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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행복의 기준

기자명 성원 스님

부탄 어린이와 한국 어린이 무얼 배우나

 
아이들과 무엇을 하려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하는 것이 일정조정이다. 처음 어린이들의 활동범위를 잘 몰랐을 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방과 후면 모든 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순진했다. 알아갈수록 그들의 일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일주일 내내 쉬는 날이 없다. 하교 후 수많은 학원으로 뛰어다닌다. 영어, 수학 이런 학원만이 아니다. 영재학원, 멘사학원, 바이올린학원, 피아노학원 등. 사투리경연대회를 준비한다고도 바쁘다.

쉴새없이 바쁜 우리의 아이들
좌판서 물건파는 부탄 아이들
행복 가치 다시 생각하게 해

아이들이 좋아하니 안 보낼 수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학창시절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가 배구선수가 되고 싶기도 했고 육상선수는 그나마 오랫동안 되고 싶었다. 생각보다 어린이들은 호기심이 많아서 여러 활동에 일시적 흥미를 가지다보니 어른들은 아이가 그러한 것에 소질이 있는 냥 착각하기 쉽다.

일전에 한 단원이 그만 두었다. 이유가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도 만나고 노래도 부르고 절도 좋다고 하는데 자모가 싫어해서 그만 두었단다. 일요일 아이를 절에 보내고 본인은 푹 쉴 거라는 생각에 보냈는데 자모활동이 너무 많다고 불평했다. 후일 좀 더 소상히 알아보니 일요일 충분히 늦잠도 자고 쉬기도 해야 하는데, 일요일도 절에 간다며 서둘러야했고, 몇 번 결석을 하더니 그만 두었다. 처음에는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의 일과를 가까이 바라보니 이해도 간다.

정말 한 명의 아이를 21세기 우리 사회에 온전히 적응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난다. 양육비는 단순히 직접 비용만이 아닌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이러한 사회구조가 바람직한지 되씹어 생각해본다.
어린 시절 삶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었다면 ‘심심함’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혼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할 일이 없어 이 긴긴 시간을 무얼 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 심심함에 짓눌려 한숨을 쉰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도서관엔 책도 몇 권 없고, 교과서는 받는 날 다 읽어봐 버리고, 인터넷도 텔레비전도 없는 시절이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 시절이 마냥 문제시만 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사유가 유일한 즐거움일수 밖에 없었던 시절에 자라서 인지 사색적인 종교와 쉽게 친해졌고, 지금도 삶을 관조하는 습관이나 사람들과 인생 토론을 하며 출가자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그 시절 피동적으로 해야 했던 사색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부탄에 가면 행복이라는 거대한 주제에 몰입되어 여정을 진행하게 된다. 푸나카 지역의 치미라캉사원을 참배할 때였다. 어린아이들이 좌판을 깔고 소품을 팔고 있었다. 물론 배낭족들이 무더기로 다니는 인도나 캄보디아의 어느 시골처럼 서두르지도 강요하지도 않아 그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긴 했지만 어린아이들이 여과 없이 여행객들 앞에서 판매를 한다는 것은 부탄에서 처음 접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다루어야 할 그림과 소품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좌판에 두고 있었다.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봐야 했고, 그들의 먼 미래를 관해봐야 했다. 그들은 바쁘기 그지없는 리틀붓다와 비교할 수 없는 적은 정보를 접하고, 나의 어린 시절처럼 학습의 기회도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어린이들의 행복을 위해, 행복한 미래를 위해 늘 추구했던 가치관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바쁘기만 한 우리 어린이들과 학교도 가지 않고 멍하니 먼 산만 바라보는 두 종류의 아이들이 후일 우리 지구, 우리 세상의 주인공이 되어 화목하게 살아 갈 수 있을까? 자꾸 되돌아보게 되는 발길을 뒤로하며 돌아오면서 내 나름 행복의 기준으로 그들의 행복한 삶을 축복해야 했다.

축복하고 축복받는 일이 마냥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님을 히말라야 먼 산중에서 맘속에 지니고 돌아와야 했다. 마른장마에도 근심 없이 행복하기만 한 아이들이 더욱 정겹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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