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앉아 내면의 세계에 몰입한다. 남자같은 왈가닥 성격이 차분히 가라앉고 삼매에 들어간다. 한 곳에 잠시 있지 못했던 내가 참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큰 가피를 입었기에 가능했다. 장사를 하며 아들을 키웠기에 성격이 남자같아졌다. 먹고 살일에 쫓기니 절에 가면 "제게 복주십시요. 가정이 화목하게 해주십시요"등 삼배만 올리고 절을 뒤로 하곤 했다. 그러나 이제 불법을 알게 되니 나보다는 다른이들의 안녕을 먼저 생각하게 됐다. 법왕사 법회에 다니면서부터 잘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내게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절은 내 자신의 복과 가정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곳이 아님을 알게됐다. 나보다는 남을 위하여 또 욕심을 버리고 정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구공덕원 청년회(회장 박용권)는 지난 19일 공덕원 법당에서 `제7회 청년불자의 밤' 행사를 개최했다. 대불청 중앙회장 이상번씨와 대구지구장 김상길씨 등 2백여명의 청년회원이 함께 한 이날 행사는 부산 공덕원 효선스님의 `열린마을'을 주제로한 강연과 2부 레크리에이션의 순서로 진행됐다. 대구공덕원 청년회원들은 이 자리에서 "앞으로 각 지역 청년회와 굳건한 유대관계를 통해 대구지역 불교발전에 큰 힘이 될 것"을 다짐했다.
충청도 계룡산 기슭 두메산골… 60여호되는 마을의 절반 이상이 아침나절에연기가 오르지 않을 정도로 지을 양식이 없어 초근목피로 연명했던 나의 어린시절이 있었다. 특히 해마다 봄이면 보릿고개로 어려움은 극에 달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나의 어머님은 절에 큰행사가 있는 날이면 뒤뜰 장독대 항아리 속에 곱게 묻어둔 귀하디 귀한 흰쌀을 하얀 광목 자루에 담으셨다. 그리고는 그것을 머리에 이고 동학사까지 이십여리나 떨어진 계룡산 험한길을 다니시던 기억이 난다. 매일 새벽이면 아버지의 천수경 소리에 단잠을깼던 일들은 나의 마음 한구석에 작게나마 불심의 싹이 트기에 충분한 것이아닌가 생각된다. 그후 결혼 후에는 아내가 어머니의 대를 이어 열심히 절에 다녔으나 나는 일년에 몇 번 큰 행사가 있는 날에만
김영삼대통령은 토지실명제를 실시하면서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에게 고통을 주겠다고 했다. 이 말은 토지를 투기목적으로 과다하게 보유하고 있는 투기꾼을 향한 경고였다. 그러나 이 경고는 엉뚱하게도 토지의 투기와는 아무런 관계없이 수 십년, 수 백년, 또는 천 여년전부터 불교의 종교목적을 위해서 전해 내려 온 사찰의 토지를 강타하고 있다. 그 결과 사찰은 투기와 상관없는 종교목적을 위한 토지를 팔아서 세금을 내야 하는 형편에 놓이게되었다. 실제로 조계종 총무원이 최근 집계한 조계종 소속의 사찰에 부과된 종합토지세와 토지초과이득세 등 토지관계세금은 8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미쳐 세금을 내지 못한 사찰은 토지가 압류되었거나 이미 경매처분된 예도 있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조세제도는 사찰의
정부의 공식 집계에 나타나 있는 것을 보면 한국의 종교별 인구 비율은 50.7%다.(1997년, 통계청 발행
중앙신도회장의 `돌출행동' 지난 16~19일 조선˙한국˙경향˙중앙일보 광고난에는 "지금까지의 북한동포식량돕기운동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광고가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 송재건' 명의로 게재되어 교계를 경악케 했다. 이 광고를 접한 교계의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선우도량, 전국승가대학학인연합, 교수불자연합회등 9개 불교단체는 즉각 "분노를 넘어 슬픔을 감출 수 없다"고 전제하고 "신도회장의 정치적 배경과 행보에 대한 우려에 의심을 더할 수 밖에 없다"고 규탄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아사지경에 처해 있는 북한동포들의 참상은 그동안 UN과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적인 여러기관 그리고 외국의 유력한 언론의 확인보도로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마침내 국제적인 북한식량돕기가 전개되고 있다. 이에 굶
