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려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심각한 종단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승려 개개인이 수행과 포교에 전념하기보다는 노후에 대한 불안함으로 인하여 사설사암을 지어 개인 소유화하는 경향이 확대되어 종단의 삼보정재가 수행과 교육, 포교, 사회사업 등 종단목적사업으로 회향되지 않고 개인 노후대책 자금으로 유출되고 있으며, 매년 증가하고 있다.”지난 5월 29일 조계종 중앙종회 사회분과위원회 회의에 제출된 ‘승려노후복지’ 문제에 대한 연구보고서 내용 일부입니다. 승려노후복지 문제가 종단의 안정과 발전을 해치는 중대한 해악요소로 부상하고 있다는 등 보고서 내용은 우려 일색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생계유지, 상좌 교육비용 등 경제적 비용과 질병에 대한 치료 및 간병, 그리고 거주할 곳 등에 대한 부담과 걱정 때문에
5월을 맞아 불교계는 전국 규모의 청소년 행사를 마련해 주말에도 쉬지 않고 분주한 한 달을 보냈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교계의 청소년 행사가 극히 드물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흡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청소년 포교 분야를 담당하는 기자 역시 전국의 청소년 불자들이 모여 펼치는 전통문화 경연대회나 부처님을 찬탄하는 각종 백일장-사생대회, 세미나까지 거의 매주 열리는 행사에 직접 참석해 청소년 불자들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즐거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청소년 행사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아쉽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불교 청소년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 불자들의 소속 학교를 보면 많은 종립학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2~3개 학교가 도맡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7일 각기 다른 장
석조 문화재는 돌로 이루어진 문화재를 말하며, 기록매체로서의 석조문화재, 장례문화유적, 고대 도시유적, 신앙 관련 유적, 암각화 등 그 범위가 실로 다양하다. 더 넓은 의미에서 보면 동굴이나 화산 등도 자연문화재로서의 석조문화재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하천가나 산야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듯이 보이는 돌들도 알고 보면 지구의 역사책이라 할 수 있다. 돌 내부에는 나이를 알려주는 방사성동 위원소로 이루어진 시계를 가지고 있어 암석이 탄생한 후 흐른 시간을 말해주기도 하며 당시 지구상에 살던 생명체들의 흔적을 화석으로 간직하기도 하여 지구의 역사를 말해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서기 414년에 건립된 고구려 제19대 광개토대왕비 또한 1600년이 지난 현재까지 광개토대왕의 치적을 우리들에게 전하고
어느 국회의원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출동한 경찰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구급차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아직 살아있으니 구급차를 빨리 불러 달라고 했다. 그러자 경찰은 “국회의원 말을 어떻게 믿어?”라고 했단다. 이는 국민들이 정치판을 어떻게 보는지를 풍자한다. 왜 정치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을 해야하는가?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정치’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양치기 소년이 된 국회의원 자신을 버리고 참으로 국민을 위하여 소신을 펼친다면, 언제나 떳떳할 터이니 구태여 거짓말까지 할 필요가 있겠는가. ‘자신을 버린다’는 것은 무아를 자각하고 실천하는 것에 해당하며, ‘국민을 위한다
윤달에는 많은 사찰에서 예수재(預修齋)를 지낸다. 윤달은 평년보다 역일수(曆日數) 또는 역월수(曆月數)가 많다. 복덕 쌓기 위한 방편 중 하나 이를테면 태양력에서는 2월이 평년보다 하루 많고, 태음력에서는 평년보다 한 달을 더하여 윤달을 만든다. 태양력에서는 1년을 365일로 정했으나, 지구의 회귀년(回歸年)은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이다. 그런데 나머지 시간인 5시간 48분 46초는 대략 4년이면 1일이 되기 때문에 4년째 해의 2월을 29일로 하여 1년을 366일로 정하여 윤년이라 하며, 그 해의 2월을 윤달이라고 한다. 한편 태음력에서는 1년을 약 360일로 정했으므로 5년에 두 번의 비율로 1년을 13개월로 하고, 그 해는 어떤 달을 두 번 반복하고
최근 불교계에서 폭력사태가 잇따라 발생해 말썽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동국대 불교학부의 교수로 있는 비구 스님이 역시 교수로 있는 비구니 스님에게 입에 담지 못할 폭언을 한 것이고 (본인은 그러한 사실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불교방송의 한 간부사원이 신입사원을 교육한다며 술에 취해 폭언과 폭행을 하고 심지어 수습 여사원의 배를 발로 걷어차는 만행을 저지른 사건입니다. 몇 년 주기로 일어나는 종단 분규사태의 후유증으로 인해 이처럼 불교계에 폭력사태가 만연하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수치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이번에 폭력을 행사했거나 폭력 의혹을 받는 당사자들이 모두 불교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비중 있는 위치에 있는, 타의 귀감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라
