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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의 책이야기-《떠도는 돈황》

기자명 법보신문
  • 불서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한 불교인문주의자의 초상


인문학 맥락에서 불교탐구…특유의 논리 돋보여

일지(一指) 스님 지음
해인사출판부 펴냄

가는 곳 곳곳마다 주인이 되라
-임제, 《임제록》

《떠도는 돈황》(해인사 출판부, 1993)은 크게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선불교〉, <문학과 불교〉, <중국불교의 어제와 오늘〉, <현대불교의위상〉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문학과 불교˙선˙고전 속의 인간탐구 그리고 현대불교의 여러 문제들"(뒷표지)에 걸친 저자의 방대한 관심을 모두 담고 있는 것이다.

떠도는 아웃사이더

작가론으로부터 《떠도는 돈황》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일지(일지)는 다르다. 일지, 그는 도대체 누구인가? 스님인가?비구의 옷을 버린 그는 "구족계를 버리고 친히 노동하였던"(199쪽) 삼계교(三階敎)의 신행(信行, 540~594)스님을 본받고 싶었는 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학자라고 할까? 그 역시 한문적으로 평가 받을 수 있는 정치한 글을 쓰고, 학문적인 공부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에게는 모독이될 것같다. 그 스스로 "나 자신의 경우를 거론하기에는 외람스럽지만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도대체 불교학이란 이런 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승가에 속한 수행자의 불교 인식은 강단 교학과는 다른 선명한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280쪽)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인가? 그 대답은 이렇다.
불교 인문주의자!
그는 《떠도는 돈황》의 부제 <불교문학과 선으로 본 오늘의 불교인문주의〉속에서 그 스스로가 불교인문주의자임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불교인문주의는 또 무엇일까? 근래, 인문학(人文學) 전통의 부활을 촉구하는 인문과학자들이 늘고 있다. 인문학은 문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하나로 아우르는 통합적 방법론을 통하여 해당분야의 공부를 행해야 한다는입장을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같은 인문학의 맥락속에서 불교를 탐구하고자 일지는 시도하고 있는데, 그같은 새로운 시도를 `불교인문주의'로이름한 것이다.
불교인문주의, 그렇게 표방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그러나, 오늘의 불교계나 불교학계는 아직 `불교인문주의'에 대하여 시민권을 발급하지 못하고있다. 그는 빠르고, 우리는 늦다. 그런 면에서 떠도는 아웃사이더의 고독을 겪지 않을 수 없는데, 그는 또 기꺼이 `고독의 달인'이고자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웃사이더만이 기존의 부패한 삶을 비판하고 극복할 수 있는 강렬한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아웃사이더의 특권이다. 때로는 정통을 자처하는 편협한 정통주의자의 위선과 자만보다는 아웃사이더의 존재가 더 값질 수가 있는 것이다."(198~199쪽)

불교인문주의의 뿌리

책은 자료와 논리의 아들이다. 자료는 이미 생산되어있는 것이고, 논리는그 책의 지은이가 갖고 있는 특유의 시각이나 안목이라 할 수 있다. 요즘, 많이 말하고 있는 정보화는 정보[=자료]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하는 폐단을 초래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정보가 아니다. 그런, "문(門)으로 들어온 것은 보배가 아니라"하지 않는가. 정녕, 중요한 것은 논리이다. 한 책이 정보만 담고 있다면, 그 책의 수명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그 책 속에 실려있는 정보가 다른 책 속에도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지은이가 갖고 있는 특유의 논리, 그것은 그 책의 생명이 된다. 일지의 《떠도는 돈황》 역시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 다른 데서 얻기 어려운 정보도 있다. 예컨대, 현대 중국의 불교 인식에 대해서는 아직도 그의 글 《현대 중국의 불교 인식》 밖에서는 보지 못하는 자료를 담고 있다.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일본 불교인들의 모습을 전하는 <불교를 안락사 시킨전시 일본의 황도불교〉, 세계적 선종사학의 거두 김구경(金九經)의삶을 전하고 있는 <근대 선종사학의 거두 계림 김구경〉 등이 갖는 자료적 가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료보다는 그 특유의 논리에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세가지 점만 지적하기로 하자.

