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너와 내가 만나 숲이 되는 방법-하
33. 너와 내가 만나 숲이 되는 방법-하
  • 김용규
  • 승인 2017.05.30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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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이면서 홀로만 살지 않음으로 숲을 이룬다

정희성 시인이 ‘숲’이라는 시에서 개탄한 그 인간의 실태, ‘나무들은 제가끔 서 있어도 숲인데, 너와 나는 왜 서로가 만나 숲이 되지 못하는가?’ 지난 편에 이어 이번 글은 이 물음을 화두로 숲을 보겠습니다.

수단·목적 바뀐 삶 본질 놓쳐
제 것 아닌 것 욕망치 않는 숲
견제·균형 질서가 조화 이뤄내
주저없는 나눔은 다음 생 위함


각자로 살면서도 더불어 숲을 이루는 원리의 가장 중요한 지점은 바로 저마다 제 주인자리를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숲을 이루는 생명은 모두 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갑니다. 5월이 눈부시다 하여 3월 추운 시간을 제 주인자리로 삼는 앵초 같은 생명이 5월 따사로운 날의 눈부신 개화를 시샘하지 않습니다. 강줄기 모래나 자갈 자락을 붙들고 살아가는 갈대나 달뿌리풀 같은 생명이 물의 풍요를 누리고 산다 하여 산으로 날아든 억새가 제 험지의 삶을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서서 살아가는 생명은 선 채로, 기어가는 생명은 기어가는 삶으로, 날아다니는 생명은 날아다니는 삶으로…. 각자가 저마다 제 각각의 삶으로 숲을 이룰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제 것 아닌 것을 욕망하느라 제 주인자리를 놓치고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더 크고 화려하고 편리하고 빠르고 더 강한 것을 누리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상에 일생을 끌려가면서 소중한 하루하루를 허비하며 살아가는 삶의 개체들이 허다합니다. 그들은 수단으로 여겨야 할 것들을 목적의 자리에 놓고 사느라 삶의 본질적 의미와 마주하지 못합니다.

보십시오. 더 큰 집을 목적으로 삼는 이들은 집이 ‘사랑하며 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놓치기 쉽습니다. 덩그러니 큰 집은 가졌지만 그 공간에 사랑대신 단절과 침묵만 존재하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힘 또는 권력이 수단의 지위임을 잊은 자들의 눈 먼 권력욕은 그 힘으로 주변을 복되게 하는 것이 권력의 본래 목적이라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권력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고 산 자들의 인간 아닌 모습, 차라리 괴물이 되어버린 행태를 다양하게 목도해 왔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들 대부분은 제 것 아닌 것을 욕망하지 않습니다. 오직 제 것인 것으로 뿌리를 박고 다만 제 순결한 열망을 따라 살아냅니다. 낮은 공간이면 낮은 공간인 대로 높은 공간이면 높은 공간인 대로, 봄날을 사는 존재면 봄날을, 가을날을 사는 존재면 가을날을 살아갑니다.

각자로 살면서도 더불어 숲을 이루는 원리의 또 다른 중요한 지점은 바로 숲에 사는 생명 중 누구도 타자를 물들이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숲은 다양성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은 하나의 역사교과서로 역사를 읽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공간을 채우지도 않습니다. 제 소리가 더 곱고 예쁜 것이라고 꾀꼬리가 멧비둘기더러 탁음을 거두고 청음을 내야만 한다고 강요하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침범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중한 태도를 취합니다. 숲의 생명들은 누군가가 제 영역을 침범하고 억압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관용하지 않습니다. 숲에 사는 생명 각자는 사생결단의 자세로 제 영역을 지켜내려 합니다. 각자 제 고유함과 유일함을 가진 존재들이 자기를 침해하는 것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없습니다. 그 순수한 생의 본능들이 부딪히고 화해하는 지점에서 견제와 균형의 질서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냅니다. 그것이 숲의 경쟁이요 그것이 또한 숲의 평화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주저 없이 나눕니다. 꽃은 제 꽃가루와 꿀을 나누어 열매에 이르고, 열매는 제 소중한 과실을 나누어 씨앗의 발아 가능성을 열어냅니다. 한 생을 살아낸 개체의 전 생애는 제 마지막을 온전히 숲의 흙으로 되돌려 놓으며 자신이 살아냈던 터전을 비옥하게 바꾸어 다음 생들이 들어서고 번영하는 일에 참여합니다. 한 마디로 홀로이면서 홀로만 살지 않는 삶을 통해 숲을 이루어가는 것입니다. 눈부신 5월의 숲을 지나며 나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변화하고 있는 이 사회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 주인으로 깨어있되 기꺼이 연대하는 삶을 꿈꾸게 됩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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