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청 광 방송작과 우리는 늘 ‘한국불교, 1600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전래되어 세월만 1600여 년 그냥 흘려보낸 것이 아니라, 그 길고 긴 1600여 년 동안 불교는 우리 겨레의 숨결 속에 핏줄 속에 녹아들면서 말과 생각과 풍속과 생활 습관은 물론 설화와 전설, 놀이문화와 음악과 춤까지도 불교의 가르침을 담아내는 지혜를 가꾸어 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는 독창적인 우리의 예술품도 거의 대부분이 불교 문화재요, 국보와 보물 가운데도 불교문화재가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와 예술 가운데서 ‘불교’를 빼 버린다면 과연 우리는 무엇을 내세워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인가?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이 기 화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연초에 콜럼비아대학에 출장을 가게 되었다. 나에게 여행하는 즐거움의 하나는 그동안 보고 싶었던 책을 가지고 떠나는 것이다. 그 책을 비행기에서 또 호텔방에서 그냥 닥치는 대로 읽어가는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은 모르리라 . 이번에 가져간 책 중의 하나가 일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의 『학문의 즐거움(방승양 역, 김영사,1992)』이였다.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수학의 노벨상에 해당하는 필드상을 1970년에 수상한 일본 수학계를 대표하는 학자로서 이 책을 쓸 당시 미국 하버드대학과 일본 교토대학의 명예교수이자 일본수리과학이사회의 이사장이었다. 히로나카는 내가 보기는 천재인데 자기는 천재가 아니고 단지 남이 한 시간 공부할 때 두 시간하는 노력형이었고 한번 시작한 문제는
정 승 석 동국대 인도철학과 교수 율장의 전문 용어로서 바라이법은 승단에서 추방해야 할 만큼 가장 무거운 죄인 바라이에 대한 규정을 일컫는다. 5계 중에서 불음주를 제외한 4계의 어느 하나라도 위반하면 바라이가 된다. 혹시 이를 근거로 부처님이 음주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오해이다. 음주와 정신 수행이 상극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아예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상식이기 때문에 음주를 굳이 바라이로 명시하지 않은 것일 뿐이다. 이런 해석을 의심하면서 여전히 음주에 대한 관대함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불전에는 그런 기대를 확실하게 불식시킬 수 있는 법문이 있다.『묘법성념처경(妙法聖念處經)』에서는 술이 야기하는 최상의 과실을 24가지로 열거한 후,
효 림 스님 실천불교 대표 달마 11세 법손인 담주의 석상 경저선사가 열반에 든 뒤의 일이다. 대중들이 제일좌인 수좌를 청하여 조실스님으로 모시고자 했다. 그러자 석상선사의 시자로 있던 구봉 도건 선사가 나서서 한마디 했다. “대중들은 내가 한마디 물어 보기까지 기다려 주시오. 만일 석상선사의 뜻을 안다면 내가 스님께 했던대로 시자로서 시봉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물었다. “선사(先師)께서 쉬어라. 쉬어라. 한 생각이 만 년을 가고. 식은 재와 마른 나무 같이 하며, 한 조각 베를 희게 하듯 하라. 하셨는데 말해보시오. 어느 쪽의 일을 밝히신 말씀입니까?” 이에 수좌가 말하였다. “한 빛깔 쪽의 일만 밝혔느니라.” 이에 도건 선사가 “그렇다면 아직 선사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고 말하자. 수좌가 다시
송 석 구 전 동국대 총장 양주 산골에 토굴을 짓고 사는 통헌(通軒) 장(張) 거사한테서 소포가 왔다. 하얀 한지를 조심스럽게 뜯어 보니 노란 종이곽 안에 연잎차가 정성스럽게 넣어져 있었다. 그동안 연락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였다. 장 거사는 내가 수유리 화계사에서 기도할 때 만난 젊은이였다. 그는 내가 지장전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1000일 기도의 원력을 세워 매일 새벽에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하여 많은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함께 기도하는 도반이 되었다. 그러한 그가 5~6년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러더니 재작년에 연잎차를 집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그 차를 싼 한지에 반야(般若)라는 글을 써 놓았다. 그리고 ‘역시몽중인(亦是夢中人)’이라는 휴정 스님의 삼몽사(三夢詞)의 마지막 구절
김 상 현 동국대 교수 만해 한용운은 인조인(人造人)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연구가 진보되면, 사람이 자연인과 조금도 다름없는 인조인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다. 그에 의하면, 사람의 육체와 정신을 원자적으로 분해하고 다시 그것을 종합적으로 맞출만한 기계를 발견하면 인조인을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사람의 지체와 장부를 부분적으로 해부할 수가 있다면, 그것을 확충하여 인체를 세포적으로 또는 원자적으로 분해할 수도 있어서 생명의 존재 및 구성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소식에 의하면, 한국과 일본의 연구진이 침팬지 Y염색체 2300만 개 중 1270만 개를 해독함으로서 인간의 진화 과정과 취약한 질병의 원인을 밝혀내고 치료 수단을 개발하는 데도 도움이 될
