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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박물관 넘어 국민 박물관을 지향하다

  • 교계
  • 입력 2017.08.28 14:40
  • 수정 2017.08.28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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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의 미래’ 꿈꾸는 화엄사 성보박물관

▲ 불이문을 지나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화엄사 성보박물관. 아담한 규모지만 알찬 구성으로 관람객들을 이끌고 있다.

불이문을 지나 화엄세계로의 여정에 첫 발 내디딘 이를 가장 먼저 반기는 건 성보박물관. 오르막길 너머의 웅장한 전각들에 앞서, 단아한 자태로 지리산 품에 안긴 모습은 자연의 일부분인 듯 정감 있게 다가온다. 누구든 부담 없이 발걸음 돌려 향하도록 만드는 소탈한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안으로 들어서면 여느 성보박물관과는 다른 이색적 풍경이 또 한 번 눈길을 사로잡는다. 안내데스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구(茶具) 놓인 얕은 책상이 있고, 사람들이 모여 차를 마시고 있는 것. 잠시 앉아 목을 축이며 지친 다리를 쉬거나, 성보에 대한 궁금증도 풀 수 있어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낮은 자세와 열린 공간에 대한 추구가 곳곳에 스민 이곳은 조계종 제19교구본사 화엄사의 성보박물관이다.

덕문 스님 주지 취임 이후
소통 중심의 대대적인 변화
공간 재구성·현대미술 전시
화엄석경연구소 설립 추진

화엄사가 변하고 있다. 5월9일 덕문 스님이 주지 임기를 시작한 뒤 “조계종의 미래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 아래 변화의 깃발을 들어올렸다. ‘교구의 원융화합’ ‘본·말사 상생 실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노후 수행환경 마련’ ‘세대·지역별 포교 전략 수립’ ‘불교문화 부흥과 지역경제 활성화’ ‘수행문화공동체 실현’의 6가지 과제를 제시하고 실현을 위한 우직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성보박물관은 화엄사가 지향하고 있는 소통·조화를 집약한 상징으로서, 변화의 물줄기를 도량으로 흘려보내는 수원지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 현대미술작품들이 전시되게 될 로비.

화엄사 성보박물관의 변화에 있어 눈에 띄는 건, 우선 관람객 수 급증이다. 현재 평일 200~300명, 주말 900~1000여명이 화엄사 성보박물관을 찾고 있다. 지리적 여건을 생각해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나아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많은 이들이 방문하게 될 거란 기대까지 커지고 있지만, 사실 화엄사 성보박물관은 이전까지만 해도 문이 닫혀있을 때가 많았다. 법으로 규정된 기간을 제외하고 개방하지 않았기에 성보박물관이라기보다 수장고에 가까운 기능을 수행했다. 그러던 것이 덕문 스님의 주지 취임 이후 월요일을 제외한 모든 날 문을 여는 명실상부한 성보박물관으로 변모했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이후 성보박물관은 화엄사의 지향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공간 재구성을 꾀했다. 안내데스크 대신 차담의 공간을 조성했으며 자동문을 설치해 관람객들의 편의를 도모했다. 무엇보다 성보의 공간과 일반예술의 공간으로 구역을 재배치한 것은, 화엄사 성보박물관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관람객들이 들어오면 먼저 마주치는 것은 차담 공간과 로비인데, 로비는 현대미술작품들이 전시될 공간으로 활용된다. 9월15~17일 화엄음악제의 일환으로 9월9~30일 진행되는 송창애 작가의 ‘waterscape 무가보주 無價寶珠’가 그 시작이다.

▲ 로비 안쪽의 성보 전시 공간.

사찰 성보박물관에서 현대미술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다소 이질적 풍경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나 화엄과 물이 지닌 소통·조화의 메시지가 화합을 이뤄 관람객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화엄사 성보박물관은 화엄의 정체성과 부합된다면 대관을 허용하겠다는 계획이다.

국보 제301호 영산회괘불탱을 퍼즐로 만든 것도 소통을 위한 노력이다. 영산회괘불탱은 화엄음악회 기간 동안 대웅전 앞에 걸릴 예정인데, 이때 관람객들은 성보를 참배하고 바라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퍼즐을 맞춰가며 보다 가깝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 화엄사 성보박물관장 대진 스님.
여기까지가 소통·조화를 위한 노력이었다면, 앞으로 추진할 사업들은 화엄의 본질을 시대에 드러내어 그 중심에 서기 위한 정체성 불사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세계에서도 화엄을 떠올리면 화엄사를 연상시킬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성보박물관장 대진 스님이 불사도감을 겸직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화엄사는 성보박물관의 영역을 전 도량으로 확장했다. 그야말로 ‘광의의 성보박물관’이다. 적극적인 소통으로 ‘불교의’ 혹은 ‘스님들의’ 소유로 인식됐던 문화재를 국민들에게 돌려주려 하는 화엄사의 노력은 ‘광의의 성보박물관’ 개념과 맞물려 의미가 완성된다. 구체적으로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사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 각황전(국보 제67호), 영산회괘불탱(국보 제301호)을 비롯한 숱한 화엄사 성보들은 향후 구축될 인터넷성보박물관, 스토리텔링, 플래시애니메이션을 통해 도량 곳곳을 새롭게 장엄하게 된다. ‘알아서 보고 가라’가 아닌 ‘느끼고 가슴에 담아 가도록’ 현대기술을 접목하여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지향은 궁극적으로 보물 제1040호 화엄석경의 온전한 복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화엄의 전설이 알알이 녹아 있는 화엄사에서도 장육전(현 각황전) 벽을 장엄했던 화엄석경이야 말로 정체성을 드러내줄 수 있는 대표적 성보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파괴돼 지금은 9000여 조각으로 나뉘어 화엄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화엄사 성보박물관은 차후 화엄석경연구소를 설립해 화엄석경 복원을 너머 남악화엄의 기치를 이 땅에 다시 한 번 아로새기겠다는 계획이다. ‘화엄석경’ 주제의 세미나를 매년 한 차례 열겠다는 것도 그 일환이다.

▲ 안내데스크 대신 설치된 차담 공간.

화엄사 성보박물관의 변화와 지향은 작지만 의미 있는 결실을 일궈내고 있다. 문화재관람료에 대한 관람객들의 불만이 사라지다시피 한 것이다. 3500원이라는 관람료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항의를 하곤 했지만, 이제는 대부분 성보박물관을 방문한 뒤 웃으며 화엄사를 나선다. 성보박물관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이 도량으로 점점 흘러나가, 문화재관람료에 합당한 가치를 제공하는 사찰로 일신시키고 있는 것이다. 2017년의 불교는 2017년의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그 대답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의 화엄사 성보박물관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화엄사 성보박물관장 대진 스님은 “건축불사 위주의 사찰 운영은 이제 더 이상 시대와 호흡할 수 없다. 사찰의, 스님의 문화재였던 것을 국민들의 문화재로 환원시키는 것은 이 시대 불교가 마땅히 지향해야 할 지점”이라며 “형식적 사찰 운영의 틀에서 벗어나 실제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은 성보와 그것을 조성한 조상들의 정신을 이어받고 후대에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례=김규보 기자 kkb0202@beopbo.com
 

[1405호 / 2017년 8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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