굶주려 죽어가고 있는 북한동포를 살리자는 식량돕기운동에 우리 불교계의 30여개 단체가 발을 벗고 나선 마당에 참으로 해괴한 광고가 일간신문 광고란에 16일, 17일 연거푸 실려 평지풍파를 일으키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중앙신도회 회장 송재건'명의로 게재된 기천만원짜리 광고는 `지금까지의 북한동포 식량돕기운동은 수정되어야 한다'는 제하에 "북한당국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때가 아니다. 시급한 것은 북한주민에게 우리가 직접 구호식량을 전달할 수 있는 통로 개설이다"라고 주장하면서 "부처님께서는 베푼자는 절대로 반대 급부를 바라지 말것이며 은혜를 입은 자는 결코 잊지말라고 말슴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이 두 성현의 말씀의 뜻은 베풀어 은혜를 전제로 한 말씀이
"보살님! 발원문좀 낭독 해주시지요"라는 부탁을 거두어 가기라도 할까 선뜻 대답해 놓고 한편으로는 "그것 쯤이야…" 하는 자신에 차 있었다. 여름에 완공된 법당 앞의 공덕비 제막식 때였다. 학창시절에 웅변이나 축사 답사를 자주 해온 터라 그 후로도 내 글 읽는 억양은 힘이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는 까마득히 지난 일이다. 그다지 길지 않을 발원문을 떠올리며 마이크의 매끄러운 음향을 감미롭게 타리라는 잔잔한 흥분도 일었다. 그러나 여러 대덕스님들을 모신 자리에서 몸이 굳는것 같이 긴장이 되고 억양은 격앙되어 떨리는듯 흐느끼듯 아예 허기진 음성이 나를 비참하게 했다. 몇줄의 낭독이 결코 많지 않은 관중에 위축 된 촌스러움 이라니 기껏해야 작은 실력의 치부를 드러내놓고
질문 지난 주 질문하신 심우도의 계속된 대답입니다. 대답 (6)기우귀가는 소년이 소 등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가는 그림입니다. 이때는 서로가 서로를 이미 구속하지 않는 단계이지요. 그러나 과연 소년이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소가 소년을 태우고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매사를 일방적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때로는 상대의 입장에 서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여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7)망우존인은 소는 보이지 않고 소년의 모습만 있는 그림입니다. 실은 소는 나의 본성을 찾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진리라는 것을 마치 성인이나 부처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나에게는 직접관련이 없는 것 같이 이야기하고, 불교는 출가한 스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에 진리가 나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이 진리로서만 있을 뿐이라면 모든 중생들에게 종교라든가 부처님의 가르침은 필요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진리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내 자신이 진리입니다. 겨울이 아무리 춥고 길더라도 봄은 반드시 오고우리가 영원히 늙지 않고 죽으려 하지 않아도 그럴수 없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모든 행위의 과보는 자신이 받는 것입니다. 복을 받고 안 받는 것도 내 업에따르는 것입니다. 업의 종자를 잘 심으면 좋은 과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좋은 씨앗을 심었다 하더라도 잘 가꾸지 않으
불교방송 성금이 돈으로 보이더냐-상처받은 불심은 어디서 보상하나 불교방송 BBS. 우리들의 불교방송이 정말로 만들어져서 첫 공식 전파를 발사했을 때, 우리는 정말 얼마나 감격했는가! 손바닥만한 FM라디오에서 "여기는 불교방송입니다. BBS- 잠시 후 아침 예불이 있겠습니다." 이런 멘트를 들을 수 있었을 때, 우리는 참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해 목이 메었었다. 라디오 스위치만 켜면 부처님의 자비로운 가르침을 들을 수 있고, 포근하고 청아하고 감미로운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고, 산사의 풍경소리, 장중한 범종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우리는 참으로 기쁨과 환희심으로 눈물을 흘렸다. 그래서 80세 노보살님도 당신의 용돈을 불교방송을 위해 내놓으셨고, 노점상거사님도, 박봉의 거사님도, 택시기사
【공주】국립공주박물관이 지난 1일부터 내년 4월 8일까지 1백29일동안 임시휴관을 하게된다. 국립공주박물관의 이번 휴관은 지난 73년 10월 개관된 이후, 노후한 시설의 개.보수공사와 진열장 및 조명시설의 대폭적인 보수를 위해 결정된 것이다.
