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쉽고 편안한 수행법 ‘걷기’ 걸음 하나하나가 ‘대자유’ 찾기 “걷기 명상은 걸으면서 하는 명상입니다. 입가에 작은 미소를 띠고 천천히, 편안하게 걷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행은 우리에게 깊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어, 우리의 발걸음은 지구상에서 가장 안정된 이의 발걸음이 됩니다. 모든 슬픔과 불안이 사라지고 평화와 기쁨이 가슴 속에 차오릅니다.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저 약간의 시간, 약간의 마음 다함, 그리고 행복해지고자 하는 바람만 있으면 됩니다.”-틱낫한 걷기는 불교와 매우 잘 어울린다. 걷기는 불자들에게 있어 낯설지 않다. 걷기는 불교와 딱 궁합이 맞는다. 수행자들이 즐겨하는 포행이나, 해제 철 물 따라 구름 따라 떠나는 운수객의 발길 또한 걷기의 이어짐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점’보며 살려했던 그, 현자들이 구제 이틀간 여행길서 『12연기 해설』 저술도 레디 사야도는 제5차 아비담마 결집을 이끈 장본인이었다. 사진은 5차 결집의 성과물을 보관하고 있는 만달레이 쿠도로 탑. 현재 우리에게 알려져 있는 위파사나 수행법은 20세기 초에 미얀마와 태국에서 부활된 것이다. 위파사나 수행법이라 하더라도 구체적인 수행법은 다양하다. 한 학자의 조사에 의하면 미얀마에서만 20종류 이상의 위파사나 수행법이 있다고 한다. 이번에 소개하는 레디 사야도〈사진〉는 영국제국이 미얀마를 통치하던 시기에 호흡 관찰을 바탕으로 한 위파사나 수행법(아나파나 위파사나)을 스스로 실천하고, 출가 승려와 재가 수행자를 지도한 선구자였고 현재 미얀마 위파사나 수행의 최초의 스승 가운데 한 분이었다
세 사람 임종 지켜보며 ‘발심’ 수행 후 대인관계-건강 되찾아 주력 수행은 단 하루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일과가 되어 내 삶에 희망과 여유를 안겨주는 활력소가 되었다. 절을 찾아서 하기도 하지만 집에서, 그리고 거리에 나서서도 잡념이 들어설 사이도 없이 몸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주력다. 주력 수행을 하면서 작은 일에도 신경질적이던 이전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주위 사람들과 편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몸에 병이 사라지고 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면서 때론 주력 예찬론자가 되어 주변 사람들에게 그 장점을 권하기도 한다. 이렇게 주력 수행에 푹 빠진 데에는 한 해에 곁을 떠나간 세 사람의 임종을 지켜본 일이 계기로 작용했다. 한사람은 명문학교를 나와 사업
5백년 이어진 숭유배불정책으로 조선시대의 불교는 그야말로 근근히 그 맥을 이어오다가 조선조말 경허 선사의 등장으로 홀연 불교증흥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00년대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북(北) 오대산에 방한암이 있고, 남(南) 덕숭산에 송만공이 있다“는 말이 든든한 버팀목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그만큼 오대산의 한암 스님과 덕숭산의 만공 스님은 당시 우리 불교계를 상징하는 두 거목이셨다. 1900년대 한국불교계의 선풍을 진작시킨 만공 스님의 진영. “스승 위해 선 살도 베어 올리리라” 송만공(宋滿空) 스님은 1871년 3월7일, 전라북도 태인읍에서 출생, 14세의 어린 나이로 야반도주하여 봉서사, 송광사, 쌍계사를 거쳐 계룡산 동학사에서 진암(眞岩) 노사(老師)문하에 머물
정글의 법칙 직장도 전법도량 실생활 실천보시행 7가지 제시 행주좌와어묵동정(行住坐臥語默動靜)에 화두가 성성하면 누구나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은 승속을 막론하고 절집 인연이 깊은 이들에겐 낯설지 않다. 참선은 반드시 산중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저잣거리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며, 결코 스님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인데, 이런 구절들은 들을 땐 그럴 듯 하다가도 막상 실행에 들어가려 들면 막막해지는 것이 보통이다. 대표적으로 참선수행을 들었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여러 종류의 신행들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모든 부분이 그대로 수행이요, 신행의 과정이라는 원론엔 수긍이 가지만 실제로 일상의 삶 그대로가 불교적 삶이 될 수 있을까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이
3·7일 기도 후 100일 주력수행 입재 초기엔 병치레도…소리 觀하며 극복 세분의 임종을 한 해에 지켜보면서 가졌던 ‘나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수행’으로 풀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평상시에 절에 다니며 수행이 무엇인지 보았고, 스님과 어른들에게 수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인간에게 있어서 죽음만큼 두렵고 고민되는 일이 또 있겠는가. 그 고민을 푸는 열쇠가 수행이라고 생각하니 일단 마음이 가벼워졌다. 부처님께서는 인간의 생로병사(生老病死) 문제를 고민하던 중 출가하시어 수행을 통해 몸소 선정의 힘을 기르시고, 그 선정 속에서 해답을 찾으셨다. 그리고 고통 속에서 헤매는 중생들을 위해 해결의 길을 열어 주셨다. 그러므로 불자인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7일 만에 번뇌를 모두 없애버린 아라한의 깨달음에 도달한 부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다. 부처님의 두 수제자 가운데 분석적인 지혜에 능했던 사리풋타 존자는 15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고, 선정의 힘이 강했던 목갈라나 존자는 7일 만에 아라한이 되었다. 이처럼 많은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한 결과 길지 않은 시간에 아라한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부처님 당시에는 가능했을까? 우리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인가 자문하면서 초기 부처님 말씀을 읽었던 날들이 있었다. 우리 시대에도 불굴의 정진력으로 4개월 만에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분이 있다. 바로 미얀마의 순룬 사야도(Sunlun sayadaw, 1878~1952)이다. 순룬
