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민주화운동 가담
총무원 입사는 삶의 전환점
사실 불교와 인연을 맺을 기회는 앞서 몇 차례 더 있었다.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1985년 동국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면서 상경했다. 낯선 환경이 두렵기도 했지만 대학생활은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교정에 걸린 연등을 보고 불교학생회 써클룸으로 발길을 옮겼다. 친숙하기만 했던 불교를 깊이 배워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써클룸에서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연등 만들기가 한창이었다. 선배들 틈에 끼여 연잎을 접으며 그 분위기에 젖어들었다. 그러나 불교학생회 활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 무렵 대학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대학생들에게 민주화 운동은 선택이 아닌 의무에 가까웠다. 내가 속한 정외과는 유독 더했다. 교실보다는 시위현장에 나가는 일이 더 많았다. 차츰 선배들과 사회문제를 토론하고 관련 책을 읽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럴수록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졌고, 민주화를 이뤄내겠다는 정의감도 생겨났다. 한켠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에서의 아련한 기억도 떠올랐다.
1980년 중학생 눈으로 목격했던 광주는 처참했다. 전쟁영화에서나 볼 듯한 참혹한 광경이 연일 눈앞에서 연출됐다. 헬기를 탄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을 쐈고, 이에 저항한 시민들도 나중에는 총을 들었다. 하루하루가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많은 책을 읽고 시위현장에 나가는 날이 늘면서 차츰 5년 전 광주를 이해하게 됐다. 그때 함께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부채감도 생겨났다. 학생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했다. 시위가 있는 날이면 누구보다 앞서 나갔다. 자연스럽게 경찰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89년 3월 민정당사 검거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돼 복역하기도 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자연스럽게 노동현장에 들어가려고 했고 다행히 수도권 공단 지역에 어렵게 취업할 수 있었다. 프레스 공장에서의 일은 낯설고 힘들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무렵 노동 현장에서는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을 반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진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 운동했던 동료들의 상당수도 이미 정치권으로 발길을 돌린 상태였다. 국회보좌관으로 일하자는 제안도 종종 들어왔다.
그러던 1994년 7월 어느 날, 전화벨이 울렸다. 대학생 때부터 알던 스님이었다.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에 일손이 부족하니, 함께 일을 해보자고 했다. 벌써 두 번째였다. 불교에 대해 아는 것도, 이렇다 할 신행활동도 해본 적이 없었던 내가 불교 일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을 고사했으나 거듭된 스님의 권유를 마냥 뿌리칠 수만도 없었다. 결국 입사원서를 냈고, 면접을 거쳐 그해 8월 공채 1기로 총무원에 입사했다. ‘딱 1년만 함께 하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 이렇게 20년을 훌쩍 넘겼으니 이것이 바로 불연일까.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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