첫째는 그의 전공이라 할 수 있는 중국 선불교의 선승들에 대한 탐구를 통해서 얻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주적 인간관이다. "현실과 체제를 넘어선 인간 그 자체의 근원적인 종교성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당대 선불교가 선종 교단만의 불교가 아니라 한 시대의 자주적인 인간정신을 고양시켜온 압도적인 인간신뢰의 사상이었음을 보여준다."(64~65쪽) 이는 그가 추구하는 불교인문주의의 철학적 기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이분법(二分法)의 극복을 통한 회통(會通)의 확립이다. "지금 우리 불교계에는 이상한 이분법적 한정을 당연시 여기고 있다. 그것은 곧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선(禪)과 교(敎),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적 한정이다. …바로 불교 특유의 실천적 행법을 가로막는 것이자 우리 자신의 한계인 것이다."(210쪽) 이러한 회통(會通)은 그가 존경하는 원효와 신행이힘써 행했던 입장이었음은 물론이다.

셋째는 자주적 인간관의 실현을 위한 불교운동에 대한 비판의식이다. 그는 사회적 억압 역시 인문주의적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섣불리 사회과학에입각한 방법론을 불교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비판한다. <현대 중국의 불교인식〉을 통하여 역사 유물주의(=사적 유물론)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려는 관전(=일부 민중불교운동가의 관점)에 비판을 퍼붓는 것(228~231쪽)도 그같은 입장에서이다. 그가 `선의 구상적 실천, 곧 선바라밀(禪波羅蜜)'(268쪽)을 요구하는 것이나 삼계교(三階敎)를 주목하면서 `신삼계교(新三階敎)'(235쪽)의 창출을 기대하고 있는 것도 다 사회과학적 불교운동에대한 대안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런 점에 볼 때, 일지는 《창작과 비평》보다는 《학문과 지성》의 독자였을 것같고, 앞의 《예루살렘입성기》를 통해서 살펴본 서여학풍(西餘學風)과도 맥이 닿는 것으로 생각된다.

김현과 일지

그의 정신적 스승 중에 한 사람으로 김현의 이름을 기억해야 할 것같다. <김현의 문학과 불교〉를 쓴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문학을 공부한 김현의 돈오(頓悟)는 바로 그가 `새것 컴플렉스'라고 불렀던 것으로부터의 해탈이라 볼 수 있다. 김현, <한 외국문학도의 고백〉, [《김현문학전집 ③》참조].

이같은 태도는 고독한 아웃사이더인 일지에게서도 볼 수 있다. 특히, 일지가 보는 우리 불교의 `새것 컴플렉스'는 일본을 그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불교대학의 박사학위를 선호하는 우리의 학계와 일본 불교서적의 무비판적 출판 열기"(276쪽)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일지 역시, 일본 불교학계의 공로와 수준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행한 지나친 일본 편향에 대한 비판은 자료 측면의 수용만이 아니라 논리적 입장에서도 우리 것을 만들어내지 못함에 대한 반성일 것으로 생각된다.

"자생적인 불교해석의 체계를 수립하지 않으면 불교 사회화운동 내지는 포교활동에 혼선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257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자생적 불교해석의 체계'를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의 대답은 `우리의 사회적 현실과의 부단한 대면'(257쪽)이라고 말한다. 나로서는, 순수하게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자생적 길이 있을 수 있다고생각하지만, 역시 그가 제시하는 견해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선불교를 보는 관점에 있어서 그와 나는 비슷하다. 선종학(=선학)의 대상과 범위에 대한 정의(16쪽), 선을 형성시킨 교학의 배경에 대한 중시와 선과 교를 함께 닦아야 한다는 입장(211쪽) 등은 견해를 같이하는 부분이다.

또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은 80년대 나의 모습에 대한 질책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김구경의 삶을 발견하여 정보를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다. 일지의 <근대 선종사학의 거두 계림 김구경〉과 김구경선생이 교간(校刊)한 《당사본 능가사자기》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워 했는지 그는 알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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