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 스님이 동시의 캐릭터로 등장했다. 달마 스님이 어린이들 친구가 된 것이다. 시의 화자 어린이의 할아버지는 달마도를 아주 좋아해서 사진 액자 곁에 달마도를 걸어 놓고, 할아버지 사진과 달마도를 번갈아 바라보며 기쁨을 맛보고 있다. 달마도는 신필이라 불리던 조선 중기의 화가 연담 김명국(蓮潭 金明國) 선생의 이름난 작품이다. 국립박물관에 있는 원작을 사진 복사한 것이 널리 보급되고 있다. 달마 스님(?~528)은 남인도 향지국(香至國) 셋째 왕자였다. 처음 이름은 ‘보뎨다라’였는데 후에 보리달마(菩提達磨)로 불리었고, 줄여서 ‘달
부처님의 깊고 넓은 통찰 가운데 하나는 식과 명색의 관계다. 우리는 인식한 것에 이름을 붙이고, 이름이 있어야 그것을 제대로 인식한다. 책상이라는 것을 전혀 모른다면 우리에게 책상은 어떻게 보일까? 책에 이름이 붙여지지 않았다면 책을 책으로 인식할 수 있을까? 고대 유물을 발굴하는 이들은 늘상 이 문제에 부딪친다. 오래 된 지층에서 캐내 살살 먼지를 털어낸 이 물건의 용도는 무엇이었을까. 이 뼛조각은 어떤 동물의 일부였을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식과 명색이 단절된 유물은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과 상상력이 버
진덕여왕 2년(648) 김춘추와 당 태종 사이에서 나당동맹협정이 체결된 것은 삼국통일전쟁의 출발점이 된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실은 신라인들에게 크게 각인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신라말기 최치원이 찬술한 ‘성주사낭혜화상비명’에서 구체적으로 특필하였던 내용에서 알 수 있다. 그런데 김춘추의 대당외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군사원조를 요청하는 동맹협정의 체결을 전후하여 다양한 문화외교활동을 전개하였다는 점이다. 김춘추는 당에 도착하자, 먼저 국학에 가서 석전(釋奠)과 강론(講論)에 참관하기를 요청하여 당 태종의 허락을 받았고, 군사
붓다의 뛰어난 제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마하깟사빠(Mahākassapa, 摩訶迦葉) 존자는 스승인 붓다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 마하깟사빠 존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수행에 전념했다. 그러다가 가끔씩 스승인 붓다를 찾아뵙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붓다는 그를 높이 평가했고, 자신과 동격으로 여겨 다른 비구들을 가르치고 훈계하라고 부탁했다.‘오와다-숫따(Ovāda-sutta, 敎誡經)’(SN16:6)에 의하면, 한때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마하깟사빠 존자가 세존을 찾아뵈었다. 그때 붓다는 마하깟사빠
사는 것은 인연의 맺음이다. 좋은 인연이란 나를 앞세우지 않고, 편견이나 집착이 개입되지 않은 인연이라 종종 말한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에는 의도하지 않아도 계산된 나의 분별심이 존재한다. 나를 대하는 상대도 그럴 것이다. 분별심 없이 상대를 인정해 주면 좋은 인연이 되겠으나 곱고 미움, 능력의 유무, 생각이나 지향점이 다른 데서 오는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갈등 관계가 되는 경우도 많다.코로나19 상황이 어찌 변할 지 모르지만 올해는 장애 불자들과 사찰 순례를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순례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면서 대흥사, 마곡사
승이 수산에게 물었다. “깨침으로 나아가는 길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여기서부터 양현(襄縣)까지의 거리는 오 리이다.” 승이 말했다. “그렇다면 향상사(向上事)란 무엇입니까.” 수산이 말했다. “왕래하기가 쉽지 않다.”본 문답의 요점은 상구보리(上求菩提)의 입장과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입장을 적절하게 섞어서 납자를 이끌어주고 있는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의 안목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에 달려 있다. 상구보리에 대하여 향상(向上)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하화중생에 대해서는 향하(向下)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일반적