올해의 `부처님 오신날' 봉축기간이 지난 8일, 북녘 땅이 멀리 바라다 보이는 경기도 포천 까치봉 정상의 부처님오신날 봉축탑에 등불이 밝혀지면서 시작이 되었다. 우리가 굳이 부처님 오신날을 봉축하는 법등(法燈)을 북녘땅을 향해 밝힘으로써 봉축 시즌을 시작하는 것은 그 북녘땅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유독 두루 퍼져 있지 않기 때문이며 그 곳의 우리 동포가 아직도 어둠속에서 갖가지 고난을 겪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의 광명을 전해서 부처님 오신날의 기쁨을 함께 나누고 또한 함께 봉축하기 위해서이다. 경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이승에 오실때, 아수라와 싸워서 이겨도 기뻐하지 않은 하늘의 신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추며 손뼉을 치면서 비길데 없이 기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까닭을 묻는 아시
【경주】지장보살 `김교각스님'의 동상이 스님의 고향인 경주땅에 세워질 전망이다. 김교각스님 일대기 출판기념법회 등에 참석키 위해 한국을 방문했던 중국 안휘성 불교협회장 인덕스님과 중국불교계 대표 4인은 지난 11월27일 이의근 경북도지사를 만난 자리에서 중국측의 비용부담으로 김교각스님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이에대한 이의근 도지사도 불교계와의 협의를 통해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실천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월간
지난 9일 총무원 주최의 대규모 방생법회가 팔당호 부근에서 열렸다. 이 시대 참된 방생의 표본을 제시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수도권 식수원인 `팔당호 살리기 수중 대청소', `1만 불자 통일발원 쌀탑쌓기'등의 행사를 기획했으나 모두 취소된채 물고기 몇마리만 형식적으로 방생한 뒤 끝났다. 문체부의 방생자제 협조요청과 언론의 우려를 의식했음인지 신도들이 가져온 거북이며 미꾸라지들을 회수했고 강 주변에는 자원봉사자들을 배치, 개별적인 방생을 막았다. 물론 수질오염 감시단 등의 기관에서도 법회장 주변에서 감시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의심어린 눈총을 받아가며 개최한 이 행사는 남한내에 있는 2백만이 넘는 절대빈곤층과, 한국인들에게 사기피해를 입고 절망에 빠진 중국동포들, 아사위기에 처한 북한동포들을 돕기위한 정재를
군승의 날 27주년 기념법회가 군불교진흥회 주최로 지난달 30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봉행됐다. 이 법회에는 성타(조계정 포교원장), 도암(대승종 종정), 법타(조계종 총무부장), 도원(천태종 총무부장), 원혜(조계종 포교부장)스님과 임봉준(전국방부 군종실장), 강남석(군승단장), 박상길(군불교진흥회 회장), 최영희(성불회 회장)씨등 5백여명이 참석했다.
퇴근길 올려다보는 하늘은 어느 스님의 장삼자락 마냥 짙은 잿빛이고, 저 끝어딘가에 닿아 있을 마음 한 자락을 찾아보지만… 무(無). 오늘도 이렇듯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 행복하고 감사함으로 하루를 보내고 내생활의 쉼터인 집으로 향하고 있다. 문득 바람소리에 처음 절에 들여놓던 발자국소리가 나를 이끌고 그 뒤를 이어 지나온 길이 기억의 저편에서 노크를 한다. 참 어둡던 나날이었는데 지금의 나에겐 어둠이란 있을 수가 없다. 산다는 것은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니까. 누가 어떻게 불교에 입문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막연히 `할머니 따라서'라고 대답을 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할머니 따라서 절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어쩜 전생의 인연에 의해 자연히 맺어지지 않았나 싶다. 절이란 내게 있어 막연한 그리움이었으니까.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성북구청으로부터 위탁받은 길음1동 어린이집(원장 이영선) 개원식이 지난 1일 동 어린이집에서 열렸다. 길은1동 어린이집은 지상2.3층에 어린이 64명을 위한 놀이방 공부방 시설 등을 갖췄다. 개원식에는 원소(조계종 사회국장), 광명(청교련 서울지부 지부장)스님과 진영호(성북구청장), 이용권(사회복지재단 사무국장)씨등 1백여명이 참석했다.
지난 해 가을 어느 날이었지 싶다. 도하 일간지에 일제히 북한 어린이가 감자를 먹고 있는 사진이 실린 적이 있었다. 탁아소에서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있으며 그나마 하루 한끼 얻어먹기 어렵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감자야 아무리 식량이 넉넉해도 널리 즐겨 먹는 음식인데, 과연 꼭 그러랴 싶었다. 간식으로 먹는 것일 수도 있지 않느냐고, 사진 설명에 의심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 아이의 눈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북한의 식량난이 보통 심각한 지경이 아니라는 이야기는 누누히 듣던 터였다. 그래도 그것을 그 천진한 눈빛의 아이들이 겪고 있는 엄연한 현실로 연결시키는 가슴 아픔은 참으로 견디기 힘들다. 아무리 간식 시간의 풍경이려니 여기려고 해도, 그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