수행우열 구분 경계…일념정진이 관건 체험담 전하며 마장 극복방안도 제시 책을 읽다보면 그 내용이나 구성이 쉽고 재미있어 술술 넘어가는 책이 있고, 딱딱하고 분석적이어서 한 장 넘기기가 힘겨운 것이 있다. 대개가 쉽고 술술 넘어가는 책들은 읽기는 좋으나 내용이 부실하여 다시 찾는 경우가 거의 없고, 딱딱한 책들은 비록 읽어가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내용성이 충실하고 심오한 경우가 많다. 두 종류의 책이 다 일장일단이 있는데,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읽기도 쉽고 내용도 충실한 경우일 것이다. 물론 이런 책을 만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룡 큰스님의 책은 특별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60여 년이 넘는 큰스님의 탄탄한 수행이력이 뒷받침 된 것이기에 그 내용성이야
수행 정진은 내 삶의 구심점 정-혜 병행…매일 수행 기록 스님들께 지도받으면서 차츰 변화가 일어났다. 신심이 더욱 증장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정과 혜를 병행한 균형 있는 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렇게 수행에 전념하고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일상의 변화도 생겼다. 우선 집안이 화목하게 되었다. 수행을 하기 전에는 세상의 모든 일들에 관여해야만 했고, 관여하지 않으면 안될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니 그런 일들에서 오는 피로로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자주 화를 내게 되었고 몸은 갈수록 쇠약해졌었다. 오죽하면 의사들이 나를 보고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불렀을까. 또 이런 저런 일로 매일 밖으로 나돌다보니 사치와 낭비도 일정정도의 선을 넘어선지 오래였고 겉치레를 위한 욕망
늦깍이 귀의… 10년째 사경 염불-절-주력수행도 병행 부처님 가르침을 한 자 한 자 따라가며 글로 새기고 마음에 새기는 사경 수행을 시작한지 벌써 1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런데 아직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부처님 제자가 되었으니, 그 발자취를 따르고자 수행을 택했고 수행에 정성을 다하고 있는 것 뿐이다. 불교와 인연은 우연이 아니었던 듯하다. 전생이 있었다면 아마도 독실한 불교집안에서 자랐을 것이다. 부모님은 어느 산골에 교회를 세울 정도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그 집안의 셋째 딸이었던 나는 어려서부터 거리의 부랑아를 집으로 데려와 옷과 음식을 내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몇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모곡 사야도(Mogok Sayadaw, 1899∼1962) 우 위말라(U Vimala)는 북부 미얀마의 만달레이 남쪽의 아마라푸라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입적했다. 모곡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의 아비담마 가르침의 전통을 이어 받았고, 특히 십이연기를 중심으로 한 아비달마적인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위파사나 수행을 지도하였다. 9세 때 사미가 되었고, 20세에 비구가 된 우 위말라 스님은 25세 때, 아비담마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비담마 강의를 할 때, 선배 스님들로부터 수행을 권유받아 위파사나 수행을 하였다. 만달레이와 아마라푸라지역의 여러 스님에게서 수행에 대한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모곡 사야도 진영. 굴속서 각고의 3년 수행 모곡 사야도는 레디 사야도의 교학에 간접적인 영향을
‘무심’·‘중도실상’·‘해인삼매’禪 핵심 수 년 수행경험 바탕으로 명확히 전달 요즈음 조계사에서는 ‘조계종 선원장 초청 대법회’가 열리고 있다. 수행정진에만 전념한 조실·선원장급 스님들의 감로법문은 수행을 하고자 하는 사부대중에게 더없는 청량제가 되고 있다. 더욱이 수행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어 불자들은 선사들의 한마디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소리 하나에도 조심하고 있을 정도다. 깨달음이란 무엇인지, 참선이 갖는 의미를 전달하고 이해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선사들이 던진 선문답 하나, 용어 하나 하나에 담긴 의미를 그 자리서 알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고우 스님은 ‘중도실상’을 전하며 “양변의 여읜자리를 보아야 한다”고 말했고, 무여 스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