오랫동안 잠잠했는가 싶더니 또 다시 폭력과 폭행이라는 단어가 불교집안 언저리를 배회하고 있다. 종립 동국대와 불교방송에서 일어난 사건이 그것이다. 불미스런 두 건의 사건은 거의 동시에 교계에 전해져 불자들을 당혹케 하고 있다. 입에서 입으로 혹은 인터넷을 통해 빠른 속도로 전파되는 사건을 앞에 두고 담당기자는 일단 사실 확인에 나섰다. 그러나 그 과정은 예상했던 대로 퍽이나 고달픈 여정이었다. 당사자는 반성이나 참회보다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피하거나, 행위 자체를 부인하는데 급급해 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사건을 조용히 덮어두어 당사자를 보호하는 것으로 일관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교육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좀 심한 행위를 했기로 그것이 그리 큰
우리나라에는 국교(國敎)가 없다. 따라서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종교를 선택해서 믿을 권리와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서양 종교가 마치 대한민국의 국교라도 되는 줄로 착각하고 있는 광신자들이 활보하고 있다. 요즈음도 고속 버스 터미널 근처에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라는 피킷을 들고 있는 광신들이 설치고 있다. 요즘도 지하철 안에 들어와 승객들의 틈을 비집고 다니며 ‘××를 믿으시오! 지옥가기 싫으면 ××를 믿으시오!’를 외치는 광신자들이 있다. 그들이 떠드는 소리는 한 마디로 해서 ‘××를 믿으면 천당에 가지만 ××를 믿지 않는 사람은 모조리 지옥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종교를 선교하는 선을 넘어서서 선량한 시민을
보육교사에 대해 들어보셨을 줄 압니다. 보육교사란 유아 교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 등에서 근무하는 교사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이들은 보건복지부의 인가를 받은 보육교사교육원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한 후 교사자격을 획득한 전문인력들입니다. 다 알고 계시리라 믿지만, 자녀교육에 있어 유아 시절의 교육이 갖는 중요성은 따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의 한마디 한마디가 미치는 영향은 그만큼 절대적인 것이지요. 자녀를 어린이집 등의 시설에 보낸 경험이 있거나 현재 보내고 있는 분들은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특정종교에서 설립한 시설이 아닌데도 지나치게 특정 종교의 색깔을 드러내는 곳이 많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녀가 밥상 앞에서 감사의 기도문을 외우는 것을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는 절집에서 새
가톨릭 교황인 요한 바오로 2세(이하 교황)의 ‘다른 종교와의 화해’를 위한 순례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교황의 순례는 ‘모든 종교의 반목과 갈등 해소’라는 신념 아래 ‘타종교 끌어안기’의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황은 시리아 등을 방문해 이슬람과 기독교 유대교의 화해를 호소했고, 가톨릭이 개신교를 탄압한 것을 사과했습니다. 최초로 이슬람 사원을 방문한 교황은 지난 5일, 11세기 가톨릭과 정교가 분열된 뒤 처음으로 정교국인 그리스를 방문해 13세기 십자군이 정교회의 중심지인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을 점령하고 약탈했던 사실을 공식 사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78년 교황에 선출된 후부터 희망해왔던 러시아 방문도 추진되고 있습니다. 오랜 반목의 역사를 청산하고 정교와 화해하기 위한 교황의
기자는 지난 4월 4일자 신문 9면에 4월 10일부터 운행되는 도시철도 봉축열차를 특집으로 다룬 바 있다. 기자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넘치도록 많은 기사들 중에서 유독 봉축열차를 주목한 것은,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도되는 봉축열차-달리는 불교미술관의 역사적 사회적 의의를 주목한 까닭이다. 종교색 짙은 구호 대신,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다소 서정적인 제목이 붙은 이 봉축열차는 어린아이서부터 70대 노년층까지 타본 이들은 모두 좋아라하는 도시의 명물이 되었다. 굳이 불교에 애정이 없어도, 한국불교의 ‘佛’자도 알 바 없는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온 몸으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이 봉축열차를 그러나 무척 싫어하는 이들이 있다. 늘, 한국인이라고 믿기 어려울만큼 전통문화
하루종일 부자집 논밭을 가느라 힘들고 지친 소는 같은 집에 사는 고양이가 부러웠다. 고양이는 빈들빈들 놀면서도 편하게 잘 사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외양간에서 쳐다보니 맞은 편 대청마루에 주인이 앉아 있는데 고양이가 주인 무릎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것이었다. 소의 어리석음을 닮은 이 “옳다구나, 바로 저 도리구나!” 라고 생각한 소는 자기도 고양이처럼 그렇게 주인 무릎에서 재롱을 떨어보려고 주인을 향해 후다닥 달려들었다. 주인이 깜짝 놀라 몽둥이를 들었다. “이 소가 미쳤나보다” 라면서.’ 제 분수를 알지 못한 소의 어리석음을 보인 우화이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야 고생하지 않고 잘 사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주위를 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