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대소처·분다리가처
29. 대소처·분다리가처
  • 김성순
  • 승인 2017.08.14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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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생 긍정한 죄업 없어질 때까지
자꾸 되살아나는 불구덩이 형벌

이번 호에서는 먼저 초월지옥의 첫 번째 별처지옥인 대소처(大燒處)에 대한 얘기부터 시작해보기로 하겠다. 이름부터가 ‘대소(大燒)’, 즉 큰 불이 난다는 곳이니, 특별히 열로 인한 고통을 겪는 지옥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동물희생 브라만교 겨냥해
불교 불살생계 강조 의도
수백 생 거쳐 고통 받지만
인간 몸 또 받기는 어려워


근본 초열지옥의 주요 업인이 ‘사견(邪見)’이므로, 이 대소처로 떨어지게 되는 업인 역시 사견과 관련되어 있는데, 특이하게도 “살생의 인연으로 천상에 난다”고 믿는 견해이다. ‘정법념처경’의 ‘지옥품’ 한역 원문을 보면 이 부분이 “所謂有人作如是見, 殺生因緣得生天”으로 되어 있다. 경에서는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아마도 고대 인도에서부터 전승되어 온 브라만교 등의 희생제의가 불교의 불살생의 계율과 충돌하는 지점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 희생제의를 지내는 과정에서 살생의 업을 지은 자들이 이를 다른 이들에게까지 권유하는 것이 이 대소처에 떨어지게 되는 주요 업인인 것이다.

이곳의 죄인들은 전생의 악업으로 인해 몸 안에서 저절로 불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 뜨거운 정도가 이루 말할 수 없으며, 다른 지옥불이 이곳에 비하면 16분의 1 정도로 느껴진다고 한다.

또한 대소처의 죄인들이 겪어야 하는 또 다른 불이 있으니, 바로 ‘뉘우침의 불’이다. 죄인은 이 지옥에 와서야 자신이 겪는 고통이 전생의 사견 때문임을 깨닫고 번민과 후회에 휩싸이게 되며, 그러한 뉘우침이 또 다른 불이 되어 그를 태우고 삶게 되는 것이다.

길고 긴 시간 동안 대소처의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을 당하던 죄인이 마침내 그 업이 다하여 지옥을 벗어나게 되더라도, 300생 동안 아귀도에 태어나고, 이후에 200생을 축생도에 태어나게 된다고 한다.

다음으로, 초열지옥의 두 번째 별처지옥인 분다리가처(分茶梨迦處)에 대한 얘기를 해보기로 하겠다. 지옥명으로 붙은 ‘분다리가(分茶梨迦)’는 ‘푼다리카(Pundarika)’, 즉 연꽃을 의미한다. 그런데 왜 고통스러운 지옥에 아름다운 연꽃의 이름이 붙게 된 것일까?

이 지옥에 떨어진 죄인은 온몸에 불꽃넝쿨이 생겨나서 겨자씨만큼의 틈도 빠지는 곳이 없이 불에 타게 된다고 한다. 한량없이 불에 타는 와중에 죄인은 맑은 연못 위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연꽃을 보게 되며, 바로 이러한 환상 때문에 ‘분다리가’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어서 이 시원한 연못으로 오라고 부르며 위로하는 옥졸의 부름에 죄인이 정신없이 달려가면 맑은 물과 연꽃은 간 곳이 없고, 뜨거운 불이 이글거리는 어두운 구덩이가 있을 뿐이다. 죄인은 그 불구덩이 안에서 타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수없이 반복하게 되며, 거기에서 벗어나서 도망가더라도 곧 길에서 불에 타고 있는 막대에 잡혀 비틀려서 육신이 흩어지게 된다. 지옥에서는 자의에 의한 죽음 혹은 물리적인 죽음이 불가능한 지라, 그렇게 불타서 흩어진 죄인의 육신이 다시 살아나게 되면 이전의 고통을 잊어버리고서 다시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분다리가가 피어있는 연못을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죄인이 힘들게 간 그 연못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시원하고 맑은 물이 아니라, 사람의 살을 파먹는 벌레들이다. 지옥의 벌레들은 죄인에게 달라붙어 눈알과 살을 파먹는데, 없어지고 손상된 육신이 시간이 지나면 이내 다시 생겨나는 것이 지옥의 특성이라, 죄인은 끝없이 먹히고 다시 살아나서 또 먹히는 고통을 반복하게 된다.

벌레들을 피해 도망한 죄인들은 연못 한가운데 높이 솟은 분다리가 나무 위로 올라가지만 실은 이글이글 타는 불덩어리가 분다리가 꽃처럼 착시를 일으키는 불꽃기둥이다. 나무에 오르자마자 불꽃넝쿨에 휘감긴 죄인들은 그렇게 또 길고 긴 시간동안 뜨거운 고통에 시달리며 전생에 사견으로 지은 죄업이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 만일 그 악업이 다한 후에 지옥을 벗어나게 되면, 그 후 400생에 걸쳐 아귀도에 태어나고, 다시 또 300생 동안 축생도에 나게 되며, 거기서 다시 인간의 몸을 받는 것은 거북이가 널판자 구멍을 만나는 것보다 힘들다고 한다.

김성순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연구원 shui1@naver.com
 

[1403호 / 2017년 8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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