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생활 속 방생 방법
51.생활 속 방생 방법
  • 최원형
  • 승인 2017.05.23 10: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모든 생명 가진 것들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늘 다니던 길을 두고 그날따라 아파트 단지를 통과해서 걷고 있었다. 흰색 개가 한 마리 눈에 들어왔다. 곧이어 그 개에게 다가가는 아파트 경비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가 개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둘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다가가자 경비 아저씨는 나를 개 주인이라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개는 목줄이나 이름표가 없었다. 털이 더럽진 않았으나 군데군데 빠져있었고 뒷다리엔 상처도 있었다. 한눈에도 개가 어딘가 아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많이 불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개는 나를 보더니 다가와 다리 주위에서 잠시 맴돌다가 멀어지기를 두어 번 반복했다. 개를 만지지 못하는 나는 쓰다듬어주는 대신 “배가 고프니?” 묻고는 마침 가방에 비스킷이 있어 건네줬다. 비스킷으로 다가가 냄새만 맡고 입을 대진 않았다. 경비아저씨는 주인 없는 개라는 걸 알아차리자 곧장 자리를 떴다. 떠돌이 개에 얽히면 복잡해질 것 같다는 그런 심사는 아니었을 거라 나는 믿는다. 뭘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이 개를 따라 걷다가 아파트 청소하시는 아주머니를 만났다. 나와 개를 번갈아 보길래 내 개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혹시 개 주인을 아시냐 여쭈었다. 처음 보는 개라고 했다. 그러면서 개를 훑어보더니 “버렸구만” 한다. 개가 아픈 것 같지 않냐 물으니 아주머니는 그렇다고 하면서 개가 나이도 많고 아프니 버린 것 같다고 했다. 몸집이 작아 어린 줄 알았다고 하니 강아지는 잘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아주머니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개는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 개가 갔을 것 같은 방향으로 뛰어가 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기운도 없어 보이던데 어디서 어떻게 지낼지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유기견·발가락 뭉개진 비둘기
반생명적 처사의 강아지 공장
배려없는 행동 동물에게 고통
생명가치 함께 논의해야할 때


한 달여 전 보도 블럭 위에서 비둘기 한 무리를 만났다. 비둘기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비둘기들은 조금 먼 곳으로 이동해갔다, 단 한 마리만 남겨둔 채. 남겨진 비둘기는 어찌된 영문인지 뒤뚱거리며 잘 걷질 못했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들여다보니 비둘기의 왼쪽 발가락이 모두 뭉개져있었다. 길거리에 무심코 버려진 끈이나 플라스틱 등에 발가락이 감기거나 끼어서 그런 일이 종종 벌어개다. 뒤뚱거리며 걸으니 행동이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먹을 게 눈에 띄어도 뒤쳐져 제대로 먹기도 어려울 성 싶었다. 도시에서 인간과 부대끼며 사는 동물들 가운데 행복한 동물은 그렇다면 누굴까? 도시에서 인간이 누리는 것과 동등한 권리를 누리며 사는 동물이 과연 있긴 할까? 식물들은 또 어떤가? 선거 기간 동안 현수막들이 대단했다. 길을 가다보면 잘록해진 가로수를 종종 본다. 현수막을 걸었던 끈을 제대로 걷어내지 않고 그냥 두어서 나무줄기가 잘록해진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내 목이 조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도시에서 조화롭게 지내기 위해선 오직 우리의 ‘배려’가 필요하다.

곧 세계 최초로 유기견 출신의 퍼스트 독이 탄생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운동 당시 당선이 된다면 유기견 ‘토리’를 입양하겠다고 공약했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미 유기고양이도 키우고 있다. 사람과 함께 사는 동물에게 애완이란 말 대신 반려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애완의 사전적 의미는 동물이나 물품 따위를 좋아하여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거나 즐긴다는 뜻이다. 동물이나 물건이 동급으로 취급되니 좋아해서 가까이 두고 귀여워하다가 싫증나면 버릴 수도 있다는 한시적인 사랑이 담겨 있다. 반려는 동반자, 짝, 친구의 의미이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다.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은 반려동물과 함께 살고 있다는 얘기다. 강아지를 반생명적인 처사로 생산하는 강아지공장이 텔레비전에 폭로되면서 공분을 샀다. 그러나 강아지 공장의 이면엔 강아지를 필요로 하는 수요도 역할을 했다 볼 수 있다. 좀 더 일찍 생명가치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해야 했지만 늦었더라도 어서 공론의 장에 내 놓고 그 가치를 공유해야 할 것이다. 세상 어떤 생명도 함부로 스러지게 할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 동시에 모든 생명 가진 것들에겐 행복할 권리가 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강아지를 팻샵에서 구입하는 대신 유기견 입양을 권한다. 강아지 공장의 고리를 끊기 위해 필요한 조처이면서 안락사로 사라져갈 목숨을 방생하는 일이기도 하다. 방생은 찾아보면 우리 생활 곳곳에서 가능하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