다
낮에는 눈물로 울고 밤에는 피로 웁니다
광화문에서는 천둥벼락이 칩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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