윤 청 광 방송작가 서울특별시 이명박 시장은 이미 2004년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망언을 해서 2000만 불자들의 속을 뒤집어 놓은바 있다. 그리고 그는 이 망언 때문에 108인의 불자들에게 소송을 당해 그 재판이 진행 중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 문제의 이명박 서울시장이 최근 또다시 혀를 함부로 놀려 불교계를 분노케 하고 있다. 서울시 전체가 이명박 시장의 개인의 소유물이나 되는 듯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고 헛소리를 했던 이명박은 “청계천 복원은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기에 준공식을 할 때 먼저 목사님을 모셔와 준공예배를 드리고 테이프를 끊었다”고 두 번째 망언을 쏟아놓았다. 그 후에는 또 “내가 교회에 가서 목사와 이야기할 때는 ‘봉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걸
공 종 원 언론인 얼마 전에 한 종교신문을 들추다보니 흥미로운 기사가 눈을 끈다. 작곡가 고 나운영(羅運榮)이 만든 세편의 찬송가가 이번에 기독교계가 만드는 ‘21세기 찬송가’에 수록된다는 것이다. 유명한 기독교인 작곡가가 만든 찬송가가 기독교 찬송가 집에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게 무슨 흥미로운 일이냐고 할 사람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 과정의 복잡한 사연을 들으면 정말 대단한 흥밋거리로 이해하는 이들도 적지는 않을 듯 싶다. 대개 알다시피 나운영은 ‘에밀레종’같은 오페라나 13편의 교향곡, 우리가곡과 심지어 100편이 넘는 동요를 포함한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우리 음악의 지평을 넓힌 인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무려 1105곡이나 되는 기독교 성가를 만든 점에서 기독
보 광 스님 동국대 교수 동지는 24절기 중 하나로 대설과 소한사이에 오지만, 다른 절기와는 다르게 양력 12월 22일경이 된다. 이 날은 일년 중에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이다. 지나 간 태양은 소멸하고 새로운 태양이 솟아난다고 하여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작은 설(亞歲)라고 하여 한 해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세시풍속으로는 팥죽을 쑤어서 나누어 먹으며, 집안에 뿌려 잡귀를 물리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동지에 대한 의미가 더욱 특별하다. 특히 동지에는 각 사원마다 동지기도가 연중행사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다. 동지기도가 갖는 의미는 여러 가지로 살펴볼 수 있지만, 지난해를 무사히 보내는 것에 대한 감사의 기도와 새로운 한
고 유 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지난 9월에 열린 2단계 4차 6자회담에서 ‘6자는 동북아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을 위해 공동 노력할 것을 공약하고 별도의 포럼에서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에 관해 협상을 가질 것’에 합의했다.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을 모색하는 등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기본 틀을 마련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12대 국정과제의 첫 번째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제시하고, 불안정한 정전상태 종식을 통해 한반도 평화 실현과 동북아 중심국가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한다. 남북간 평화협정 체결은 김대중 정부가 추진했던 ‘한반도냉전구조해체구상’의 완성단계이다. 남북간 평화협정체결은 정
윤 청 광 방송작가 오늘날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6·25 동란이 끝난 이후,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80%가 농업에 종사했고, 우리나라 국민을 먹여 살리는 1등 공신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농업이었다. 그것은 기계화되기 이전의 원시적인 농업이어서 작업의 100%를 손과 발과 몸에만 의지한 그런 농사였기에 뼈 빠지게 일하고, 허리끈을 졸라매도 우리는 늘 배고픔을 벗어나지 못했고 가난과 헐벗음과 배고픔을 숙명처럼 짊어지고 살았다. 그로부터 40년 후인 오늘. 한국은 과연 어떻게 세상이 변해버렸는가? 농업인구는 이제 경우 전체 인류의 10%, 그것도 65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힘겹게 쌀농사를 이어가고 있으나 최근 저 원수 같은 WTO 체재로 쌀
공 종 원 언론인 지관 스님이 대한불교 조계종의 새 총무원장에 당선된 것에 대해 교계안팎의 관심이 크다. 어떤 이는 긍정적 평가를 하고, 다른 이는 부정적 비판을 하는 것도 그 큰 관심의 표현이겠다. 중요한 건 그런 말들이 지관 스님 개인에 대한 것에 그치지 않고 종단과 한국불교의 미래전망에 상당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에서 반추해 볼 만하다. 우선 대부분의 불자들이나 사회 사람들은 지관 스님의 당선이 아주 당연하고 잘 된 일이라고 한다. 그건 그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학승인데다가 이미 연세도 73세이니 종단내의 원로급 스님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어른이라는 점을 들어 총무원장 자리를 맡을만한 그야말로 ‘자격을 갖춘 이’가 당선되었다고 하는 이유를 든다. 거기에 지관 스님은 다 알다시피 3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