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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태연 작가

기자명 구담 스님

현대적 언어로 꽃피운 관음보살

▲ Super Buddha, 31x18cm, 나무_먹, 2014.

풀 한포기 각황의 꽃, 삼매의 꽃…. 무심히 피어난 온갖 이름들이 어우러져 무성한 꽃들의 화엄 만다라를 피웠다. 다만 처음 보는 웃음꽃이고 흥미로운 만발이다. 김태연 작가는 전통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질곡을 건너 자신만의 현대적 언어로 관음 보살상을 꽃피우고 있다. 마치 간다라에서 돈황, 경주에 이르는 상이한 궤적의 도상처럼 차분하고 시크한 이미지로 고대와 현대의 이미지를 적절히 가로 짓고 있다.

낡고 오래된 흙의 질감 기반해
돈황벽화를 보는 듯 묘한 감흥
중앙아시아 벽화 묘미 살려내

김태연은 흙 벽화기법으로 과거의 형식을 빌려와 현대의 유행적 기호로 재연하고 분석했다.  낡고 오래된 고색창연한 흙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져 와 마치 실크로드 돈황 벽화를 보는 듯한 묘한 감흥을 받는다. 그런데 작가는 아직 돈황석굴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마치 ‘국화와 칼’을 저술한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처럼 오히려 가보지 않고 자료를 샅샅이 훑음으로써 일본을 관찰하고 정리하였듯이 작가는 중앙아시아 벽화의 묘미를 그대로 살려내었다.

작품 ‘슈퍼붓다’는 나무 패널에 마대를 씌워 붙이고 그 위에 반죽한 흙이 마르면 수간 채색을 하는 방식으로 그려졌다. 또 그려진 그림을 어느 정도 손상시킨 후 아교나 해초풀을 바르는 등의 공들인 작업의 결과물이다. 그래서인지 더 의미심장한 상징들로 읽혀진다. 전통적 도상인 천수천안(千手千眼) 관세음보살을 재해석해서 스마트워치를 착용하고 캡틴아메리카, 토르, 울버린 등의 친숙한 캐릭터의 무기들이 불보살의 지물(持物)로 재탄생하면서 강력한 생명력을 부여받고 활기를 띤다.

경건한 믿음으로만 보자면, 분명 낯설고 기이한 블랙코미디 한 편이다. ‘화엄경’에서 “지극한 믿음은 도의 근원이며 공덕의 어머니이요, 온갖 착한 행위에 이른 길을 키워준다”고 말하는 바와 같이, 작가는 맹목적인 숭고함이나 믿음이 아닌 고대의 흔적을 통해 전통 불화의 형식을 빌려 생주이멸(生住異滅)하는 믿음의 체계와 아름다움을 적용하고자 하였다.

언뜻 ‘슈퍼붓다’는 욕망의 집어등처럼 세간의 유행을 잔뜩 꿰차고 있다. 그것은 중생들의 욕망에 관한 도상의 나열처럼 치열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체적인 보살상의 존격을 누그러뜨리지는 않는다. 또 그것은 세상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고대의 흔적을 통해 믿어보고, 찾아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과 다르지 않다.

다만 간과해서 안 될 한 가지, 불교의 전통 불화 도상에서 이 모든 게 파생한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저 유명한 환타지나 SF의 서사 또한 불화(佛?)에서 보이는 다소 기이한 성스러움이 그 원조격으로,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 광배의 타오르는 불꽃, 아미타불 미간 백호에서 뻗어 나오는 자마금색 빛줄기 등 너무도 현란한 장엄한 표현들은 되려 지금보다도 더 유토피아적 감각이 물씬 풍긴다.

결과적으로 ‘슈퍼붓다’는 전통과 현대적 도상에서 오는 괴리감을 은유적으로 잘 승화하였다. 아마도 그 원천은 오래된 고전을 읽어내는 작가의 건강한 수행자적 작업 세계관의 열망이리라. 활짝 핀 이팝나무 꽃길의 오월을 걷노라면 마치 하얀 관음의 손들이 폭설처럼 짓눌린 어깨 사위를 흔들어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면서 자꾸 말을 건넨다.

‘날아라, 슈퍼붓다! Super Buddha!’

오월만큼은 어줍잖은 중생놀음도 머릿속 무간 지옥마저 지워버리고, 펄펄 마군을 무찌르는 용병 관음의 블랙코미디 한 편을 꿈꿔봄이 어떠냐고.

구담 스님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puoom@naver.com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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