경전을 보다보면, 부처님과 외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행자 혹은 재가자들 사이의 대화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된다. 그 대화의 내용을 보면, 부처님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상대방을 교화하고 계심을 보게 된다. 일방적인 설교나 웅변이 아닌, 침착하고 온화하며 배려하는 대화의 모습이다. 그리고 핵심적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 가며 대화를 하는데, 그 일단의 모습을 ‘맛지마 니까야’ II권에 나오는 79번 경 ‘사꿀루다이에 대한 작은 경(Cūḷasakuludāyisutta)’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부처님과 사꿀루다이의 대화는 부처님께
종교에는 세상의 상식을 뛰어 넘는 이야기들이 많다. 기적이나 신통은 빼놓을 수 없다. 물위를 걷고 허공을 날고 바다를 가르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한다.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신이 아님에도 갖가지 신통을 썼다고 전해진다. 천상에 올라가 설법하고 지옥에 내려가 그곳 중생들과 대화를 하신다. 때로는 몸을 여러 개로 분신하거나 모습을 바꾸는 변신술도 쓰셨다. 부처님만 신통을 갖춘 것은 아니다. 부처님 제자들도 신통을 보였다. 마하 목갈라나는 신통이 뛰어나 ‘신통제일 목갈라나’라는 별칭까지 붙을 정도였다.불교를 포함한 대다수 종교는 기적과 신통
1. 최초의 사찰인 죽림정사를 지어 부처님께 바친 사람은?① 찢따 장자 ② 욱가 장자 ③ 빔비사라 왕④ 수닷타 장자 ⑤ 나쿨라피타 장자 2. 불교의 전파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① 중국에 처음 선불교를 전래한 사람은 혜능대사이다.② 스리랑카의 상좌부불교는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 전해졌다.③ 아쇼카 왕의 왕자 마힌다는 기원전 3세기 중엽 스리랑카에 상좌부불교를 전했다.④ 아쇼카 왕은 불교를 인도 전역으로 급속하게 확산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⑤ 쿠샨왕조의 카니슈카 왕은 1세기 후반 제4차 결집을 주도하고
햇살이 정말 쏟아지는 듯해서 밖으로 나가보니 매화가 가지마다 잔뜩 피어 있다. 겨우내 웃자란 소나무 가지와 하귤을 가리는 삼나무 가지를 높은 장대톱을 구입해 종일 자르고 치우다 보니 땀이 흠뻑하다. 눈이 내릴 때 밑둥이 늘어진 소나무 가지가 눈에 거슬려 오늘 이리저리 살피며 자르다 보니 마치 이발사라도 된 것 같다.예전에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영화가 있었는데 실제 영화 제목은 ‘The Barber of Siberia’였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는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랑에 인생을 걸어버린 러시아 초급장교
1월27일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는 ‘만암당 종헌 대종사 제64주기 추모다례재’를 봉행하였다.스님은 일제가 국권을 강탈한 뒤 한국불교를 일본불교에 예속하려 시도할 때에 만해·한영 스님 등과 함께 임제종을 설립하여 맞섰다. 1916년 백양사 주지가 된 뒤에는 극락전 한 채만 남아 있을 정도로 쇠락했던 도량을 일으켜 대찰의 면모를 살려냈으며, 여러 학교(광성의숙‧심상학교와 불교전수학교‧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출가수행자뿐 아니라 지역 주민을 위한 교육에 앞장섰다. 또한 불교가 수행과 전법의 역할에 충실하려면 교단이 재정자립을 이룩해야 한다
어릴 적부터 나는 손목에 염주 팔찌 끼기를 좋아했다. 까닭은 모른다. 까까머리 시절, 어머니를 따라 어느 절에 갔었는데(영광 불갑사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한 노스님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오른쪽 손목에 나무구슬로 된 염주 팔찌를 끼워주신 것이다. 그러면서 노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염주 팔찌를 항상 끼고 다녀라. 언제가 너에게 좋은 인연이 될 것이다.”그 말씀과 염주 팔찌가 씨앗이 됐을까. 어떻게 어떻게 살다보니, 그리고 ‘눈뜨고’ 보니, 어느 날 내가 승려가 되어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인연이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내가 불