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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불과 불교

기자명 원혜 스님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심청이는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 임당수에 몸을 던졌다. 혹자는 심청전이 효(孝)를 강조한 것이라고 하지만, 유교 윤리에서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이 효일 수는 없다. 오히려 심청전은 불보살의 가피와 보시공덕의 영험을 강조한 불교이야기라고 보아야 한다. 지극한 효심이 불심과 어우러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변해가는 사찰경제심청전에 나오듯 사찰 운영의 경제적 기반은 쌀이다. 화폐유통이 원활하지 않던 시절, 쌀이나 옷감은 거의 유일한 경제 매개물이었다.그래서 화폐경제, 신용카드 경제가 일반화된 요즘도 불자들은 절에 올 때 쌀을 가져와서 부처님 전에 놓는 순서를 빠뜨리지 않는다. 천 몇 백 년을 길러온 습관이기 때문에 안하면 무언가 허전하다. 그렇게 들고오는 봉지쌀이 얼마나 될까 하고 가볍게 보면 안된다. 영험하다고 소문난 기도처에서는 봉지쌀만 가지고도 오가는 수 많은 대중을 다 밥해 먹이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쌀이 사찰 경제의 근본이 아니다. 퇴락한 건물을 보수하고, 새로 중창하고, 공부하는 학인들 뒷바라지하고, 절에 일하는 종무원들에게 월급을 주기 위해서는 사찰도 돈이 필요하다. 땅한평에서 나는 소출은 얼마 되지 않지만, 그 땅 한평을 사기 위해서는 엄청난 돈이 들어야 한다. 봉지쌀을 모아서 될 일이 아니다. 요즘 한국 불교 경제 수입의주된 분야는 등 판매와 기도 동참금, 부정기적인 재공양 그리고 불전수입이다. 때로는 대형불사 권선문을 돌리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특별 이벤트야말로 반짝, 오래가지 않는다. 또 너도나도 동양최대, 세계최대 불사를 하는 통에 식상해서 신성하지도 않다. 몇몇 관광사찰은 이에 덧붙여 관람료 수입이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 사찰에게는 남의 일이다. 사찰경제도 일반 사회처럼 돈이 돌아야 한다. 그 돈은 불자들에게 기댈 수 밖에 없다. 심청이때는 쌀로 삼보를 외호하던 불자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돈으로 뒷바라지 하고 있는 것이다. 쌀에서 돈으로 그만큼 사회는 변하고 있다. 

작년 말로 우리나라도 국민소득 1만불 시대를 맞이했다. 우리 불교가 만나는 사람들도 더 이상 국민소득 몇천불짜리 개발도상국 불자가 아니라 국민소득 1만불짜리 선진국에 진입한 불자들이다. 수준높은 불자의식국민소득 1만불은 과연 어떤 사회인가. 사회적으로는 아파트의 시대가 끝나고 전원주택의 시대라고 말한다.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을 충당하기 위해 정신없이 뛰어가던 시대, 그것이 양의 시대라도 한다면 이제부터는 좀더 여유로운 보폭으로 삶의 질을 따지고 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시대다. 

불자 대중이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불교는 과연 이런 변화를 어떻게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있는가. 불자들이 바라는 바를 얼마나 만족시키고 있는가. 이것이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불교가 고민해야 할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다. 그것이 포교에 반영되어야 하고, 사찰 운영에 반영되어야 하고, 크게는 종단 운영에 반영되어야 한다. 스님들이 권위만 갖고 불자들을 대해서는 안된다. 부처님 보고 기도하면 되지 다른 것을 따져서는 안된다는 불자들을 윽박지르는 시대는 끝났다. 가사 장삼을 수했다고 무조건의 존경과 복종을 요구할 수도 없다. 우리가 만나는 불자들은 대학교육 이상을 받고 연간소득 1만불이 넘는 선진국의 국민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수행의 전문인일 수 있으나 자신들은 생활의 전문인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불자들 중에는 전문 회계사도 있다. 전문 경영인도 있다. 회사에 다니는 경우에도 관리직이라면 기본적인 경영마인드와 회계정보는 상식이다. 이런 불자들이 사찰운영을 바라본다. 사찰재정이 투명해야불사하니까 돈을 내라고 요구만 해서는 안된다. 불행히도 한국불교 내부는 아직도 이런 경향이 남아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왜 돈을 내야 하는지, 그 돈은 어떤 분야에 쓰일것인지, 일이 끝난 뒤에는 얼마나 잘 되었는지 그 일에 동참한 사람들이 모두 알 수 있어야 한다. 불자들이 스스로의 보시에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과정과 결과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다음의 보시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불교 경제의 재생산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사찰은 삶의 질을 고민하는 불자들에게 응답할 수 있어야 한다. 삶의 가치와방향제시, 전통문화의 보존과 보급이 앞으로 사찰이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다. 1만불 시대의 불자들 앞에선 불교 또한 1만불 이상은 되어야 한다.


원혜 스님 /조계종 포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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